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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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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러스 2006-01-28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이름이 나오는 성경 구절은  욥기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인터넷에  표시된  두 구절 중의 하나를 찾아   성경책을  열었습니다.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영어 성경에 보니 '묘성'은 플레이아데스로  '삼성의 띠'는  오리온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욥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가운데 들어 있는 대목인 것이지요.  

 

욥기는  내가  즐겨 읽고 싶어하지 않는,  성경 속의  이야기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시가인  욥기는,   동방에  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직한 자인 욥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당하게  된  큰  재앙과  고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문을  모른 채  갑자기  닥친  큰  재앙 안에서  재 가운데  앉아  뼈까지  스미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그의  말들은  차마  읽기가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려 했던 그도  가시지 않는 고통 가운데에서  점차  무너져가고 맙니다.  한 편,  그  고통 안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이야기하며   욥을  정죄하는  세상의 친구들의  시각에  대응해서  자신의  순전함과  결백을  주장하는  모습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는  대목이곤 했습니다.

 

나는  욥기가  말하려는  정확한  의도를  알 수는 없습니다.   고난을  통한  축복이라는  판에 박힌  귀결로도  말하고  싶어지지 않습니다.   후에  욥이  회복하게  된  축복도,   그가  어이없이  당하게 된   이전의  고난의 무게와  비교하면,  쉽게  그런  귀결을  납득하고  싶어지지 않습니다.   또,  고난은  반드시  죄의  대가로  치뤄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그것을  통과하여  우리를  연단하시는  기회로  삼으신다는   말에  대해서도   덥석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습니다.   욥이  토해내는  말들,   그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하여  회의하는  부분들에  이르기까지  깊은  동정심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함께  애통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욥과  그를  위로하러  온  세 명의  친구들과  그리고,  엘리후라는  젊은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곧바로  시가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폭풍 가운데에서  갑자기  말씀하십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대답하라..고  하나님이 욥에게 요구하십니다.    단단히  준비태세를  갖추고  얘기해보라는  것이지요.    그 대목에  이르면  나 자신도  함께  마음이  움찔하게 됩니다.   마치  나 자신에게  주님이  요구하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주님이  물으시는  질문들에  대하여,  성경에  나열된  질문들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일들에  관한  예들이겠지요,   그  어떤  질문이든  욥으로서,   또는  어떤  인간이든   주님의 이치를 안다 하고  대답할  일들이  있을까요.   그것은  왜 이유없는  고난이  자신을  덮쳐 왔는 지에  대해  항변하고  싶었던  일 조차  마찬가지였겠지요.  

 

주님이 마치 폭풍우처럼 몰아치듯  하시는  질문들에 대하여 욥이  대답합니다.

 

" I  am  nothing  -how could I ever find the answers? " 

 

자신의  처지의  곤고함과  부당함을  항변하며  애통해하던  욥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물음들  앞에서  그저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자'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대목은  나로 하여금  욥이  그 때 느꼈을 참담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그 nothing 이라는  말 앞에서  눈물까지  왈칵 솟으려고 합니다.

 

전능자는  더 계속하여  질문합니다.   그리고  욥은  다시 대답합니다. 

 

"나는 주님께서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으며,  아무도  당신을  멈추게 할 수 없음을 압니다.   주님은  누가 무지함으로  주님의 지혜를 가리우느냐고 하셨지요.   그것은  바로 저 입니다.   바로 제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들에 대하여  내 입으로  이야기하였나이다.  "

 

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있으나,  그러나  낮아져서  엎드러진  욥을  봅니다.   그리고  욥은  그  참담함 가운데에서  이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말하겠으니 들으라,  내가 네게 질문하겠으니  너는 대답하라 하셨지요.    내가 이전에는 주님에 대하여  들었더니  이제는 내 눈으로 주님을  봅니다.   내가 한 모든 말들을  철회하나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재와 먼지 가운데 앉아  주님께  회개하나이다. "

 

이 장대한  서사시같이  느껴지는  욥기는  내게  어떤 두려움을  줍니다.  욥이  마지막에  발견한  희망이  내게는  아직  완전한  받아들임까지는  되지 못한 듯 합니다.     그러나,  그 완전한  받아들임 조차  불가능한  존재이기에,    마음 속에  이는  미약한  순종의  마음이  차라리   귀한  것일런 지도 모릅니다.   그   '온전한 받아들임을  바라는  마음'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