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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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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자리 난 자리


BY 모퉁이 2010-03-23

청년실업에 일조를 하던 형님댁 조카가 서울 모 회사에 취업이 되었단다.

딸 하나를 위해 몽땅 이사를 올 수는 없고 부득이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지인을 통해 구해놓은 방이 들고나는데 일주일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간에 우리집에서 거했으면 어떻겠냐는 타진이지만 결국은 그렇게 해달라는 말이다.

당연히 해야될 일이며 나가있겠다해도 붙들어 올 일이기에

스물아홉된 조카와 아래로 두 살씩 터울진 우리집 두 딸과 합해서

한 집에 여자 넷 남자 하나가 일주일을 지냈는데...

 

딸만 다섯을 키우던 울엄마 심정을 백번 이해할 기회였다.

아침마다 북적대는 화장실이며 드라이 소리며 거울 앞에 서는 순서가 진풍경이다.

하나는 바람나오는 드라이기를 들고 있고 하나는 머리를 푸는 매직기를 들고 있고

식탁 위에 사과를 하나씩 물어가며 화장품을 찍어바르고

와중에 나까지 출근을 해야 되는지라

아침신문에 무슨 기사가 났는지 제목도 훑어볼 시간이 없었다.

일주일이 짧은듯 했지만 돌려보니 길기도 했다.

주말을 이용해 형님내외가 오셨고

조카는 이름하여 분가를 하게 되었는데

주방살림은 내가 챙겨주기로 하고

형님은 모자라는 부분과 세간살이를 채워주셨는데

이것저것 챙길 것들이 자잘구레 많기도 했다.

작은 살림 하나 나는데도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데

나중에 딸 시집 보낼때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왠만하면 우리집에서 거두고 싶어하는 남편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내 마음도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

조카도 내 자식이나 매한가지라 하지만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구석이 많다. 

혹시라도 서운한 마음 가질까, 혹시라도 눈치준다 여길까.

허겁지겁 빵조각을 먹고 가던 날은 아침 굶겼나 싶어 종일 신경이 쓰였다.

형님이야 괜찮다 하지만 내가 괜찮지 않았다.

일주일이 한 달 같다는 조카의 말이 왜 자꾸 마음에 걸리는지.

이래서 식구 하나 들이는 것이 어려운 것이구나. 

 

깨끗하게 도배가 된 방에 짐을 부리고 세간살이 정리를 해주고 

또 언제 오실지 모를 형님 내외분 내려가시고

돌아온 내 집에 밤이 되니 휑하니 한 자리가 빈 듯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크다더니 

고작 일주일 복작거렸는데 조카가 머문 자리가 덩그마니 넓네.

수북하게 쌓아놓았던 옷가지며

화장품에 악세사리 가방이 놓여졌던 화장대가 썰렁하다.  

 

밥은 잘 해먹는지,

문단속은 잘 하는지,

가까이 사는 사람이 지각한다고 늦잠은 자지 않았는지, 

형님도 걱정이겠지만 나도 염려가 된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조카는 예의 그 씩씩한 목소리로

"작은엄마~~저 월급타면 맛있는 거 사 드릴께요~~"

생글생글 웃음이 전화선을 타고 넘어온다.

 

앞으로 반찬통 많이 준비해야 될 것 같다.^^

 

 

 

***

초등학교 5학년 쯤이었을까.

서울사는 오빠가 사 온 선물이라며 노란색 멜빵가방에

바지통이 넓은 통바지를 입고 학교에 온 반 아이가 참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필통이며 연필도 서울제(?)는 달라보였고

치마 밑에 신고 온 타이즈도 질이 달라보였다.

서울이란 곳은 내게 너무나 먼 나라같은 곳이었고

내 생전에 서울에 한 번 가볼수나 있을까 싶었다.

수학여행도 서울로 가던 시절이었지만

아쉽게도 나는 경주 불국사 외에는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다.

서울 사람은 다 예쁘고 다 잘 먹고 다 부자인줄 알았다.

어느 자식이 서울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서울서 사왔다는 양말 하나로도 으쓱해했던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몇십년이 더 지난 지금 그런 시절 다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형님은 아직도 그런 세대를 살고 있는 듯 했다.

딸의 서울입성이 자랑스러운지 지인들과의 통화에도 은근히 자랑이 묻어있었고

상대방 역시 부러운듯 축하해주는 분위기였다.

참 순진하신 우리 형님.

나는 내 고향으로 가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