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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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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렁쇠 굴리는 소년


BY 플러스 2005-11-22

칠십이 넘은 한 원로문인이 강단에 섰습니다.  해박한 지식으로 많은 예화를 들어가며,  군집한 청중들에게 지식과 유머를 선사하며,  우리 시대 리더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진정한 리더쉽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모델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음성은  위성방송을 통한 공중파방송,  즉 텔레비젼을 통해 울려나오고 있었습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  그 방송을 듣고 있던 내게 굴렁쇠 소년의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그 이야기는 자신에 대한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나 온 인생에 있어서 영적인 체험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어둡고 조용한,  외로움으로 가득하여 무릎꿇을 수 밖에 없었던 때에도,  그러한 체험을 해 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그 곁에 계셨을 것이며,  단지 그것을 자신이 느끼지 못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말하길,  다시 잘 돌아보면,  그가 그런 영적인 체험을 단 한 번 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6살 무렵,  한낮의 햇볕이 찬란하던 시골길을, 어린아이인 그가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던 어느 순간,  그 찬란하고 조용한 햇볕이 내리쬐이는 그 길에서 갑자기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만일 6살인 그가 죄가 없이 깨끗한 사람이었다면 그 순간 하나님의 존재를 알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죄인으로 태어난 작은 생명체인 자신,  그저 누군가 자신의 옆에 계심을 느끼며,  눈물 흘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는 자신이 평생 글을 써 온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  자신이 알 수 없었던 그 무엇인가를  깨닫고  알아가기 위해  그처럼 글을 써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만일 자신이 이미 깨우친 사람이었다면,  자신은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깨우침에 이르른 사람이라면  글이라는 것은 더 이상은 종지쪽지에 불과한 것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므로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노문인의 이야기를 귓가에 스치도록 하며 듣고 있었던 나는,  그가 그 소년의 이야기를 할 때에 귀를 열고 들었으며,  그리고 마음이 뭉클해져 왔습니다.

 

칠십이 넘은 노인이 된 그 소년은,  시골길을 굴렁쇠를 굴리며 달리던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마음에 어떤 목마름을 가지고 그것을 찾아나가는 진지함과 순수한 갈망을 놓지 않은 채,  살아왔던 것입니다.  나는 그 목마름을 이해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내게 어느 날,  나 또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을 줄줄 흘렸던 때가 스쳐지나갔습니다.   중학교 1학년의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는 더욱 철부지였던 나는,  그 즈음 한 친구의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습니다.  그 친구의 집은 4층짜리 건물과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어느 일요일,  친구의 집에 놀러갔던 나는 친구를 따라 그 건물에 세들어 있는 작은 교회의  중학생들을 위한 예배에 참석했었습니다.   젊은 전도사가 인도한 그 예배에서 나는 무엇을 들었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임은 분명했겠지요.   그 이전에는  한 번도 예수님이나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본 기억이 없으므로,  내게 그 이야기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나고,  기도를 하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을 따라 눈을 감았을 때에,  그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생전 처음,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눈물을 줄줄 흘렸던 것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도 멈출 수 없이 내 볼을 타고 끊임없이 그리고 소리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하여  철부지가 철이 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뭔가 달라져야 할 것만 같다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도 그 날을 넘기지 못했을 뿐,  나는 그저 이전같은 중1 여자아이였을 뿐입니다.  교회에 출석을 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의 나는 늘 무엇인가를 찾아내야만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잊고 살 때가 더 많았지만,  가끔씩 그런 내 안에 결핍된 그 무엇인가를 확인하면서 말이지요.  

 

나는 내가 이 낯선 곳에 온 것이 좋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모두 미션스쿨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또 대학시절 부터는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으면서도,  또한 결혼 적령기가 되어서 급한 마음에 주님께 처음으로 작정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았으면서도,  또한  하나님 안에서 결혼과 출산이라는 큰 일들을 돌보심 안에서 이루게 되었음에도,  내가 진정으로 나의 목마름을 주님과 연관시키고,  진정으로 알게 되기를 원하며 마음을 드린 것은 이 곳에 와서,  여러 가지 고난을 겪는 가운데 이루어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결코 신실하고 모범적인 신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생각해 볼 때에 가끔  예수님을 만난,   이 천 년 전 한낮의 뙤약볕 아래 우물가 옆에 서 있던  한 여인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세상의 헛된 일들을 구하고 살면서도 늘 목이 말랐던 그 여인을 만나주신 주님을  생각해 봅니다.   내가 주는 물은 세상의 물과 같지 않으니,  네가 이 물을 마시는 날에는 정녕 다시는 목마르지 않으리라,  하신 말씀에  그 물을 제게도 주시옵소서 하던 그 여인을 또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내 안에 주님께서 주시는 그 생명의 물이 가득히 넘쳐나기를 바래봅니다.  그리하여  내가 다시는 목마르지 않으며,  내 안의 생명의 물을  목마른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마음과 사랑을 내가 갖게 되기를 또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