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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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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소고


BY 최지인 2005-11-02

 

평범한 일상을 걷다가

문득 쳐다본 하늘이 내 그리움인 듯 깊어 보입니다.

가을이라는, 단순히 계절적 논조를 들이대기엔

가슴 속에 일렁이는 결이 사뭇 남다른 것은

아마도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기쁨 때문이지 싶습니다.


경제 관념을 들먹이며

핸드폰의 숫자 버튼 보다는 저렴한 메세지를 애용하는 편이지만

오늘만은 큰 맘 먹고 힘주어 꼭꼭 숫자를 누릅니다.


"아, 아부지? 저예요 큰 딸이요..있잖아요,

저 이번 부산문인협회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서 장원 먹었어요"

"아, 뭘 먹어? 장원이란 음식도 다 있너?.."

울 아부지...

평생을 농투성이로 보내신 울 아버지는 장원이 음식인 줄 아십니다.


" 아니요, 그기 아니고 상이요 상.."

" 뭐? 무신 상? 밥상..?"

"아이고 아부지 참 나..아부지가 젤로 좋아하던 글짓기 상이요.."

그제야 알아들으신 울 아부지

"하이구야, 고맙다 고마워..니가 상구도(아직도) 그 꿈을 안 버리고

여적까지 잘 끌고 가는구나..오야, 자알 했다..장하다"

전화선 너머 슬쩍 흐려지는 말꼬리가

분명 눈물을 훔치시는가 싶습니다.


같이 울먹해지다가 그랬지요.

사실, 아부지를 팔아서 탄 상이다..울 아부지 멀쩡히 살아계시는데

내 글 속의 아부지는 벌써 저 세상 사람이다..그랬더니

울 아부지 그러십니다. 당신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열 번도 더 죽을 수 있다고.


전화기를 붙잡고 길 가에 앉아서 와락 울어버립니다.

길 가던 사람들이 의아하게 돌아봅니다.

저 조그만 여자가 미친 건 아닐테고..사연을 짐작하려 애쓰는

어느 할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얼른 일어나 황망히 자리를 뜨면서

자꾸 하늘만 쳐다 봅니다. 오늘 따라 하늘이 유난히 파랗습니다.


집채만한 구름이 서둘러 고층 빌딩 뒤로 걸어갑니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저 구름에 마음을 실으면

지금 내 그리움을 그대로 실어 아부지한테 데려다 주려나요.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귓가를 지나는 걸 느낍니다.

얼핏 거두던 눈길 안에

도시를 매달고 하늘을 오르는

고층 빌딩의 대형스크린 광고가 파랗게 웃으며 다가섭니다.

누군가의 펼치지 못한 꿈이,

아니, 나일 수도

우리 모두일 수도 있는 꿈들이 날개를 달고 욕망을 쏘아올리는 듯한.


잠시 아연해져서 발이 묶입니다.

우두커니 서서 한동안 몇 십초, 혹은 몇 분의 유혹 속에

내 생각과 소망을 얹어 방목의 자유를 거닙니다.

어느 순간

발 밑으로 서둘러 가을을 달려온 노란 은행잎이

이젠 감정을 추스려야 할 때라고 일러줍니다.

분명 목적지가 있었음이 그제야 생각납니다.

가던 길을 다시 걸으며

습관처럼 하늘을 또 올려다 봅니다.

스크린 속에서 웃고 있던 내가,

전화선 속의 젖어있던 아버지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

 

< 바위 > 란 제목

참 묵직하고 무게있는 주제이지요.

제게 작은 기쁨을 안겨 준 글입니다.

졸작이지만 내려놓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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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 위 >

 

뒷산마루 중턱에

세상의 속도를 잊은 소박한 세월 하나

묵묵히 하늘을 이고 있다

 

가끔씩 오르는 산행 길

누구 하나 표정을 주지 않는

그 곳에 앉으면

평생을 다랭이논 무두질로 살다 가신

아버지의 등 굽은 삶이

풀잎을 흔들며 걸어온다

 

새벽을 깨우는 기침 소리에

선잠 깬 마당이 부지런히 세수를 하고

곱게 비질된 하루의 정신이

겸손한 말씀의 은혜를 입던

 

살갗 그을린 당신의 삶이

커다란 정신의 무게로 머물러

빈 산 우는 소리를 저 홀로 담고 있는 바위

 

멀리서 걸어온 바람 한 점

흰머리를 쓸어 넘기며

만추로 드는 저녁답

언뜻 들여다보이는 당신의 세월이

삶의 깊은 환유(換喩)로 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