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비가 질정없이 퍼붓던 어느 해 여름이었나.
데모로 점철되던 질곡의 시간들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치러내야 했던 80년대의 젊음들.
그 중간에 우리 오빠가 있었다.
날마다 눈에 핏발 선 불을 밝히고
며칠 동안 소식도 없다가
깊은 밤 엄마의 한숨이 달빛 타고 깊어 질 때
소리도 없이 살짝 들어와 또 며칠 간은 죽은 듯이 잠만 자고
그러기를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며
내 속에 간이란 게 죄다 녹아버리는 듯 애가 타던 날들.
그러면서도
나에겐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은,
지성인의 고뇌하는 그 모습이
일면은 부럽기도 했던 그 때.
부자간에 팽팽하게 당겨지던 신경전이
아버지의 눈물 앞에
스스로의 자괴감과 집안의 기둥이라는 자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피눈물 흘리는 학우들의 대열에서 벗어난 죄책감으로
한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마른 낙엽처럼 말라가던 오빠.
질식할 것 같은 공기 속 꼭 닫힌 오빠의 방에는
한동안 김정호의 음성만 오염된 공기를 휘젓고 다녔다.
허망함만으로 깊은 동굴을 채운 듯 처절하기까지 하던 그의 목소리
아니, 턱없이 맑아보이던 눈빛은 오빠와 닮은 듯한 착각도 하게 했다.
이젠 말을 잊은 걸까
스스로에 대한 죄의식이 그렇게 큰 걸까
아님, 아버지에 대한 항변을 그렇듯 침묵으로 대신하는 걸까
저러다 생에 대한 의지마저 놓아버리는 건 아닐까
차라리 아버지가 모른 체 하셨으면 나았을까
아픈 마음으로 숨어서 지켜보듯 하던 가족들 때문이었는지
어느 날 거짓말 처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사무실 앞에 우뚝 서 있던 오빠.
"나, 영화 구경좀 시켜 주라"
그 날 본 영화 제목이 뭐였는지
내용은 어떠했는지 기억나지도,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미동도 없이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다
때로 긴 한숨을 뱉는 오빠를 불안하게 흘깃거리며
그렇게라도 자신을 풀어낼 공간이 필요했음을 어렴풋이 짐작했을 뿐.
저 거무스레해진 눈밑을 어떻게 하면 다시 뽀얗게 만들 수 있을런지
어떡하면 저 뼈만 앙상한 몸피를 도도록한 살이 오르게 할 수 있을지
무엇이면 저 굳어 있는 입술에 웃음을 물게 할 수 있을지
오로지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던 극장 안.
내가 부지런히 오빠의 표정을 살피는 것처럼
오빠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 볼 것 같아 벌개진 얼굴이
오히려 어둠 때문에 다행스러웠던.
그리고 영화가 끝난 늦은 저녁,
레코드사 앞을 지나다 우연히 듣게 된 음악, 조용필의 <하얀 모래의 꿈>.
"이유같은 건 묻지말고 그냥 저 테잎 좀 사 주라"
달랑거리는 주머니 사정이 걱정스럽긴 했지만
오빠가 벌써 두 번째 입을 열어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턱없이 기쁘기만 했다.
하얀 모래처럼 무너진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었기에..
유달리 장마가 퍼붓던 그 해.
다시 숨죽인 오빠의 닫힌 방 안에선
김정호를 밀쳐낸 조용필의 우울한 꿈이
온집안의 문턱을 넘실거리며 무너진 모래성을 다시 쌓았다 허물었고
집 밖에서는 그의 마음을 대신한 대나무 숲이 스솨스솨 오래도록 울었다.
어쩌다 누리게 된 혼자만의 자유로운 밤의 유영.
즐기듯 깨어 밀려있는 책장도 넘기고
이리저리 카페를 배회하다
생각지도 못한 기억과 맞딱뜨렸다.
퍼득거리는 심장
후들거리는 손
그러나 결코 참담하지는 않다
이젠
다 지나온 기록들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