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5년 7개월을 하는 동안 해마다 여름 휴가를 함께 한
네 명의 못난이들이 있었다.지난시절의 사진첩을 꺼내보면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네 명이 키 순으로 나란히
서거나 앉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하계 휴가.
우리 일당은 거제도 구조라로 목적지를 정했다.
마산에서 충무로 충무에서 구조라로 향하는 길은 덥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지금은 mp3라는 조그만 기계를 목에 걸면 간단한 것을 그때는 바다든
산이든 어디로 가든 필수품목이던 물건이 있었으니 카세트 라디오였다.
요즘처럼 쿨맥스 셔츠가 있기를 하나,그렇다고 자가용으로 폼나게 여행을
하던 시절이 못되는지라 우리는 여행인지 고행인지를 베낭메고 손가방 들고
카세트 라디오 챙기고 에어컨이 있었던지도 모를 시외버스는 창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숨도 쉬기 어려움에도 참고 버티고 견디어 내는 저력이 있는 세대였다.
구조라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민박집 주인들이 줄을 서서 반겨주었다.
네 명의 처자가 내리자마자 어떤 할매가 짐을 들어 외갓집에 온 손녀를 데리고
가는 모양새로 앞서 걸음을 내달으셔서 우리는 재고 말고할 겨를도 없이 할머니
집에서 짐을 부려야 했다.
이미 신혼부부 한쌍을 유치한 상태였고 우리가 묵을 방 앞에 또 방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는 그때까지 빈 방이었다. 할머니는 우리 짐을 마당에 내려놓고는 다음 버스의
손님을 맞으러 부리나케 내려 가셨다.
대충 짐을 내려놓고 우리는 우선 바닷물맛 부터 보기로 했다.
사실,나는 키는 좀 크지만 그렇게 볼륨있는 몸매가 못 되어서 수영복은 생각지도
못하고 핫팬츠를 준비했고 헐렁한 남방 속에 민소매 셔츠를 하나 입었고
친구들은 수영복을 입고 겉에 남방을 걸치고 구조라해수욕장 모랫길을 밟았다.
함께 따라 나섰던 카세트 라디오는 분홍색 보자기에 싸들고 갔더구만.
들은 소리는 있어서 물 속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체조를 헛둘셋둘 하며
적당히 팔다리를 흔들고 허리를 구부리고 시늉은 다 했다.
그리고 심장 근처에 물을 찍어 바르고 천천히 바닷물에 발을 적셨다.
그리고 저벅저벅 용감하게도 종아리를 지나 무릎을 덮어 엉덩이까지
물을 먹었고 드뎌 가슴팍까지 물을 적셨다.
내 친구들은 개구리 헤엄이지만 물에 뜨는 수준은 되었는데
네 발로 기는 수영을 남모르게 하고 있었다.
가끔 물 속에 숨기는 했지만 세숫대야에 얼굴 갖다대고 숨참기 하던 정도였지
수영이 아니라 물장난이었다.
남이 보면 웃을 짓을 혼자 신나게 하고 놀았다.
그때 수영을 좀 한다는 친구가 가까이 오더니 나의 이런 치사한 행동을 눈치채고
내 배 아래에 손바닥을 갖다 대면서 자기가 잡아 줄테니 겁먹지 말고 한번 뜨는
시늉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안돼..가라 앉을 거 같어..무서워이~]
괜찮단다.자기만 믿으란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했는데 믿는 물에 빠지면 책임질겨?
검정색 타이어 튜브를 빌려 탈까 하다 남들 다 뜨는데 나라고 못 뜨랴 싶어
발꿈치를 떼는 시도를 해보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하나아 두우울~.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제법 깊은 곳까지 걸어 들어왔었나 보다.
그때 하필이면 내 다리에 쥐가 날 게 뭐람.
쥐 난 다리를 주무른다고 엎드리는 바람에 그만 물 속에 코를 박고 말았다.
