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어나더+ 아이함께 시범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563

지하철 안에서


BY 최지인 2005-04-01

 '사람은 태어날 때 자신의 입성은 스스로 지니고 태어난다'고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는데
오늘 지하철 안에서 그 말을 곰곰이 곱씹게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뭐랄까, 따스하지만 염려스러움을 감출 수 없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가끔씩 하는 외출이다 보니 여러 가지 볼일을 한꺼번에 들고나선 터라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어둑어둑 해져갈 무렵이었다.
일찍 퇴근을 서두른 사람들이 합세한 지하철 안은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서로가 시선 둘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로 붐볐다.
그 틈새에서 겨우 자리를 비집고 앉은 어느 아낙네의 등에 업힌 아이가
머리를 유리창에 박아가며 우유 병을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얼굴까지 벌겋게 물들여가며 빨고 있었다.

파리한 낯빛에 초라한 차림새의 그 아줌마는 웬만큼 나이도 들어 보였는데
웬걸, 그 앞에는 꼭 빵 틀에 찍어내 놓은 듯 꼭 닮은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셋이나 더 조르르 서있었다. 쉴새없이 종알종알 거리는 아이들은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한 손에 어묵 꼬지를 하나씩 들고
저마다 아이 업은 아줌마의 아이를 한 번씩 건드리며 갖가지 표정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 네 명씩이나 되는 아이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광경이라 신기한 마음에 앞서 어쩌나 싶은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쪽으로 쏠리고 있었고
바로 내 맞은 편이라 나 역시 읽으려고 펴든 책은
그야말로 개 폼이 되어 온 신경이 자연히 그리로만 집중되었다.

한참을 서로 재잘거리던 아이들 중 남자애가
"엄마, 쉬 쉬...응,,아~~"
하며 다리를 비비꼬자 당황한 엄마가 얼른 가방을 뒤져 생수 병을 찾아냈는데
아직까지 생수 병엔 물이 반쯤이나 남아 있었다.
"물 줘, 나 물,,,먹을래.."
다리를 배배 꼬면서도 물병을 입에 가져가려던 녀석이 아차 하더니
얼른 옆에 선 형인 듯한 아이에게 물병을 내밀었다. 물 한 모금도 차례가 있는 법이라고.
그 와중에도 거절하지 않고 물 몇 모금을 받아넘기고
동생에게 돌려주는 형의 그 만족스러운 표정이라니.
형을 거쳐서야 돌아온 병의 물을 녀석은 입에 대고 벌컥벌컥 마저 들이키더니
바지를 훌러덩 내려 사정없이 고추를 들이밀고 기세도 좋게 쉬를 한다.
한 순간 기차 안에 묘한 침묵 같은 정적이 흐르고 오줌 줄기 쏟아지는 소리만 요란하다.

다들 웃음을 머금고 있는 사람들,
모처럼 표정들이 밝아져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들 참고 있는데
순간 내 옆에 있던 고등학생이 옆에 있는 여학생에게 직격탄을 날려 분위기를 깨뜨린다.
"야, 니 뭐보노,,,얼굴이나 가리고 봐라"
"우하하하~~~호호호~~"
지하철에 웃음이 진동을 한다.
"내가 뭘~~~니는 추책이다"
"어, 니 얼굴 빨개졌네...아이가"
그 순간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잠시 세상일을 잊고 거짓 없는 웃음을 뱉어냈다.

남들의 시선이야 어찌됐건 꼬마 녀석은
시원한 볼일을 끝냈다는 후련함으로 만족스런 미소를 씨익 짓는다.
그리고는 옆에 선 형한테 잠시 맡겼던 어묵을 냉큼 받아
다시 손에 꼭 쥐고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그래, 그렇구나. 사람은 나면서 자기 먹을 복은 타고나는 구나'싶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왜 그리 염려스러웠을까.
과연 먹는 복으로 이 세상을 헤쳐나갈 수만 있다면
네 명이든 다섯 명이든 무슨 상관이랴.
저 많은 아이들을 건사하고 무사히 교육을 마치기까지
엄청나게 들어가야 하는 비용은 누가 감당을 할런지.
그 많은 사람들이 한데 쏠렸던 관심이 내가 생각하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염려와 근심이었음은 조금씩 무거워지는 표정들을 지켜보면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 거리낌없는 그 여인네의 아이들을 향한
당당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이 존경스러운 건 또 왜일까.
이미 그만한 시선쯤 어딜 가나 겪었을 여인네의 가슴아픔도
그 초연한 듯한 표정에 다 쓸어 넣어 버무린 듯해 마음이 짠했다.

둘은커녕 하나도 버거워 웰빙이란 기조를 들먹이며
아예 자식을 두지 않은 가정이 늘어나는 추세인 요즘,
자연스럽게 위아래를 지키던 화목한 여인네의 아이들을 보면서
과연 어떤 생활 방식이 능사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날씨도 추운데 얇은 남방 하나에 아이를 업은 포대기가
추위를 막는 방편의 다였던 그 여인네의 화장기 없는 미소가 내내 떠나질 않는다.
올 겨울이 많이 따스했으면 좋겠다.
그녀가
방한복 따윈 없어도 행복한 웃음 지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