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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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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복이려니


BY 모퉁이 2006-08-23

시집살이 억세게도 했던 친구를  세월은 시어머니와 같이 늙히고 있다.

시동생 시누이 다  분가시키고 이젠 다리 뻗고 살만하다 싶으건만

가슴에 돌무덤 하나 지고 사는  친구.

 

쉰 듯한 목소리가 타고난 소리꾼의 목소리로 인정받으면서 소리에 심취해,

바쁜 가운데 모처럼의 여가를 실오라기만큼 우려내어

그마나 옭아매는 가슴 한구텡이 풀어내는 돌파구 하나 뚫어놓고 사는 친구.

 

저 신세 시어머니 되면 돌아가, 곱게 빗은 머리칼 쓰다듬으며

노래하고 텃밭 가꾸며 살고지고  마련한 어느 농가 너른 땅에

첫 호미질을 시작할 때는 쉬엄쉬엄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줄 알았는데

아니 글쎄 이것이 하루가 모자라게 빡빡한 다부진 농사가 되어 버렸다네.

 

처음에는 몇 년 후를 바라보는 과실수를 심었다가

노는 땅이 아까워 심었다는 온갖 작물 중에

고추와 참깨를 거둬들이느라  유난히 길고 지리한 올 여름 한 계절을

온통 밭농사에 다 바치고 이제 그 기특한 수확의 별미를 느끼려는 찰라,

고전에 나오는 시어머니의 표본이랄 정도로 차갑던 시어머니

그만 미끄덩 자빠지셔 오른 팔이 부러지는 불상사가

남은 여름의 발목을 붙잡고 말았다네.

 

와중에 보고싶다며 보낸 장문 속에

처음 지은 농사의 깨알곡을 보낼테니 받으라는  뚜렷한 활자가 확대되어 들어온다.

앞머리 없이 빗어 넘긴 조선 여인네 같은 모습과

반가움에 잡은 손이 묵직하게 흔들리던 그녀의 손끝 맛이 아릿하게 메어져 온다.

올 봄에 농사 이야기 하면서 수확하면 저가 못 먹어도 보내겠다고 했을 때

'암암 그래야지..'하며 갚지도 못 할 말 빚을 져놓고는

키우고 거두는 도중에 더위를 먹고 풀독이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 이 주둥아리를 쥐어 박고 싶어졌다.

이제 와 막상 그 수확물을 보낼테니 받으라는 말이

염치가 없어 목구멍 끝이 자꾸 꺽꺽거린다.

수확이 대충 끝나면 객지 보낸 아들 면회도 할 겸

나를 보러 나들이 한번 하겠다던 계획이

팔 부러진 시어머니 간호로 물러서게 되었고

수술 날짜 정해놓고 짬을 내어 득달같이 달려가 빻은

 그 고춧가루와 참깨를 보냈다는 전갈이 헌날 내 박복을 탓하며

'내 복은 얼만큼일까?'물음표를 던지던 나를 참으로 못나게 만든다.

'도대체 너는 어찌 이날 평생 손에 일이 마를날이 없냐.'에

'다 내 타고난 복인걸..'하며 너그럽게 웃던 친구가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모처럼 우리집에 택배사 직원이 방문했다.

참깨 한 봉지와 잘 빻은 고춧가루가 정답게 들어 있다.

붉은 고춧가루는 여름내 익었을 친구의 얼굴색이고

한 톨 한 톨 모여진 깨알은 그보다 더 많이 흘렸을 친구의 땀방울들이리라.

 

참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친구.

무슨 일이 닥쳐도 '다 내 복이려니,,' 하며 순응하는 해심같은 친구야말로

지상의 천사가 아닐까 싶다.

수술 받은 시어머니 보양식을 고우고 있다는  음성 넘어

송송 맺힌 친구의 땀방울 하나 손등에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