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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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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만화시대


BY 천정자 2009-08-18

중학교 때 내 친구이름은 김정자다. 이름보다도 실물이 그당시 탤런트 정윤희보다 더 이뻤다.

그런데 몸매는 다리가 오자형이라 나랑 맨날 싸웠다. 이름을 바꾸든가 내 몸매랑 바꾸자고 티격태격한  동네친구다.

 

나는 입이 툭 튀어나오고 까만 주근깨가 얼굴보다 더 진해서 진짜 못생겨  도날드 덕처럼 오리 궁뎅이라고 늘 놀리더니

그게 나랑 바꾸자고 해도 바뀔 물건도 아니였고

여하튼 난 그 이쁜 내친구랑 단짝으로 연신 드나드는 곳이

만화가게였다.

 

공부하고는 둘다 누가 더 높이 담쌓았나  대회 나갔나 식이고

나보다 내 친구는 더 부자여서 난 늘 만화가게에 같이 가는 덤손님이었다.

 

그 당시 무협소설이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

반은 무협소설, 반은  만화책이고, 한 쪽엔  대문달아 드르륵 열리는 흑백테리비가 한 대 자리잡고

어쩌다 프로 레슬링에서 김일이 나와 박치기 하는 날은 만화가게 주인 할머니는 레슬링 경기에 혼이 나가 돈도 받지 못했다. 나중엔 누가 손님인지 테레비만 보고 가는 손님은 시청료를 따로 내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그 당시 테레비가 그렇게 지금처럼 흔하게 깔려 있는 것이 아닌 재산 목록 1호 전화 다음 테레비 순이었으니 말이다. 달동네에 유일하게 늦게까지 엉덩이 붙이고 볼 수 있는 만화방에서 구텡이에서 난 주인 눈치좀 보고 고우영이 그린 만화삼국지부터 시작하여 전설따라 삼만리까지 두루두루 꿰어차고 신간이 나올 무렵이면 내 친구 뒤만 졸졸 따라 다녔다. 반면 내 친구는 만화책은 싱겁단다. 칼부림이 휙휙 소리나고 장풍에 집 한채 날아가는 황당무개한 무협소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냐며 시리즈로 나에게 빌려주기도 했는데, 이게 영 내 체질이 아니었다. 그 당시 무협소설보다 더 황당한 시대인 만큼 영화도 재미가 없다고 한 때였다. 툭하면 사람들 잡아가두고 고문하면 다 죄인되는 시대에서 무혐소설은 기승전결에 따른 복수가 당연히 또 복수를 부르는 뻔한 애기는 별로 재미 없었다.

 우선 그림이 없어 시나브로 재미가 없어지더니, 친구가 다 봤냐?하고 물어보면 다 봤으니 얼른 가져가라고 그렇게 보다 만 무협책도 부지기수다.

 

문제는 만화책을 실컷 봐야 하는데 돈이 문제였다.

엄마가 주는 돈은 차비가 전부다. 일요일은 교회가서 헌금하라고 준 돈도 있는데. 그 돈을 건드리면 울 엄마는 니 알아서 벌 받는다고 했으니 이걸 어쩔꼬 했다.차비는 우리집에서 가방을 머리에 이고 돈암동 산 하나 넘으면 바로 삼선교가 나왔었다. 그래서 엄청 등산을 한 것이다. 지금 생각인데 그 때 넘 운동해서 그런가 살이 아직 안 찐 것 같다.그래도 돈은 모자르다. 그래서 엄마가 준 헌금을 두고 한 참 고민을 했었는데 나중에 벌 받으면 그건 그때가서 고민하고, 난 나라적인 망명이 아닌 만화책방으로 종교적 망명처럼 헌금을 만화가게에 잘도 갖다가 주었다. 나 헌금 안냈다고 우리교회 망하겄냐 했는데 아직 그교회 잘 부흥하고 있다. 다음 스토리가 잠도 못 오게 할만큼 궁금한 것이 모두 만화책에 있었는데. 그건 공짜로 볼 수 없으니 오..주여 나를 용서 하옵서서.

