나보다 더 긴 머리를 가진 남편덕에 얼떨결에 나는 도사부인이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머리가 길어 묶고 다니는 남편보고 꽁지도사님 도사님하고 부른다.
얼마 전까지 아들도 머리가 길었지만 지난 해 여름이 너무 덥다고 반토막으로 짜르더니, 올 겨울엔 넘 춥다고 또 기르고 있는 중이다.
설날 할아버지가 난리나셨다. 아들에 손자까지 머리가 길다고 돈 줄테니 당장 목욕탕가서 이발하라고 성화시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은 돈만 받고 이발은 커녕 머리묶는 끈만 사갖고 돌아 왔다.
이번엔 할마니가 난리시다.
며느리인 나와 남편이 나이 차이가 너무 나게 보인다고 내가 두번째 얻은 마누라라고 오해 받는다고 당장 머리를 짜르란다. 그 말에 남편은 별로 개의치 않은 듯 히죽 웃기만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로지 난 한 번만 결혼한 사람인디 남이사 뭔 상관이냐 식이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보니 몇 년전에도 그런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남편이 잠시 일을 했던 작목반에서 그러더란다. 부인이 두 번째여? 나이차가 많이 나는가벼?
남편이 그 말을 듣고 화를 냈단다. 자기가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다고 그렇게 생각했단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젊어 보이는 것인지 요즘 동안이 대세라는데 이게 좋은 뜻인지 아닌지 한 참 헷갈렸단다. 그런데다 어머니가 그 말을 해도 면역이 된 것처럼
귓둥으로 들릴 것이다. 어머니가 나보고 되레 뭐라신다. 사내들이 어떻게 죄다 머리를 길러서 묶고 다녀도 니는 뭐햇냐고 하시니 나도 말리느라 안 해본 방법이 없다고 변명을 했다.
잠도 같이 잘 못잔다고 했다. 자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남편의 긴 머리를 손으로 감아 땡기면 한 밤중에 남편이 비명을 지른다. 그러니 남편은 잘 땐 수건을 감싸고 자는데 내가 여자인지 남편이 여자인지 처음엔 그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를 했었다. 그 모습을 아들이 보더니 나도 그렇게 하고 잘까? 한 번 해보더니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냥 잔다고 했다. 나중엔 남편은 수건이 자다가 자꾸 풀어진다고 모자를 쓰는 것이다. 모자를 쓰고 잠자는 사람은 세상에 울남편만 있을 것이다.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자주 읍면사무소에 자주 간다. 머리가 길으니 뒤에서 보면 어떤 여자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달리는줄 알았다고 옆 동네 어르신들이 혀를 끌끌차신다. 도대체 저거 여자여 ? 남자여?
도시도 아니고 한참 외진 산골마을에서 머리를 길른다는 것은 주위에 암묵적으로 허락을 하지 않는 한 엄두도 못낼텐데, 벌써 그 세월이 칠 년이나 되버렸다. 그동안 이웃사람들은 이미 세뇌가 된듯 머리가 길든 말든 그저 꽁지도사네 어디냐고 누가 묻기만 해도 잘 가르켜주시는 친절한 이웃사촌이 되셨다.
얼마 전에 시내에 볼 일 있어 어떤남자가 머리가 긴데다 붉은 색으로 염색을 하고 체인목걸이에 체인 귀걸이에 휘황한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을 남편이 우연히 보았나 보다. 집에 돌아와 나도 그렇게 한 번 염색을 해볼까? 거울 앞에서 이리 저리 머리를 올렸다 풀었다 그런다.
이젠 나도 남편의 머리에 무슨 색으로 염색을 하던 말던 상관할 사항은 아닌데 자꾸 그 말은 거슬린다.
" 자기야 내가 자기 세컨드여? 아님 마누라여? 왠간하면 그냥 그러구 다녀? 알았지?"
남편이 헤벌레 웃는다. 나이들어 그 체면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필요할 때가 많다.
남편 자신의 체면이야 본인이 하기나름이지만 같이 사는사람의 입장은 나와 아무상관없이 결정되는 것 같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그전대로 그냥 머리만 묶고 다닌다.
요즘 나보고 그런다.
" 언제 미장원 같이 가서 파마좀 하자?'
이젠 웨이브 넣은 곱슬머리가 된 긴머리를 묶은 남편을 상상해보니 나쁘지는 않다.
언제 그냥 같이 파마를 하러 미장원에 가야겠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