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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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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방 할아버지


BY 모퉁이 2006-08-25

열쇠를 복사하고 구두수선을 업으로 하고 계신 할아버지의 가게는

동네 목욕탕 건물 맨 끝퉁이에 두어평 남짓한 작은 가게였다.

방이라고 구분 지은 곳은,따로 문도 없이 바닥보다 약간 높게 올린 시멘트 바닥에

여름에는 거미줄같은 먼지를 덮어 쓰고 있는 낡은 선풍기와

겨울엔 선풍기 모양을 한 전기 난로가 계절따라 자리를 달리하고,

머리맡이 될 듯한 자리에는,

온갖 국물이 넘쳐 묻은 휴대용 가스렌지 위에  올려진 때묻은 양은 냄비와  

입 벌어진 일회용 커피봉지와 아무렇게 둘둘 말린 이불 곁에 나무 베개가

 순서도 없이 제 멋대로 놀고 있는 풍경은

내가 구두굽을 갈러 갈 때거나 지나는 길에 슬쩍 훔쳐보아 낯설지 않는 풍경이다.

햇빛 가리는 지붕 밑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의  얼굴빛은

뙤약볕에 그을린 농부님 얼굴보다 더 짙은 색이다.

코 끝이 흔히 말하는 딸기코인 것과  얼굴색이 짙은 이유가 같지 않을까 싶은 것은

말해준 이 없는  그저 나혼자의 짐작이다.

손톱 끝에 구두약 묻은 손으로 후루룩 라면 한 입에 김치를 낼릅

집어 드시는 모습이 어쩌면 혼자 사시나? 궁금할 뿐이었다.

특별한 상호도 없이 빨간색 페인트로 적은  [열쇠,구두수선 ]이 납량특집 제목처럼

뻘건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구두방은 늘 어수선하다.

 

저쪽 길 건너에 대형 찜질방이 생기자 목욕탕은 대충 수리를 해서 불닭집으로 변신했다.

우리집 네 식구 2만 원 내외로 외식 할 수 있는 유일한 집이 이 불닭집이어서

나로선 내심 좋은 현상으로 받아 들였건만,불닭집의 문전성시는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불닭집의 간판 조명이 자꾸 흐려져 갔다.

안동불찜닭의 진수를 보여주마던 여사장님의 너털한 웃음이 사라지고

[주방 아줌마 구함]이란 광고 대신[점포 세놓음]이란 종이나부랭이가 붙어 있더니

불닭집 간판은 내려지고 동네가 잠시 어수선해졌다.

불닭집과 구두수선 가게가 붙어 있는 건물이 리모델링 된단다.

 

원래 이 건물은 슈퍼와 정육점과 꽃집,미장원,휴대폰 대리점,

그리고 불닭집 구두수선 순으로 나란히 한 건물을 쓰고 있는 대형 건물이다.

이층은 당구장이며 삼층은 또다른 용도의 건물로, 높지는 않았지만

꽤 길다란 평수로 임대업을 하는 주인은 낡은 건물 하나로 수입이 짭잘하여

동네 갑부라고들 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 건물이 주인이 바뀌고 새롭게 단장을 할 것이란다.

 슈퍼와 정육점과 미장원은 장사를 계속했지만 꽃집과 휴대폰 대리점은 이사를 갔다.

기술도 좋지,한쪽은 장사를 해가며 하루가 다르게 건물은 변해갔다.

얼굴이 비칠듯한 반질한 벽에 통유리 문을 달아 놓으니 근사한 빌딩같다.

이층은 독서실과 원룸이라는데 주변 모양새와 독서실은 어째 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점포 주인을 찾는 광고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구두수선 할아버지는 어디에 계셨을까.

혹여,이 곳을 떠나신 것은 아닐까.

오가며 만나면 인사도 던지시고, 낡은 구두 굽을 고쳐주는 고마운 손의 아저씨인데 말이지..

 

시간이 지나자 낡은 건물이 깨끗하게 단장을 하고 새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저 곳에 어떤 업종이 들어와 나를 편하게 해주려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불닭집이 다시 들어오면 좋겠구만

그런 소문을 들리지도 않고 [사무실,점포 임대]라는 문구가 크게 걸려있다.

 

정해진 요일의 외출길.

오토토토토...저만치서 오토바이 한 대가 다가온다.

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바지를 입은 아저씨의 모습이 낯설지만 낯설지가 않다.

가까이 와서야 아함~구두수선 할아버지시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던지기 전에 먼저 웃으신다.

"어머 할아버지 멋쟁이세요~ 어디 다니러 가세요?"

"출근하쥬~"

 

새 건물 한쪽에 할아버지 가게가 자리 잡았다.

건물 끝퉁이가 아니고 꽃집이 있던 그 중간 자리에 제법 넓게 자리했다.

뻘건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던 [열쇠 구두수선 ]대신

전문가의 손을 빌려 유리문에 깔끔하게 오려붙힌  [열쇠 구두수선]이 환하게 웃고 있다.

후즐근한 셔츠에 때로는 까치집을 짓고 있던 머리가

하얀 와이셔츠에 단정한 빗질로 할아버지를 아저씨로 변신시킨

할아버지의 웃음이 하얀색 와이셔츠보다 더 뽀얗게 번지고 있었다.

우리 동네 단 한 곳 뿐인 구두수선가게가 사라지지 않아서 좋고

할아버지의 사업장이 넓어지고 깨끗해져서 덩달아 기분좋다.

할아버지의 새 보금자리에 열쇠꾸러미보다 더 많은 기쁨이 걸리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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