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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산 내 인생


BY 해피앤딩 2005-09-22

 

      헛산 내 인생

                            2005년 7월10일 박송경


  나는 요즘 내가 헛살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계획해가며, 궁리해가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었던 내 인생이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대신 한심하다고 동정했던, 주말마다 찾아가는 우리 시골농가, 옆집 아저씨는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한다.

76세인 옆집 아저씨는 약 3년 전 위암 수술을 받으셨는데, 두 달 전부터 악화되어 임종을 앞두고 있다.

아저씨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순전히 내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두 달 전에 내가 외국으로 주말여행을 다녀오려고 했을 때, 아저씨는 15일간 식사를 제대로 못해서 급속히 야위기 시작했고, 5남 2녀인 자식들과 친지들은 그의 임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말이 되면 서 너 평 남짓한 방안에, 아저씨의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 증손녀, 증손자까지 가득 모여 앉아 있었다.

모두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열심히 찾아 왔다.

그 조그만 방에 그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더구나 누추한 방안에 웃음 가득한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저씨는 야윈 볼에 발그레 핏기까지 살아나서 미소 짓고 계셨다.

어쨌든 내가 주말여행에서 돌아올 때 쯤, 아저씨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려니 확신했기 때문에 슬며시 부조 돈까지 아저씨에게 건네었었다. “맛있는 것 사 잡수세요.” 하고.

그런데 옆집 아저씨는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다시 살아나신 듯 열심히 웃고, 가까운 친지들도 여전히 열심히 웃으며 찾아오고 있다.

병들어 저 세상 가는 길은 병원 냄새가 가득하고, 근심으로 표정이 굳어지고, 가족들은 병간호에 지쳐, 마음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서 모든 일이 끝나기를 바라는 거라고 믿었던 나는 어리둥절해지고 아저씨가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자식들이 더 이상 부모 모시기를 싫어하는 바람에 혼자 쓸쓸히 임종을 하는 노인네들의 사연도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데, 알코올 중독자가 틀림없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아저씨는 분명 인간다운 임종을 천천히, 차근차근, 재미나게(?) 맞이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옆집 아저씨의 집은 주말마다 잔치 집 같다.

갓난아기부터 어른까지 활기차고 웃음이 넘친다. 큰소리나 울음소리라곤 들리지 않는다.

얼핏 들여다 본 방안에는 사람들이 편히 발을 뻗을 수도 없을 만큼 모여 앉아있다.

모두들 웃고 있다. 웃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위암에 걸려 아파야할 아저씨도 별로 아파보이지 않는다. 그저 비쩍 말라, 달라 보일 뿐이다.

아저씨는 가족에 둘러싸여 행복해 보인다.

죽어가는 사람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다.

알코올에 찌들어 허구 헌 세월 살아가는 것 같던 옆집 아저씨.

벙어리인 아내가 받는 장애인 수당과  삼만 오천 원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삯일로 아내가 버는 품삯마저 술로 탕진한다고 손가락질 받던 아저씨.

그래도 어쩌다 도시에서 가져온 색다른 음식을 나누어드리면, 아내 몫이라고 남기던 정 많은 아저씨.

5남2녀의 자녀를 두었지만, 제대로 고등학교 교육까지 받은 자식은 막내아들 하나인데, 바로 3년 전 그 떠돌이 막내아들이 신용카드로 3000만원의 빚을 졌다는 전화독촉을 신용카드회사로부터 받고 아저씨는 충격을 받으셨다.

아저씨가 생전 만져보지도 못했을 거금 3000만원!  6개월 후 아저씨는 위암 판정을 받고 위암 수술을 받으셨다.

살고 싶으면 절대로 다시는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의사의 경고를 겨우 한두 달 지키시는 듯싶더니,  결국 전처럼 술에 절어 사신 지 3년 여 만에 아저씨의 위는 다 없어져 버렸단다. 

아저씨는 명대로 살다가 가련다며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신 모양인데, 자식들은 또 자식들대로 가시는 길, 정성을 다해 모신다고, 매 주 어김없이 와서 화목하게 아저씨를 웃긴다.

지난주에는 마지막 땅뙈기 1000평을 파셨다고 기분 좋게 한잔 걸치고는 까무러치듯 쓰러져 누우셨다.

‘장례비용을 마련하시는 것은 아닐까’ 문득 내게 스치는 생각이었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이 아저씨를 부축해서 외출했다.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아저씨 동생 집을 찾아간단다.

아저씨의 동생이 아파서 찾아올 수 없기 때문에 아저씨가 찾아 간단다.

아저씨는 오래, 오래 사실 지도 모르겠다.

그만 내가 착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세상에 순응하며, 잔꾀 없이 살아온 아저씨는 “인생 버리기”가 훨씬 쉬울지도 모른다.

계획해가며 궁리해가며 살아, “버릴 것이 너무나 많아진” 내 60평생이 웬일인지 아저씨의 인생만큼 풍성해보이지 않아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