그러다 중심을 잃고 나는 허부적 대기 시작했고 찝지름한 바닷물을 얼마나
먹어댔는지 (나중엔 물이 코로도 나왔다.) 지만 믿으라던 내 친구는 나를
끄집어 내려고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는지 둘 다 허부적 대었나 보다.
이러다가 사고가 나는 모양이다.
그때..어디선가 누군가가 내 팔을 잡고는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다리는 여전히 뻐근해서 움직일 수가 없었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손에
끌려 모래사장까지 나왔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세모난 수영 팬티만 입은
내 또래의 건장한 청년이 서 있었다.
바로 옆에는 아주 큰 천막이 쳐져 있었는데 아마 회사에서 단체 휴가를 오게
되어 있었는지 천막에는 회사 이름을 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무슨 조선소라고 적혔던 것 같다.
그 청년은 선발대로서 미리 온 직원이라고 했다.
쥐 내린 다리를 주물러서 풀어주었는데 나는 부끄러웠지만 말릴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런 와중에도 청년의 검은 얼굴의 옆선이 참 잘 생겨서 두어번 더 올려다 봤다.
다리가 풀리자 고맙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나는 더 이상 물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카세트 라디오를 지키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리하여 구조라 해수욕장에서 나는 구조 된 셈이다.
그런데 비극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물 놀이를 간다고 슬리퍼를 신고 갔는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그만 끈이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기고 만 것이었다.
달랑 한줄로 된 슬리퍼 끈이 떨어졌으니 이럴 어쩌나.
그렇다고 여분의 신발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근처에 신발가게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으니
꼼짝없이 맨발의 청춘이 되어 끈 떨어진 슬리퍼를 들고 난감해 하고 있는데
[이거라도 신으이소.]한다.
아까 물에 빠진 나를 구해준 그 청년이었다.
전원일기에 일용아제가 동네 마실 갈 때 신던 짙은 밤색의 플라스틱 슬리퍼였다.
물놀이에는 왓다였지만 스물 셋의 처자가 신고 다니기엔 좀 거시기한 신이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새신 헌신 가릴때가 아니지..
그렇잖아도 볕에 익은 얼굴이 더 익어서 화끈 거리는 얼굴로 나는 또 한번
[ 고맙습니다]를 고개 숙이며 중얼거려야 했다.
인연은 거기까지..
잠시 후 몰려온 사람들이 짐을 풀자 이 청년팀은 교대를 하고 돌아가야 했나 보다.
짐을 챙기는 청년에게 신발은 어쩌냐고(달라고 하면 어쩔려고..)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자 웃으면서 신고 가라고 했다.
또 고맙다.
밤색 슬리퍼를 신고 짐을 부려놓은 민박집에 돌아오니
그 사이 할머니는 새식구를 들여다 놓았는데 남녀 두 쌍이었다.
한쪽 방은 신혼부부.한쪽 방은 남녀 쌍쌍,어중간한 네 여자만
온 우리는 어째 어울리지 못할거 같다며 툴툴대던 친구들과
우리는 고체연료에 불을 붙이고 꽁치 통조림 찌게를 하고
고추에 된장에 갖고 온 반찬 다 꺼내놓고 숟가락을 들고 밥 뜸이 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막 아랫방 남자가 마당에 전기불을 켜면서 저녁은 마당에서 같이 먹자고 했다.
방에 있던 여자 둘이 걸려서 흔쾌한 대답을 못하자 진짠지 사실인지
방에 있는 여자는 사촌동생이라고 했다.흔히들 그렇게 말하지 뭐..
밥먹을 때가 되자 여자 둘도 나왔고 여섯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맛있는 밥을 먹고 뒷정리가 끝나자 아랫방 남자가 기타를 들고 나오면서
바닷가에 바람쐬러 가자고 하였다.방에 두 여자는 피곤하니 쉬고 싶다며
우리끼리 가라고 배려(?)를 했다.정말 사촌지간인가 보다.
