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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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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이 필 때면


BY 모퉁이 2005-07-08

 

누군가가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종교가 없다는 뜻으로 '무교'라고 말한적이 있다.

그렇지만 절에도 가보았고 교회도 가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동네에서 가장 높은 집은

언덕위에 하얀 벽집인 예배당이었다.

교회라고 하지만 의자도 없이 마루바닥에 앉아

눈감고 기도하고 얼룩무늬 옷(교련복)을 입은 고등학생

오빠가 가르쳐 주는 찬송가를 배우고 놀이를 하다가

간식으로 주는 빵이나 계란 한개 얻어먹는 재미가 전부였다.

다들 못살던 시절이라 교회라고 별 수없는지

신발장도 없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이

바뀌거나 잃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어서 요상한 노래도 생겼다.

'예배당에 갔더니 눈감아라 해놓고 신발 훔쳐가더라~'

곡조까지 생각나건만 육성으로 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

 

그러다가 누구의 꾐이었는지 어린 나는 언니들의 손에 끌려

다른 교회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 교회는 집에서 멀었다.

일본식 건물이었는데 처음 다니던 교회보다 예배당이 훨씬

깨끗하였고 그곳에서는 교련복 입은 오빠들과 노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채에 사시는 목사님 사모님이랑도 이야기 하고 놀았다.

생각해보니 주일날이 아니고 평일날 놀러갔었나..싶기도 하다.

 

흙마당에 돌이 울퉁거리던 우리집 마당을 보다가

시멘트 바닥으로 된 마당은 너무 깨끗해서 좋았다.

양껏 물기 머금은 화단에 갖가지 꽃들은 어린 나의

온 정신을 빼앗곤 했는데 거기서 인상 깊었던 꽃이 있었다.

맨드라미도 아니고,봉숭아도 아니고,채송화는 더 아니고

-이런 꽃은 우리집 담장 옆 장독대에도 있었기에-

저 꽃이 무엇이지?

한송이 같은데 수북하니 무리지어 핀 꽃이 너무 신기하여

사모님께 무슨 꽃이냐고 여쭈었다.

'수국'이라고 하셨다.

그때 본 수국은 한참동안 내가 좋아하는 꽃이름 대기에

단골로 떠올린 이름이다.

 

동네 입구에 작은 연립주택 앞에는

누가 키우는 것인지 커다란 화분이 여러개 나와있다.

그 중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이 보라색 보까색을 띈 수국이다.

낡은 화분인 것으로 보아 오래 키운 화초같으다.

수국이 필 때면 장마가 가깝다고 했다.

그래 그런지 요즘 수국이 한창이다.

 

언제던가.

그때는 수국이 피기 전이었으니 5월 쯤이었던가.

낡은 드럼통에 가득 심긴 이름 모를 화초를 보고

내가 그 사람에게 물었었다.

'이게 무슨 꽃나무인지 알아?'

한참을 쳐다보던 사람이

'음...깻닢'

 

그래. 수국잎은 깻잎을 닮기도 하지.

열매 맺기 전에는,꽃이 피기 전에는

무슨 나무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수국에 반하여 꽃만 볼 줄 알았지 그 잎에는

관심이 부족했던 내가 이제는 수국을 안다.

 

수국이 필 때면, 빵 하나 사탕 하나에 즐겁던 시절이며

 농담처럼 던졌던 그 말 '깻잎'이 저쪽 빈 하늘끝에서 다가와

잠시 내 눈가에 아른대다 흩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