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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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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버스가 가다.


BY 천정자 2006-02-20

아휴! 할아버지 그 걸 갖고 타시면 어떻게 해유?

한 이십키로 쯤 되는 마른고추를 실으니 버스안이 매움한게 재채기를 하고 그런다.

다음 정거장엔 할머니가 수탉을 보자기에 쌓아 머리만 삐죽 튀어나오게 하고 타니

운전기사가 단단히 잡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한다.

아침 오전 버스를 타면 난리 법석이다.

옛날처럼 차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운전기사만 있는 시골버스가  덜컹거리고

동네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장날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장에 내다 팔 것들이랑

장에가서 무엇을 살 것인지 궁리도 하고

병원에 들려서 침도 맞고 무릎에 좋다는  약도 타갖고 와야 한다고

버스안이 동네 사랑방처럼 들썩들썩 한다.

 

한 면단위라도 어는동네 누구하면 아! 하고 다 아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사는 동네에

내가 처음 이사올 때 젊은이는 다 나갈려고 하는데 뭐하러 여길 들어오냐 하는 사람도 있고,

이왕 이렇게 이사왔으니 잘 살라고 하는이도 있었다.

 

특히 젊은 아낙이 귀한 동네에 난 최고로 어리고 뭣도 모르는 아줌마였다.

남편은 농사를 짓기 위해선 동네 어르신한테 자주 얼굴을 뵈여  익혀두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도무지 무뚝뚝한 성격탓에 잘 웃지도 못하는 못생긴 마누라였으니 남편도 갑갑할 일이 였을 것이다. 더욱이 직장이 시내도 아닌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나갈 큰 도시였다.

이런 상황에 굳이 왜 시골로 이사왔냐고 동네어른들이 의혹의 눈빛으로 보시기도 했는데...

 

일일히 찾아 볼 엄두도 못 내는 난 유일하게 모두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 버스였다.

버스기사도 웬만하면 동네 어른신들을 알고 계시는 듯 했고

일년 반 동안 버스를 타다 보니 누구네 집에 이사온 애기엄마라고 하면 이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분도 계셨다.

 

시골버스엔 노약자 자리가 따로 없다.

운전기사님 뒷 좌석부터 맨 뒤에 턱이 있는 곳 까지 어른신들이 앉으면 그만이다.

아침엔 학생들이 타기는 하지만 아예 앉지도 않는다.

여름이되면 수박하우스동네를 지나면  수박냄새가, 딸기 하우스를 지나면 딸기향기가 창문에 매달려오는 버스.

 

난 그버스에서 동네 어른신들을 한 분 한 분 알음 알음 집안 속사정도  아픔도

늙어가는 마을사람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