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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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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BY 모퉁이 2005-04-11

과년한 딸이 있으면 빚진것 마냥 마음이 무겁다는 어느집

부모님 말씀이 내게는 도통 먹히지 않았었다.

그렇게 과년하지도 않았지만 한 해 전에 시집간 둘째 언니를

보낼때에도 넉넉치 못했는데 정해놓은 짝도 없었지만

있다해도 시집을 갈 형편이 되지를 못했다.

좀 더 벌어서 내 시집 밑천은 내가 만들겠다고 했었다.

 

스물 다섯이 되던 싸늘한 바람이 불던 2월 어느날.

멀쩡하게 생겨설랑 시집 못 갈까봐 걱정되었는지

대구에 사는 모 총각과 선을 보라는 명령이 있었는데

차마 선 보는 장소에 나갈 용기도 기운도 없어서

미리 시집가서 아들 하나 낳고 뱃속에 하나 넣고 있는

용감한 친구네로 피신삼아 저녁 빌 붙으러 갔었다.

 

괜히 머쓱해서 사진첩만 뒤적이고 있는데

허우대 멀쩡한 장정 한 사람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친구 신랑은 아니고 되체 누구시온지...

 

서로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뒤 듣게 된 자초지종은

친구 남편의 친구였었는데 아주 건강한 대한의 남아로서

자주국방에 애쓰고 있는 신분이었다.

평소 제복의 남자를 선망하지 않았던 터라

눈여김도 없었고,호감도 갖지 않았다.

오간 것은 단 한번의 눈마주침과 건성으로 나눈 술잔이 전부였다.

그리고 헤어졌고 연락을 기다리지도 하지도 않았다.

 

몇날이 지났을까.

겨울 나그네의 한 장면이 연출되는 순간이었다.

비록 낙엽 날리는 교정은 아니었고,청초한 대학생은 아니었지만

저만치서 내달리던 자전거 탄 남자와 정신없이 걷던 숙녀는

그만 부딪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두번째 만남을 했다.

 

놀라면서 쳐다본 얼굴은 어디선가 본 듯 하고

그 역시 어색한 웃음으로 '안녕하세요'가 첫 인사였다.

아~그렇구나.그 사람이구나.00이네서 본 그 사람...

 

그때까지도 별 호감없이 내 갈 길로 돌아서는 순간

그 남자의 한 마디가 발길을 멈추고 돌아보게 했다.

'저녁에 시간 있으십니까?'

 

휘영청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던 음력 정월 대보름날 달밤에

우리의 첫 데이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밉게 생기지도 않았고.체격 건장해 보였고

별로 깍아 내릴 점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후한 점수도 아니었다.

 

표현에 약한 나는 말수가 없는 반면

많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현이 정확한 남자.

내 나이 스물다섯,그 남자 나이 스물 여덟.

청춘이라기 보다 젊음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나이에

멋있는 프로포즈도 없이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남의 날이 잦아졌고

나보다 더 많이 나를 사랑한다는 그 사람의 말이 믿음으로 다가왔다.

 

화장기라곤 없는 맨얼굴로 처음 대한 남자.

집에서 입던 복장에 구겨 신은 운동화가 볼성 사나울수도 있었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풋풋했다는 남자.

취향도 특이하다며 웃었지만 감추지 않은 본 모습이어서

다음에 만날때에도 홀가분하기도 했다.

 

내가 갖지 못한 유머와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고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눈물이 있는 남자였다.

나보다 못한 이에게 빵 한조각이라도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결혼 후의 행동에도 나타나 나를 감동시킨 적이 있다.

 

돈은 없었다.

그렇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사치스럽지 않았고,거만하지 않았고, 소박한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었다.

돈은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킬 정도만 있으면 된다 했다.

남에게 빌리러 가지 않고,기회가 되면 남에게 단돈 얼마라도

받을 마음 없이 꾸어 줄 수 있는 정도만 있으면 된다했다.

 

열렬한 연애는 하지 않았다.

무덤덤한 듯 하지만 설레임은 있었고

직업상 헤어짐의 연속이었지만 기다리는 기쁨이 있었고

그러기가 힘들 무렵에 우리는 결혼을 했다.

물론 순조롭지 못한 애로가 있기도 했다.

시어머님의 반대에 서러운 눈물도 흘려야 했지만

내 사랑은 내가 지켜야 함에,우리는 지금 결혼 21년차에

예쁜 딸 둘을 낳고,가끔 소주 한 잔에도 행복했다가

하찮은 일로 다투어서 몇날을 부어 있기도 한다.

 

[당신이 먼저 좋아했지?]

가끔 내가 묻는 질문인데

세월이 한참 더 지나면 말해준다고 한다.

미리 말하면 내가 너무 기세등등 할 것 같다나..?

그렇다면 답은 나온거 아닌가?

이렇게 단순한 남자이다.

 

 

2004-09-15 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