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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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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잊지않은 사람


BY 그린플라워 2023-03-26

어린시절부터 대학부까지 같은 교회에 다니고 지금까지 카톡을 주고받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2년 남자선배가 우리엄마를 뵙고싶다고 내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냐고 했단다.
기억이 가물거리는 선배인데 엄마께 알아보니 총기가 남다른 엄마가 담박에 기억난다고 했다.
그 선배 아버지께서 47세셨을 때 후두암이 걸려 병석에 누우셨는데 자식은 7남매인데 생활고로 쌀도 떨어지고 시집간 딸에게 편지를 부치고 싶어도 우표값이 없어서 못부치고 계신다고 했단다.
여전도회 회장이었던 엄마는 새로 부임해오신 전도사님 댁에 도둑이 들어 단벌인 양복을 가져갔다는 소식을 듣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일단 양복을 사드리고 남은 돈으로 쌀 몇말과 약간의 현금을 그 선배 아버지께 드렸단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분이 돌아가셨는데 산꼭대기에 있는 그집을 삼일간 드나들면서 무사히 장례를 치러드렸단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되던 해에 장위동 쪽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교회도 옮기고 해서 까맣게 잊은 일이었다.
그 선배의 배우자는 내 여동생과 이화여고 동기동창이라 동생 둘까지 6명이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과천에 살지만 초대하는 이더러 오게 할 수는 없어서 우리가 분당으로 갔다.
장브랑제리 케잌을 사들고 모임 장소로 가니 주차장에서 내리면서 서로를 금방 알아봤다.
맛있는 능이백숙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그때 그 시절 이야기로 세시간도 짧았다.
그 선배는 경기고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서 다른 야간고로 가서 졸업하고 바로 공무원이 되었다가 너무나 일을 잘해서 고위공무원이 되어 정년퇴직 후 좋은 곳으로 특채되어 아직도 현직에 있다고 했다.
헤어질 무렵 엄청나게 예쁜 꽃바구니를 엄마께 드리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차에 대저토마토도 큰 상자로 두상자 실어주고
동생이 돈봉투도 드리려는 걸 엄마가 그렇게까지 하시면 부담스러워서 다시는 못만날 거라고 하니까 봉투는 도로 넣었다고 했다.
다음에는 과천으로 꼭 놀러오시라 하고 헤어졌다.
내가 은혜를 입은 이에게 도로 갚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대신 다른 이에게 베풀며 사는 게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 선배처럼 다시 찾고 싶은 분들이 있으나 찾을 길이 없어서 안타까운데 그 선배는 오랜 숙제를 푼 것이라 후련할 것 같다.
앞으로 우리 동기들 모임에도 이따금 온다니 또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