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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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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택배상자


BY 모퉁이 2008-10-24

남편 이름 앞으로 배 한 상자가 배달되었다.

받고 보니 누가 보냈는지 이름이 없다.

방문을 하겠노라고 전화를 미리 주었고, 우리집 주소 성명 모두 정확하게 기재되었건만

정작 보낸 사람은 주소만 있을 뿐 이름도 전화번호도 없다.

혹시 남편은 알까 싶어 전화를 해봤지만 모르쇠란다.

어허 이걸 어찌하나.

짐을 내려놓은 택배 직원은 이미 떠났고 하는 수 없이 택배회사로 연락을 취했다.

운송번호로 보낸 사람의 주소를 알 수 있다며 알려준 번호와 주소는

도대체 알 수 없는 어느 회사 이름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니

우리집에 그런 물건 보낸 사실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분명히 받았는데 보낸 사실이 없다하니

그렇다면 이게 어찌된 일인가.

보낸 사람의 주소는 아파트 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회사는 아닌듯 하고

무언가 착오가 생긴 것은 분명한데 도대체 그 출처를 어떻게 알아내야 하는지.

하도 먹을거리로 장난치는 사례가 왕왕 있어서

아무리 내가 먹고 싶은 배이긴 하지만 마음대로 개봉을 할 수가 없었다.

전화통만 붙들고 내 추리력을 총동원시켜봐도 답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주소지로 되돌려 보내기로 하고 접수를 했다.

내일 가지러 온단다.

배 상자를 저만치 밀쳐놓고도 보낸 이가 자꾸 궁금하다.

이럴 때 번득이는 머리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

오만가지 생각 끝에 혹시나 싶어 택배회사 홈페이지에 가보니 운송확인 하는 코너가 있었다.

시키는대로 더듬더듬 해보니 어디서 접수되어 어디를 거쳐 어떻게 배송되었는지

시간과 함께 나온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물품이 접수된 영업소로 전화를 해봤다.

이만저만한 일이 생겼다고 자초지종을 말하자 잠깐 머뭇거리는 시간이 있나 싶더니

운송번호가 잘못 입력된 사실을 시인한다.

뭐얏!! 이렇게 간단한 대답을 들을 일을 왠종일 머리 굴리느라 애썼다니...

보낸 이는 남편의 후배였다.

조용한 성품이란 것은 알았지만 이건 아닌데...

수수께끼는  풀어졌지만 하마터면 배가 곯아 빠질 뻔 했다.

반송은 취소하고 배송자를 알아냈다고 연락을 하고 배 상자를 열었다.

물이 줄줄 흐르는 배 하나 배가 불룩하도록 씹어 먹었다.

 

지금은 메일이다 전화다 해서 편지 쓰는 일이 드물다.

한참 편지를 주고 받던 시절에 온전한 주소를 쓰지 않고,

 서울에서~ 부산에서~ 아니면 누구가~~이 정도로 보내기도 했었다.

 친한 사람에게도 그랬지만 간혹은,나는 잘 있으니 어디에 있는지 알려고는 하지 마라는

매몰찬 편지를 보낼 때도 그랬었다.

주소 없는 편지, 이름 없는 편지를 받아보면서 가슴 아렷던 기억 있을 것 같다.

성공하면 가겠노라며 고향집에 부친 편지에도,

가족 반대를 피해 떠난 철부지 사랑의 연인이 띄운 부모님 전 상서도,

주소없는 편지는 눈물편지가 되곤 했었다.

 

 

이름없이 배달된 배 상자에서 옛날 이야기가 겹쳐졌다.

생색내는 것 같아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인사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다행이다.

고향 간 길에 배가 풍년이길래 생각이 나서 보냈다는 쭈삣대는 목소리가 쑥스러운 모양이다.

에구참 주변머리 하고는....

"00씨!! 배 잘 먹을께요. 다음에는 주소만 적어도 알겠으니 또 보내줘요~~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