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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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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닮았겠노


BY 모퉁이 2011-05-26

"00아빠! 나 며칠 집 나가고 싶어.

어디 가냐고 언제 올거냐고도 묻지 말고 갔다오게 해줘"

대답대신 얼굴만 빤히 쳐다보는 남자의 눈은

왜 그러느냐는 질문 처럼 보인다.

묻지도 말라는데 왜 묻냐고..대답도 하기 싫다.

 

몇날 전 점심,

어깨가 아파 물리치료 중인데다 찬이 마뜩찮아

김장김치 송송썰어 참치깡통 하나 열어

사실 내가 했어도 좀 성의없는 김치볶음밥을 해서

냄비 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몰라라 하긴 했다.

식탁에 앉은 큰딸녀니 얼굴색이 똥 밟은 색이다.

뭐 이런 무성의가 있나 싶은가보다.

라면 하나를 먹어도 제대로 된 사발을 찾아 담아 먹는 스타일인줄은 안다.

하지만 나 그날은 정말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순간, 딸녀니를 향한 내 질팍한 목소리에 쇠소리가 섞이고 말았다.

"아이구 공주님!무례한 이 무술이를 용서하시옵소서.

쇤네가 요즘 심신이 곤하여 공주님 밥상에 신경을 쓰지 못하였사옵니다."

 

마음이 많이 고약해진 상태였다.

친정엄마와 40여일 함께 지내다 보내고 난 뒤

그동안 힘든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뒤섞인데다

오른쪽 어깨근육이 뭉쳐 밤잠을 설칠 정도의 통증 치료가 길어지고

화'까지 치미는 증상이 겹쳐 참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딸녀니의 작은 행동이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을만큼 크게 작용을 했다.

모두 출근하고 난 뒤 메모 하나 남기고 사라질까?

만약에 내가 집을 나간다면 남은 식구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이 남자 화를 낼까,이해를 할까.

떠나기도 전에 반응부터 궁금하니 원...

 

따르릉...

"응..오빠다. 작은집 숙모님이 돌아가셨다"

사촌오빠로부터 받은 숙모님의 부고소식이다.

집을 나갈 사유가 발생했다.

남편과 동행해야 될 자리긴 하지만 사정상  혼자 가기로 했다.

짐을 쌌다. 최소한 2박3일은 집을 비울수 있는 기회(?)다.

 

숙모님께 감사했다.

명절이나 엄마 생신이 아니면 우리 다섯자매 다 모이기가 쉽지 않은데

숙모님이 우리를 한 자리 만들어주셨다.

하루만에 집으로 돌아가기 너무 아까운 기회를 놓치기 싫어

즉석 제안 하나 내놓은 것이

우리 다섯자매 일박이일 외박을 하자는 것이었다.

남자들과 자식들 다 떼놓고 순전히 우리 다섯이 떠난 여행이 여태 없었다.

언제고 이런날 한번 만들고 싶었는데

내 소갈머리 비뚤어지고 숙모님 돌아가신 날에 실행하게 될 줄은 몰랐다.

 

부산으로 날랐다.

해운대는 때이른 더위에 상의 탈의객들이 쉽게 눈에 띄고

작게는 다섯살에서 많게는 열일곱살 터울의 다섯 여자가

해운대 모랫길을 어슬렁거려도 보고

부산에서 몇 안되는 해녀언니가 직접 잡았다는 회맛도 보고

전망좋다고 내세운 제법 그럴싸한 모텔에서

그동안 못했던 우리들의 이야기에

배꼽잡는 게임에,추억이란 새김질 하나했다.

동백섬을 돌아 남포동거리를 배회하는 정도 밖에 안되는 일탈이었지만

나름 충분한 이유에 부응했다고 위로했다.

 

남편은 내가 문상을 마치고 올 줄 알았을테고

아이들에겐

"오늘 너희들이 집에 오면 엄마 없을 것이다.

어디 가는지 언제 오는지 궁금해 하지 마라."

작은 딸은 어딘지만 말해달라고 글썽이고

연신 문자로 안부묻고 걱정하였지만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큰딸은 돌아오는 날에서야

보고싶으니 얼른 돌아오라는 문자가 전부다.

 

딸을 둘 키우나 둘이 참 다르다.

큰딸은 생긴거와 달리 말이 없고

작은딸은 반대로 애살맞고 종알종알 말도 잘한다.

저들로 인해 웃는 날도 있지만

저들로 인해 아픈 날도 있다.

엄마니까, 엄마한테니까 쉽게 뱉는 말이 서운하기도 하고

엄마니까, 엄마한테니까 불쑥 하는 행동이 얄밉기도 하다.

나 또한 엄마에게 쉽게 뱉은 말이 없잖을 것이다.

내 똥 구린줄은 모른다고,

내가 엄마한테 하는 짓은 짐짓 모른체하고

내 딸이 나한테 구는 짓만 서운코 야속하다 소란을 떨다니

에즈녁에 듣던 소리

꼭 니 닮은 딸 하나 낳아 키워봐라던 어른들의 일침을

내가 겪고 있다.

전망좋은 모텔방에 누워 언니들의

"00이(큰딸)는 꼭 니(나) 닮았데이~"

이 말이 꼭 아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