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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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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떼어 먹은 여자.


BY 천정자 2007-08-08

서울의 달동네는 비가 많이와도 끄덕없다.

가장 높은 곳에 물이 고일리 없고. 둥둥 떠내려가는 홍수는 테레비 속에서만 봤으니 나와는 먼 나라 애기고.

 

네 가구가 올망졸망 세를 들어 부엌 한 칸, 방 한칸을 끼고 복도처럼 주욱 늘어선  안 마당에 이제 막 시멘트를 들어부어서 하얗게 굳은 장독대가 있는 우리집이 있었다.

담도 없이 방을 두고 바로 사람다니는 골목이 있어 늘 우리 집보다 더 높은 데 사는 김씨 아저씨가 흥얼 흥얼 노랫소리가 아주 잘 들렸고.연탄골뚝 사이에 노상방뇨하는 고등학생을 보고 옆 집 아줌마는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가위들고 나온다고 하니 싸다가 놀란 남학생 바지춤도 챙기지 못하고 뛰어가는 것도 여러 번 목격했었다.

 

당시엔 부업이라는 것이 참 많았다. 종이 봉투 만들기도 해 봤는데. 처음엔 아주 잘 만들어서 엄마는 나만 일을 시켰다. 나도 공부보다 일하는 게 더욱 나을 듯 싶어 종이봉지를 만들었는데, 엄한 나의 공책을 죄다 뜯어서 만들고 나중에 만만한 종이가 없으니 이젠 교과서도 뜯어서 만드니 울 엄마 기도 안 차나 보다. 다 치워버려라! 이랬다. 그래서 나는 또 치웠다,

 

그래서 다른 부업을 또 알아보셨나 하얀 양말을 한 보따리 갖고 오셨다. 모두 면 양말인데.

목이 유난히 길어 나는 스타킹인 줄 알았다. 엄마는 목이 긴 흰 양말에 토끼풀처럼 예쁜 색실로 요렇게 저렇게 하면 후딱 꽃 한송이가 완성이 되고 금방 한켤레가 화사한 꽃 양말이 되었다. 나나 울 엄마는 약간 다혈질이 있다. 그러니까 성질이 조금 급하고 덤벙대는 사람이 조신하게 바느질을 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어디서 도를 닦으라고 해도 한 나절에 후다닥 해치울 두 모녀가 하룻만에 녹초가 되었으니, 나머지 완성하지 못한 양말을 그냥 도로 갖다주라고 해도 울 엄마 얼굴이 여간 난처한 게 아니다.

 

 그래도 한 나절 수고한 돈을 받으려면 그 양말을 다 완성 해서 갖다줘야 한단다. 난 더 이상 못한다고 방바닥에 뒤집어져 누워 버렸다. 할 수 없이 울 엄마는 바로 옆 칸에 사는 약간 비염이 있어 항상 코를 킁킁 거리는 영선엄마를 찾아 간 것이다.

 

그렇게 일 주일이 지났을까. 울 엄마도  영선네 집에서 같이 그 양말을 한가마 정도 다 완성하고 그렇게 갖다 줬는데 수금은 한달 후에 준 단다. 한 달 후라... 그 당시 하루벌어 하루 먹는 시대인 만큼 송장 치워 벌써 애저녁에 다 썩을 날짜라고 영선 엄마가 드립다 킁킁 거리며 싸우니까 또 일주일 후에 오란다. 아예 영선 엄마는 그 한 가마나 되는 양말 보따리를 번쩍 들어 머리에 이고 내 다시 일주일 후에 온다고 하니까 그럼 내일 오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기다렸다. 그 돈 받으면 영선 엄마랑 울 엄마랑 뭐 뭐 할 것이고 또 뭐도 사고 하더니 갑자기 에구 저 칠칠맞은 울 딸내미 국어책도 다시 사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종이 봉투를 국어책을 찢어 만들어 버려서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교과서는 있나 그것도 아니다. 맨날 시간표를 보면 뭐하나  엉뚱한 요일 것을 챙겨 그 수업시간에 다른 반에 교과서 빌리러 가는 덤벙대는 난데. 아직 울 엄마는  이런 사실을 모르신다. 하긴 모르는 게 약이지만...

 

뭐든지 기다리는 것은 지루하다. 그 당시엔 어디 은행에 돈을 입금해 준다거나 몇 시에 송금 해줄께요 이런 것도 없었다. 영선 엄마하고 울 엄마하고 식전 댓바람에 씩씩하게 갔는데.

 

두 분이 코가 빠진 것인지 얼굴이 심상치 않은 얼굴로  돌아오신 것이다.

난 철딱서니 없이

" 엄마! 돈 받아 온 거야? " 했더니

영선 엄마가 느닷없이 그런다.

시상에 내가 한 번 더 그 양말을 이고 날라 버려 야 되는디 킹킹!! 와 말려가지고 켕켕 !! 그 년 밤새 야반도주 하게 해버렸디야.. 켕..야이그 허리야 .. 그 조망만한 양말 꽃수 놓다가 내 삭신이 다 쑤신다고? 킁킁!!

 

그 후 울엄마 다시는 부업을 하지 않았다.

나도 국어책없이 사학년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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