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의 엷은 웃음이 섞인 마지막 영상이 지나가고 고요함만이 남았다.
이윽고 영선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 밖을 향한 그녀의 눈에 아파트 앞 주차장이 들어선 공간 중앙에 있는 키 큰 나무의 윗부분이 들어왔다.
아직은 초록의 기미 조차 보이지 않는 긴 세모꼴의 나무에는 미처 떨궈내지 않은 마른 나뭇잎들이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사이로 성기성기 붙어 있었다.
손을 직선으로 뻗어 길게 공간 속으로 연결하여 늘이면 잡힐 것 같은 위치에 선 나무의 꼭대기를 바라보던 영선이 문득 자신이 선 공간이 10층임을 인식했다.
'땅에서 볼 때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는데... '
영선이 거실 유리창에 가까이 다가가 밖을 내다 보았다. 옆 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여럿 보였다. 모두 거뜬히 10층 쯤에는 닿을 것 같았다.
이 나무 저 나무로 시선을 옮기며 높이를 가늠하던 영선이 곧 초록잎사귀들로 덮일 그들을, 그리고 그들이 모인 푸른 숲을 상상하며 미소지었다. 그녀의 머릿 속에 각인 되어 있는 정경들이, 푸른 숲들, 푸른 산들이 마치 다시 들여다 보는 사진 속의 장면들 처럼 한 컷, 한 컷 지나갔다. 아름다운 장면들이었다.
'자연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어느 계절 하나 자연은 아름답지 않은 때가 없는데... '
긴 숨을 몰아 내쉬는 영선의 눈이 창의 위쪽 하늘로 옮겨갔다.
맑은 날은 아닌데도 하늘은 유리창의 썬팅으로 인해 초록을 머금은 파란색으로 보였다.
영선의 머리가 갑자기 맑아져왔다.
'그래. 어차피 맨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리고 어떤 색이든 하나 넣은 유리창으로밖에는 세상을 볼 수 없다면, 맑은 파란색의 유리창으로 세상을 보는 거야.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랑'이라는 판타지도 넣어서 말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