음악소리가 들리고 번쩍이는 조명이 있고 시커먼 파도소리가 무서웠다.
멀지 않는 곳의 커다란 바위에 달랑달랑 앉자 남자가 기타 코드음을 잡더니
'물 소리 까만밤 반딧불 무리 그 날이 생각나 눈 감아 버렸다~~~♪'를 시작했다.
일기,밤배를 시작으로 우리는 서로가 아는 노래란 노래는 다 끄집어 냈던 것 같다.
남자가 갖고 온 포크송 책은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은 책이어서
밤바다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책은 작고 글씨는 더 작고 주위는 컴컴했으므로..
낯선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전혀 낯설지 않았던 것은 노래가 있어서 였을까..
그렇게 좋은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꼽이 붙어서 물을 발라야 될 듯 했고 눈두덩이 무거워 한 짐이었다.
아폴로 눈병이 찾아 온 것이었다.
세수를 하려고 수돗간에 나왔더니 먼저 와 있던 아랫방 남자가
펌프질을 해서 세숫물을 받아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안대 하나와 제비꽃 한 송이를 건네주었다.
[빨리 나으세요] 마주칠 눈길도 없는데 괜히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 눈으로 유람선을 타고 해금강 유람을 했다.
한쪽 눈을 막은 나는 맨 땅에도 어지러웠는데 일렁이는 물을 보니
속이 뒤집어지듯이 멀미가 심해서 결국을 왝왝 쏟아 내었다.
누군가가 등을 토닥였지만 누군지 궁금해 할 형편이 아니었다.
십자동굴이라는 말에 살짝 눈을 뜨고 그리고는 내내 눈을 감고 상상유람을 해야했다.
나로서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야 될 형편인데 친구들은 그럴 기미가 전혀 안 보였다.
예정대로 이박 삼일을 채우려는 심산이다.못된 가스나들..
신혼부부는 방에서 뭘 하는지 얼굴 구경하기도 힘들고
아랫방 남자들은 비진도라는 곳으로 봉사활동을 떠난다고 했다.
다들 즐거웠지만 나는 신세까지 진 것 같아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잘 가라고 하자 재밌게 놀다 가라며 악수를 청하는 손에 작은 성냥갑을 쥐어 주며
나중에 보라고 했다. 궁금증 많은 내 친구 얼른 낚아 채더니 펼쳐 보인다.
무어라 적혔던지 기억은 나지 않고 주소가 적혀있었는데
미안하지만 그 인연도 거기서 끝이다.
친구들은 바닷물에 몸 적시러 내려가고 나는 마당에 깔린 둥근 멍석에 누워 하늘 구경을 했다.
물색이나 하늘색이나 별반 다를것 없이 파랬다.
할머니 고무신을 빌려 신어 사진 속에 내가 앞코가 몽톡한 코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여차했으면 발에 맞지도 않은 그 고무신을 얻어 신었을뻔 했었구만.
이박삼일의 구조라 여행을 끝내고 돌아 오는 길.
밤색 슬리퍼를 신고 충무까지 나와서 충무 터미널 부근의 어느 구두방에서
내 슬리퍼를 꿰매 신었는데 그때 나는 그날의 추억까지 동그랗게 꿰매었나 보다.
물에 빠져 진짜 물 먹어,슬리퍼 끈 떨어져 낭패 물 먹어,
눈병 옮아 애꾸 물 먹었던 그 날의 추억을 몽땅.
그때의 친구들 모두 제 삶에서 충실하고
그때 그 짧은 인연 속의 사람들도 어디에선가 행복할테고
그들과 함께 했던 나는 여름만 되면 그 날의 기억으로 한번은 웃는다.
구조라에서 물에 빠진 이후 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수영은 배울 생각을 못했고
수영복을 한번도 못 입어봤는데 얼마전에 딸아이의 수영복을 방에서 한번,
딱 한번 몰래 입어보았다. 그리고 얼른 벗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