주일날 예배드리다가 헌금 할 시간 되면 난 기도하는 척에 그냥 훌쩍 넘어간 거 아마 울 엄마 알면  빗자루들고 쫒아 오실지 모를일이다. 지금은 울 엄마 독실한 권사님이신데 딸은 요모양으로 요꼴이네. 으이그 자식이 되가지고.

 

그래도 이렇게 하다보니 그 만화책방에 있는 만화책은 모조리 다 보게 되었다.

나만 오면 주인이 그런다. 아직 신간이 안왔어..내일 와라?

그럼 난 그런다.

 "본 거 또보면 돈 안내도 되남유? "주인도 어리버리하게

 "그래라 ..."

지금 생각해도 전에 본 거라도 볼 때 마다 권수에 얼마씩은 챙겨줘야 하는데.

그래서 난 만화책을 또 보고 복습하는 학생이었던 것이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니 더 할 일이 없다.지금처럼 보충학습도 없었고 자율학습도 말 그대로 내가 내맘대로 놀다가 가도 그만이었다. 학교 담넘어 떡복이도 오뎅도 그 때 먹은 것들이 지금 맛잇다는 피자보다 더 맛있었다. 하옇튼 징글맞게 공부도 지지리 못하는 만큼 놀기는 무진장 놀았다.

그런데 그 만화책방이 우리집 옆 골목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어이구 나에게 이런 호시절이 따로 있을까 싶어

 허구헌날 주야장창 만화가게 지키고 있었던 여학생이 바로 나였다.

울 엄마 나 찾으러 만화가게에 열내며 오신다.

"너 또 돈 가져갔냐?"

" 응 ..엄마오면 애기할려고 했는디..."

 

" 너 이 다음에 뭐 될려고 그러냐?

기껏 만화책 봐가지고 뭐 될 것 있다고...우라질 내가 이사를 가야지. 이거 딸하나 있는 거

칠칠이 팔푼이로 등신 만들겄네!"

만화책방이 옆집알고 우리 엄마는 진짜 이사를 갔다. 그것도 바로 다니는 교회 옆으로.

하이고 일주일 내내 새벽예배부터 수요 저녁예배 금요 철야 예배에. 근디 또 우리 학교옆에도 무슨 유명한 목사님이 큰 교회를 짓고 교회문이 열리니 이건 날마다 부흥회가 열리는 것이다. 그 당시 우리들 인사는 할렐루야!  아멘! 게다가 그 교회 옆에 대학교가 날마다 데모에다가 무슨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취루탄이 터지니 수업이고 나발이고 모두 집으로 도망갔었다.나의 십대땐 이런 시대인데 만화라도 못 보면 자살해도 괜찮을 듯 싶은 것이다.

니 나중에 뭐 될래? 울 엄마는 나를 두고 늘 그렇게 기도를 하실 듯이

하도 하셔서 귀에 못이 된 말들이 그 당시엔 쇠귀에 경을 읽는 울 엄마였다.

밤늦게 만화책방에서 돌아오니 화가 난 울 엄마는 대문을 아예 잠근적이 많으셨다.

그래서 담도 잘 넘어 댕기곤 했는데

하던 짓도 실수라는 것이 꼭 일어난다.

하필이면 개집위에 발을 다뎠는데 지붕이 나무 판자대기라 그만  폭삭 주저 앉았다.

다행히 개는 없었지만.있었다면 나는 또 혼난다.

 

아침이 되니 울 엄마 도둑이 들었나 고개만 갸우뚱하시고

하여튼 그 만화책방은 지금 재개발되어 흔적도 없고

우리집도 달동네 재개발 구역이라고 하더니 이십오층짜리 고층 아파트로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나의 만화시대는 고스란히 땅속에 묻혀버린 것이다.

내내 서운하다. 지금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