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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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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길


BY 플러스 2011-09-28

두 달이 넘도록 많이 아팠습니다. 

 

자기 잇속 차리기 바쁜 세상에 별별 일이 다 많은 거고, 원래 통이 무지 컸던 사람인 거처럼 가장하고 그냥 넘겨버리면 그만일 것도 같았는데..   그게 잘 안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걸 속일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분노가 되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려 했고, 일 년이나 지나도록 그걸 알지 못했던 거, 참을성 부족한 나를 위한 연단이라고 받아들이려 애쓰며 참고 또 참아 그 세월을 지나 온 나 자신이 바보 같이만 느껴져 화가 치밀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관한 것이었기에, 아픔은 더욱 증폭되고 증폭되었던 모양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존경하게 될 때에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는 것처럼, 한 사람으로 인해 죄 없는 세상 자체가 싫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내 의지와 정신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내 감성은 나 자신이 그런 터무니 없는 과대감정 속에 여지없이 빠지고 말 수 있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내내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에는 빨리 비엔나를 떠나야만 잊혀질 것 같았던 일을, 이제는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기는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몸이 떠나지 않아도 마음으로 놓고 떠나버리면 더 이상 내게 영향을 주지는 못할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괴로운 것은, 그것을 내 안에서 승화시켜 다른 것으로 내어 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인해 없었던 일처럼 잊어버리고 말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여름 한국 출장을 다녀 온 남편이 사 온 책들 중에 읽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하이데거가 쓴 숲길이라는 책입니다 

 

지은이의 이름만 보아도 소화하기 어려울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어려운 책에 그 두께 또한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읽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책 표지 때문입니다. ^^ 쭉쭉 뻗은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연두색과 노란색의 나뭇잎들이 아름답게 수 놓인 표지 말 그대로 숲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책의 본문이 시작되는 첫 장 하나 앞에 이런 글이 달려 있습니다.

 

 

     수풀(Holz)은 숲(Wald)을 지칭하던 옛 이름이다. 

     숲에는 대개 풀이 무성히 자라나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끝나버리는 길들이 있다. 

     그런 길들을 숲길(Holzwege)이라고 부른다.

 

 

 

그 뒤에도 몇 구절이 더 달려 있지만, 앞에 인용한 부분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작고 아름다운 숲 인줄 알고 금세 통과해버리려고 시작한 산책이었는데, 그 숲은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큰 숲이었고, 그렇게 숲의 어느 부분인지도 알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끝나버린 숲길의 끝에 내가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처음에 가려고 한 분량은 그 만큼이 절대 아니었는데

 

지금도... 내 속에 칼 하나가 들어 있어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스로를 상처 내고 있는 것 같은 이 아픈 시간을 곧 지나그것을 밖으로 꺼내어 정교하게 움직여 아름다운 조각품 하나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2012. 4.26 추가)

        하나님은 인간도 흙으로 '빚으셨다'는데... 감히 제가 칼을 운운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구인 손을 두고.. 

        거친 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