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제법 쌀쌀하다.
포도 위를 뒹구는 노란 은행잎이 겨울을 등에 지고 바람에 밀려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살 속을 파고드는 찬바람 때문인지 괜시리 마음이 바빠진다.
요즘을 사는 우리들은 계절이 바뀌어도 겉으론 딱히 변하는 게 없다.
문명의 이기가 우리에게 합리적인 생활과 그에 따른 시간적 여유를
선사하기도 했지만 반면에 소중함을 엮어갈 그 무엇을 앗아가 버렸다.
그나마 지금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전의 아련한
향수라도 되새기련만 회색빌딩 숲만 보고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소중한 기억을 길어 올릴까 심히 염려스럽다.
모든 계절이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 겨울의 문턱에 서면
참 많은 단상들이 기억의 세포를 흔들어 깨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예전 나의 겨울은 짚단 가리 에서부터 왔다.
아버지가 털털거리는 경운기로 논에서 타작하고 모아두었던
벼 짚단을 차곡차곡 실어다 집 앞마당 한켠에 높다랗게 가리를 쌓아올리면
그건 곧 겨우내 누렁 소에게 먹일 양식이자 요긴한 땔감이기도 했다.
그 경운기 소리가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면
외양간 누렁 소의 코가 한 뼘쯤 벌쭘거렸다.
자신의 먹잇감이 날로 풍성해 지는데 대한 동물 특유의 본능적인 기쁨의 표시일 터였다.
며칠을 집과 논을 오가던 경운기가 비포장 도로에 박힌 돌멩이로 인하여
엉덩이에 불이 난 것 같다는 아버지의 투정이 밥상 위에 널릴 때쯤이면
엄마의 본격적인 겨울 준비도 서둘러 시작되었다.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른 엄마의 모습이 하루 종일
파란 배추밭에서 높이를 달리하는 햇살과 어울렸다.
잘 동여져 있던 배추를 하나 하나 솎아내서 시장에 내다 팔 것과
김장 할 것을 따로 구분해서 마루 한쪽 끝에 산처럼 쌓아 올렸다.
엄마의 손길이 바빠질수록 설레는 내 마음도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겨울을 나기 위해 며칠이고 계속되는 일련의 과정들은
어린 눈으로 보기엔 가슴 벅차고도 아름다운 작업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새벽, 여명 속에서 엄마는 장독대에 정한수 한 그릇을 떠놓고
겨울 양식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셨다.
몇 날 며칠을 마치 요술사처럼 변해서 파랗기만 하던 통배추를
힘도 안들이고 슥슥 반으로 잘라 커다란 소금물 통에 절여 놓고
갖가지 속 재료들을 준비하셨다.
밤늦도록 부모님이 마주 앉아서 마늘을 까는 모습이나
도자기처럼 예쁘게 생긴 절구통에 마늘 찧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톡 쏘는 듯한 냄새에 애써 무감각 하려고 애쓰며 잠을 청하던 것도 이 때였다.
집채처럼 많아 보이던 배추들이 소금물에 씻겨
얌전하고 가지런하게 준비되고 아가의 목욕통보다 더 큰 양념그릇이
풍성한 냄새를 풍기며 그 옆에 놓였다.
빨간 고무장갑으로 무장을 한 엄마의 손길 따라
기세 좋게 풍덩 빠져 속속들이 빨간 옷을 입던 배추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하는 양을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양념 묻힌 노랗고 고소한 작은 속잎을 똑 떼어 돌돌 말아서
"맛좀 보련? 자아 아아"
하시며 입에 쏙쏙 넣어주시던 엄마의 은근한 사랑의 눈길.
먹는다는 즐거움에 앞서 가슴으로 가득 밀려들던
그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훨씬 더 좋았다.
너무 많이 받아먹어서 나중엔 속이 쓰리고 아팠지만
나를 바라보며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엄마를 위해서라면
까짓 거, 그 배앓이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그 또한 한 밤중 엄마의 거칠지만 따스한 손길이
배 위에서 살강살강 춤을 추게 하는 구실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제비 새끼들처럼 나란히 엄마를 향해 앉아 아 입만 벌려 김치를 받아먹다가
아버지의 호령에 쫓기듯이 방으로 들어가던 형제들.
입가에 벌겋게 물든 흔적을 서로 손짓하며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젖히던 푸른 함성.
지금은 모두가 추억의 갈피에서나 들춰보는 기억이다.
김장 김치는 잘 버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장을 잘해야 겨울 내내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엄마가 차곡차곡 버무린 김치를 아버지는 뒤란에 묻은
커다란 독에 갖다 차곡차곡 공기가 들어갈 여지가 없이 잘 쟁여 넣으셨다.
김치를 넣는 사이사이 커다랗게 썬 무를 꾹꾹 눌러 함께 넣었는데
김치가 익을 때면 젓가락에 꾹 찍어 빙글빙글 돌리며 먹는 그 맛이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아버지는 오가시는 짬짬이 엄마가 미리 만들어 두셨던
틉틉한 막걸리를 한 사발씩 죽 들이켜시고는
"캬, 거 참 시원하다".시며 즐거운 쉼을 하셨다.
그럴 때면 손으로 김치 한 쪽을 쭉 찢어 입에 넣으시고는
그 손을 엄마 엉덩이에 슬며시 닦곤 했다.
"이이는 참, 이 양반이 엇따 손을 닦고 그래요".
엉덩이를 슬쩍 흔들어 피하는 척 하면서도
얼른 내 눈치를 보며 붉은 미소를 짓던 엄마.
그 시절 그분들만의 사랑 표현법이었으리라.
외양간에선 퍼지도록 푹 삶아서 구수한 냄새 나는 소여물이
안개 같은 허연 김을 뜨겁게 풀어 올리고 순한 소의 속눈썹에 달린 이슬이
연신 껌뻑거리는 눈망울을 따라 깊어 가는 저녁을 길었다.
방안에서는 머리만 자른 맛난 김장김치와 잘 띄운 청국장으로
배불리 저녁을 먹은 식구들이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느긋한 포만감에 젖어 자울자울 기분 좋은 졸음을 좇을 때,
그런 자식들을 둘러보며 부모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노고를 위로해 주는 정담을 건네셨다.
"그려, 겨울 준비가 뭐 벨기너. 그저 내 새끼들 등 따숩고 입성 안 떨어지믄 됐지 뭐.."
김치를 할 때마다 예전의 엄마 솜씨를 따라 해보려 무진 애를 쓴다.
하지만 결코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그 맛은 우리 엄마, 단 한사람만이 낼 수 있는 사랑의 맛이기에.
나도 이제 겨울 준비를 위해 내일 시장에 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