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차를 사지 못한다는 불만을 털어놓던 남편은 이내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좌절의 강을 건너더니, 나이 40이 되어도 빚더미 속에서 허덕이는 자신에 대한 우울의 늪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남편과 부딪힐 때,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술을 마시고 괴롭히면 어떻하나'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어떻하나'도 아니다. 남편은 남에게 가야 할 화살조차도 모두 자신의 심장에 꽂아버리는 그런 감정의 길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편이 이러한 감정의 종착역에 이르면 나는 아무리 옳은 논리로 똘똘 뭉쳤다할지라도 사정없이 무너지고 만다.
남편이 나에게 7장의 긴 프로포즈 편지를 보낸 것은 만난 지 2주 후였다.
그 사람을 내 마음에 들여놓는 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30살 끝자락에 그런 열정이 남아 있었다니.
가난하다는 것을 빼고는 흠 잡을 데 없는 따뜻한 사람으로 보였다.
구멍이 숭숭 뚫려 찬바람이 들락날락하는 문종이같은 내 가슴을 따뜻하게 지펴 줄 수 있을 사람같았다.
나름대로의 치밀한 저울질을 거친 후,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인사를 시키러 갔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듯, 내가 선택한 사람이 선생님에게도 인정을 받기를 바라면서.
며칠 후, 선생님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하시는 말씀이 "그 사람 다른 것은 괜찮은 것 같은데, 비젼이 없는 사람같더라. 사람이 비젼이 있어야 하는데......"
10년도 더 된 일이라 그 뒷말은 자세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겼던 것 같다.
선생님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선생님 자체가 목표가 너무나 뚜렷한 사람이라 조금 치우쳤겠지 싶었다.
비젼이 없는 남자!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가난하면서 비젼이 없는 남자!
오늘따라 선생님의 말이 마음을 줄곧 붙든다.
그렇다.
남편은 신념에 찬 그럴듯한 비젼을 나에게 말한 적이 없다.
꿈이라고 말한다는 게 고작 '어떤 물건을 사고 싶다'이고, '무엇을 하고 싶다'라고 할지라도 마른 하늘에 뜬구름 잡는 식의 바램들이었다.
그냥 현재를 즐겁게 살 수있으면 그만이었다.
꼭 오늘만 살다 죽는 하루살이처럼 말이다.
자신을 지탱해 주는 장기적인 비젼의 부재로 인하여 남편은 큰차를 못 사는 지금과 같은 작은 환경의 제약에도 가뭄에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듯 감정의 바닥을 드러냈다.
가난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상관이 없다.
꿈이 있기에 힘들고 괴로운 현실을 행복하게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꿈이 이루지 못할 때 또는 이루었다 할지라도 내가 꿈꾸어 오던 것과 똑같은 모양이 아닐 때는 실망스러웠다. 또 막상 이루어져도 그 꿈이 이 때까지 참아온 나의 인내와 고통을 다 보상해 주지 못해서 속상하고 억울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 한 눈 안 팔고 달려온 길이었기에 자신에 대한 뿌듯함과 만족감으로 충만했다.
비젼이 없는 우리 집 가난한 남자에게는 미래를 위해 성실하게 참고 견디는 힘이 부족하다. 나중의 즐거움을 위해 당장의 편함을 뿌리치는 용기가 필요한데.
반대로 남편은 나를 보며 생각하겠지. 미래에 뭐 별 뽀족한 수도 없으면서 궁상맞게 산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날마다 꿈을 꾸기에 지금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 별 감정의 굴곡없이 긍정적으로 산다. 가끔씩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자아를 송두리채 흔들리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남편을 끌어올리며 말이다.
오늘도 풀이 죽어 들어오는 남편에게 속은 뒤틀려도 아이들까지 동원해 온갖 아양 다 떨었다.
이게 십년을 걸쳐 얻은 비젼 없는 남자를 데리고 사는 여자의 살아가는 법이다.
물론, 가끔씩 내 손을 잡고 가까스로 우울의 늪을 빠져 나온 남자는 어느 새 순간의 즐거움으로 가득하여, 너무 멀리 잡은 장기적인 비젼때문에 중간에 지쳐 인생의 길에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와, 해맑게 웃으며 손을 내밀기도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