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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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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낭비 유감


BY 최지인 2005-04-01

내내 미루었던 봄맞이 대청소를

새 학년에 올라간 아이의 책상 정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늘 걸레를 손에 들고 살았건만 구석구석 들어낸 틈마다 쌓여있는 먼지가

시간의 켜를 느끼게 한다.

 

아직 손때묻은 아이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물건들을 정리하며

이미 옛날이 되어버린 나의 유년 시절을 지긋이 음미해 보기도 했다. 

처음엔 한껏 느긋하던 마음이,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딱히 누구에게 랄 것도 없는, 그 대상의 실체도 모호한 울화가 치솟았다.


 아이의 노트는 지나간 학년에 쓰던 대부분이 거의 반도 채워지지 않은 채

그 본연의 임무에서 밀려나 저만치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나마 필수 중요과목을 제외한 예체능 노트는

많이 써야 네, 다섯 장만 겨우 채운 채 말이다.

 

그럼에도 새 학년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고작 몇 장의 공간을 메우는 것을 끝으로 미련 없이 밀쳐두고

새 노트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아이의 표정은 어쩜 그리도 당당한지.....
 

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연필을 비롯한 지우개며 각종 학용품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무엇이든 보이는 곳에 찾는 물건이 없으면 찾아볼 생각은 않고

그때그때 자꾸만 사들이다 보니 한번씩 대청소를 하면

여기저기 채이는 게 바로 학용품이다.

 

바로 문만 열면 뭐든 쉽게 살 수 있는 생활환경의 변화도 한몫 했겠지만

어려운 시절을 거쳐온 우리 시대의 부모마음에서 기인한,

그 터무니없는 관용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내 자식만큼은 자신의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은 보상심리에서

무엇이든 요구만 하면 바로 코앞에 대령하는 지나친 사랑,

그 잘못된 인식 또한 크게 작용했지 싶다.


 " 있지, 이 노트 말이야. 아직 새것이나 다름없는데

앞에 몇 장 쓴 것만 뜯어내고 다시 사용하면 안될까".

아이가 내 말을 따라 줄거라 애써 믿음을 실으며 물었다.
 " 싫어요, 새 학년 올라갔으니까 당연히 새 노트에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친구들도 다 새 노트 가져오는데 저만 쓰던 것 가져가면 창피하잖아요".
하는 아이의 표정은 당연함을 넘어선 당당한 자기 주장이다.


 예전의 우리들이 학교 다닐 땐 어떤 모습이었던가.

물자절약은 당연한 정부시책이었고 노트는 겉장에서부터 줄 좍좍 그어서

페이지를 일일이 기록해 반씩 접어 알뜰히 썼다.

다 쓰고 나면 선생님께 확인 검사를 맡고서야 비로소 다른 노트를 사용할 수 있었다.

 

새 학년이 되어도 불변의 진리로 통하는 그것은 작은 지우개 하나,

연필 하나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었다.

연필도 너무 길게 깎으면 연필심이 부러진다고 짧게 여러 번 깎아 쓰는

부지런함을 요구하였고, 몽당연필은 볼펜 껍데기를 씌워 끝까지 쓰지 않았던가.

비록 예전의 정부시책만큼은 아니더라도

교육정책과 방송매체를 비롯한 각 가정이 연계된 계도적 방안이

꾸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은 무분별한 자원을 낭비하면서도

그 심각성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종이를 만드는 원료에서부터 재 이용된 폐지까지 수입해서 쓰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을 감안할 때 지금의 잘못된 인식은 심히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한 가정에서 보는 신문 일년 분량의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봇대 굵기의 30년 생 나무 한 그루가 필요하며

종이 1톤을 만드는 데에는 수령이 30년 이상 된 나무 약 17그루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일년동안 한 가족이 본 신문지를 모아서 재활용한다면

잘 자란 나무 한 그루를 살려내는 것과 같다.


 요즘엔 기업들이 어떤 물건을 만들 때 소비자가 꼭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도

타 업체와의 경쟁을 이유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자원낭비와 더불어

많은 쓰레기가 생겨나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생활에서 느끼는 주부의 입장에서 보면

일회용 아기기저귀를 비롯한 소모품들과 작은 메모지가 특히 안타까운 자원이다.

특히 종이컵 등 일회용품 들은 소비자들이 편리함을 추구한 결과

생산성을 부추기기도 했지만 그런 소비형태가

인위적으로 조장된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떤 물건을 많이 쓰는가는 우리가 누리는 혜택이나

복지의 질과는 무관하다는 걸 우리는 잊고 사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우리 후손에게 물려 줄 유산이 고갈된 자원으로 헐벗은 자연이 아닌,

아직 꿈꿀 수 있는 초록의 세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여백으로 남긴 많은 노트를 모아

꽤 두터운 한 권의 이면지 묶음을 만들었다.

이제 이 공간에 나만의 소중한 얘기를 담은 기록으로 가득 채워

말없는 행동으로 교훈을 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