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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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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정든 사람


BY 모퉁이 2006-07-19

 

그녀 나이 스물 넷에 우연히 정든 사람이 있었다.

키는 그렇다 치고 체격이 여자치고는 제법 큰 편이던 그녀에게

마음을 설레게 한 남자는 키는 그녀의 눈썹 께에 오고 체격 역시

그녀에 비해 많이 왜소해 보였다.

외로움이 컸던 탓일까.

짧은 교제 끝에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두 사람 결혼식에서 신부 옆에 서서 사진도 한 장 찍었고

신혼 생활을 시작하는 시댁으로 집구경을 갔다.

 

 마당을 가로 지르는 바지랑대 끝에 연결된 빨랫줄이 유난히 낮아

내 목에 철컥 걸려 고개를 뒤젖히게 했고

높은 문지방에 비해 방문이 낮아서 고개를 숙이고 방에 들어갔다.

신랑신부 인형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어서 오라고 인사를 하고 있었고

꽉 찬 화장품 몇 개가 새 것임을 뽐내고 있었고

벽에 걸린 사진의 신부 얼굴이 발그레 빛나고 있었다.

 

손님맞이를 하느라고 분주한 그녀는 오래전부터 살아온 집 처럼

아주 능숙한 손놀림으로 찬장 문을 열고 양념통을 찾아 내더니

우리가 도와 줄 것도 없이 뚝딱 한 상 그득 음식상을 들여왔다.

자그마한 남자와 키 큰 여자가 나란히 앉자 수저질이 바빠졌고

약간의 알콜이 들어가자 누군가가 그녀에게 노래 한 가락을 청했다.

마다하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숟가락을 입 가까이 대고는 부른 노래 '우연히 정든 사람'은 수준급이었다.

요즘이야 온 국민 가수화가 될 정도로 노래방이란 곳이 성행이지만

그때는 무반주 라이브로 보통 가수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낯설은 타향에서 의지할 곳 없던 몸이

우연히 너를 만나 정이 들었다

가진 것 없다만은 마음 하나 믿고 살자

다짐한 너와 나

이 세상 다 하도록 변치 말자 우연히 정든 사람아~'

노래는 이렇게 맺는다.

노랫말이 그녀를 대변 한듯 해서 새삼 새겨 들었던 노래이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노래 '우연히 정든 사람'이

어느날 나의 애창곡이 되어 있어 놀랬다.

낯설은 타향에서 의지할 곳 없던 몸은 아니었지만

가진 것 없다만은 마음 하나 믿고 살자던 사람과

이십 년을 함께 하며 되뇌는 가사

'이 세상 다 하도록 변치 말자' 를 가끔은 상실하고

뒤꼭지에 대고 구시렁을 한 바가지 갖다 쏟아 붓기도 하지만

그래도,그래도 내가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될 사람이기에

우연히 정든 사람의 다리 위에 내 다리 얹어 놓으며

하루의 감사를 다독이며 살고 있지 않을까.

 

그날 그 불후의 명곡을 남긴 그녀의 팔자는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깡촌이었던 창원 시골짝이 어마한 도시로 변하면서

그녀의 삶도 덩달아 도시화 되었고

남편의 지극정성을 커다란 몸에 받고도 넘쳐나서

이웃에 퍼주는 넉넉한 인심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이다.

그녀의 남편 역시 체구는 작지만 사랑은 무한대여서

두 사람 겉모습은 달라 보였지만

속모습은 처음부터 닮아 있었나 보다.

노래는 우연히 정든 사람이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