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차림으로 뒷산에 몸을 실어 본다.
뒷모습을 보이는 가을의 잔재들이 여기저기 쓸쓸함을 풀어낸다.
떨어져 쌓이고 빛 바래 가는 낙엽의 몸부림.
물기를 싸안으려 잔뜩 오그라드는 잎새의 본능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마지막은 이렇듯 처절 한지도 모르겠다.
노랗게 물들었다 하얗게 탈색되어 지는 한 무더기의 이름 모를 풀.
할아버지의 수염 같다.
객기부리 듯 동심을 불러와 예쁘고 앙증맞은 양 갈래 머리를 땋아 본다.
근처에서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 얼른 제 모양대로 풀어놓는다.
손을 털며 돌아서서 가는 발걸음이 자꾸 고개가 되돌아간다.
피식 웃는 뒤끝에 싸아 하니 밀려드는 시간의 강물 저편.
그 때는 일상이었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유년의 동화로만 남아있는 기억들이 펼쳐진다.
다들 힘들게 살기도 했었지만 특히 농촌에선 필수적인 생활 방편이었다.
방구들을 뎁히기 위해서 나무를 땔감으로 썼던 그 때.
학교에 갔다오면 학교 숙제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하는 필수적인 일과.
너도나도 나무 밑이라면 쏜살같이 달려가 선점을 위한 쟁탈전을 벌였다.
여름 내 푸르렀던 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기 바쁘게
기다렸다는 듯이 갈퀴로 긁어모아 준비해 간 비료포대에 가득가득 눌러 담았다.
가장 기쁘게 하던 땔감은 나이테가 늘수록
실한 크기로 떨어지던 솔방울과 소나무가 자랑스레 떨어낸 솔가리였다.
매일 하는 일이라 익숙한 일이었는데도 갈 때마다 웬수보다 싫던 일이었다.
유독 맘이 내키지 않는 날은 애꿎은 소나무 등걸이 온몸에 상처를 입는 날이었다.
아마도 그런 날은 필경 학교에서부터 심사가 틀어진 날이었을 게다.
냅다 걷어차고 후벼파고 때리고..그래도 부아가 삭지 않으면
기껏 학대하던 나무둥치를 껴안고 등걸에 눈물로 얼룩을 만들기도 했다.
두두둑 떨어지는 솔방울을 맞고 나면 꼭 내 속상함을 알아주는 것 같아
은근히 고맙고 미안하기도 했다.
여러 친구들과 의기투합이 되어 같이 나무를 하러 갔을 땐
나무하는 것보다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려는 욕심에
'요기서부터 조기까지는 내 구역이야'며 서로 툭탁거리기도 하고
누가 빨리 비료포대를 채우는지 내기도 걸었다.
조금 편평한 공간이 생기면 주위에 흔하게 널려 있던 사금파리를 주워
땅따먹기를 하다가 그것도 시들해지면 이름 모를 풀 무더기 곁으로 달려가
머리 땋기 내기도 하고 묏 등에 올라가 두 손 모두고 누가누가 잘하나 흉내도 내 보고...
어느 결에 서산으로 내려앉는 석양에 모두가 빨갛게 물든 얼굴로
서둘러 나무 보따리들을 굴리다가, 끌다가, 힘에 겹지만 머리에 이기도 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부모님이 볼일 보러 나가셨다 늦게 오시면
엄마 대신 부엌일도 거뜬히 해내야 했다.
굵은 장작개비를 한아름 안아다 아궁이에 툭툭 던져 넣고
그 사이사이에 솔가리를 끼워 넣고 성냥불을 탁탁 켜 불을 지피면
잠시 후 그 까맣던 부엌아궁이 속에선 환상적인 불꽃이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그 고즈녁한 저녁, 솔가리 하나 하나가 화르르 불꽃이 되어 일어서다가
까맣게 스러지는가 싶으면 또 다시 빨갛고 환한 불길로 섬세하게 번지는 모습은
차라리 한 편의 숭고한 의식 같았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 사이로
가끔씩 던져 넣는 솔방울이 피워 내던 빨간 꽃송이가
어린 나이에도 가슴 저미도록 아름다워 '훅' 숨을 삼키고 넋 놓고 빨려들었던 그 때.
어쩌면 그 불길 속에 나의 꿈과 소망을 젖은 눈으로 기도했었던 것도 같다.
빨갛게 달아올랐던 뺨과 무릎의 뜨거움,
앉은걸음으로 주춤주춤 물러나다 다시 다가서던 알 수 없는 열망.
불길 앞에 갖다 댄 두 손이 잎맥처럼 말라서 바스라질 것처럼
비비면 '삭삭' 소리가 나던 것까지 눈감으면 바로 어제인 듯 선연히 떠오르는 그리운 추억이다.
살아오면서 많은 추억들이 내 기억의 창고에 자리잡았지만
유독 그 어린 날의 기억들이 선명한 것은 가장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발자국을 찍었던 시간들이어서 지 싶다.
다시 돌아가라면 이미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나는 단연코 고개를 저을 것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가슴 저릿한 유년의 동화로 기억하고 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