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된 딸아이는 끔찍하도록 귀엽다.
여느 부모들이 다 그렇듯이, 아이의 얼굴을 뽀뽀로 장식하며 빡빡한 세상살이의 시름을 잊는다.
누가 보아도 단박에 '귀엽다'(?)라고 하는 아이.
여기서 '귀엽다'는 말의 속뜻은 '예쁘지 않은 모든 아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처음에는 속이 상하더니만 이제는 신경쓰지 않는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 눈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공주다.
이 공주가 10개월이 되면서 하는 재롱은 여러가지다.
큰 아이가 산 자동 로봇트가 리모콘의 지시에 의해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면, 앉은 자세에서양다리의 반동으로 기저귀로 한 바가지나 되는 엉덩이를 좌우로 들썩들썩하다가 마침내는 균형을 잃어 넘어가고,
응가해서 세면대에 가서 엉덩이를 씻을라손치면 거울 속의 아이가 친구인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끽끽' 소리내어 웃으며 마구 손을 뻗어 잡으려하고,
오빠가 책을 보고 있으면 옆에 가 자기도 보겠다고 뺐다가 한대 얻어맞고,
이것 말고도 짝짝꿍에 바이바이에 한두가지가 아니다.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할 때면 우리는 호들갑을 떨며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넘어가게 하는 것은 고사리 같은 손에 붙어있는 검지 손가락으로 하는 행동이다.
일단, 아이가 검지 손가락을 정교하게 뽑으면 우리 모두는 걸음아 날 살려라고 줄행랑을 치고 본다. 사정거리안에 있다가는 몸에 나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는 다 검지 손가락을 집어넣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 있는 구멍이래야 몇 되는가. 눈 구멍 2개, 입구멍 1개, 귓구멍 2개 합 5개에다가 뒷구멍 1개까지. 저번에는 큰 아이의 눈에다 손가락을 집어넣으려는 것을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넣으려는 집념과 꽂는 힘은 천하무적이라 방심한 틈을 타 손가락을 휘두르면 아무리 아기라도 만만찮다.
처음에는 이 정도로 심하지 않았다.
여느 아이처럼 얌전히 검지 손가락을 펴서는 제일 만만한 입으로 가져갔다.
흔히, 있는 일이라 싶었다. 모든 물건에 대한 호기심을 입으로 확인하는 시기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쭉 집어넣는 바람에 가끔 입덧하는 임산부마냥 헛구역질을 할 때면 걱정이 되긴 했어도.
그러다 입에서 가장 가까운 콧구멍으로 옮겨갔다. 뭐 나도 어릴 때 코딱지 파서 벽에 붙여 놓기도 했는데, 그것도 자기 몸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속속들이 알아보는 것도 괜찮겠지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아이가 '악'하는 괴성을 지르며 나를 불렀다.
이유인즉슨, 콧구멍을 야무지게 후비던 검지 손가락을 스르르 빼서는 입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좀 심한 행동이라 한두번 말리다 그만 두었다. 이유식을 하고 있는 터라 여러 가지 음식 맛중 하나로 맛을 보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입에서 코로 가든 코에서 입으로 가든 뭐 자기 몸에서 나오는 것인데 큰 탈이야 있을라구. 넓은 아량으로 이해했다.
며칠 지나니 빨다가 심심한 지 속에 든 혓바닥을 마구 잡아 뺐다. 얼마 전, 내가 우는 아이 달래느라 '메롱메롱'을 포함한 몇몇 혓바닥으로 할 수 있는 묘기를 보였더니 신기했던 모양이다.
물컹물컹 만지는 재미도 솔솔한 지 한참동안 그러고 놀았다.
눈으로 가는 손가락은 위험하여 필사적으로 말린 덕분에 가까스로 멈추었고, 귓구멍은 얼굴 옆에 붙어 있어서인지 손가락이 넘나드는 횟수가 드물다.
뒷구멍은 아예 안 보여서 망정이지, 다른 것들처럼 배나 가슴쯤 붙어 있었다면 어쩔뻔 했는가.
아이는 자기 몸에 있는 구멍에 대한 탐험이 끝난 뒤, 다른 사람에게까지 달려들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야 요령있게 피하면 그만이지만, 가장 낭패를 당하는 건 큰 아이다.
6살된 아들이 블럭을 쌓으며 놀고 있을 때나 책을 읽을 때, 호심탐탐 노리다가 기회가 오면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재빠르게 손가락을 들이대는 것이다. 눈을 찔러보기도 하고, 콧구멍에 넣기도 하고, 혀를 잡아보려고도 하고.
당하고만 있을 오빠도 아니어서, 온 몸에 있는 힘을 다 실어 한방을 날려버린다.
마침내, 딸 아이는 나가떨어져 울음보를 터뜨리고,
그 날의 검지 손가락의 탐험은 막을 내린다.
10개월 된 딸아이는 이렇게 넓은 세상을 향하여 첫 탐험을 시작했다.
그게 꼬질꼬질한 '구멍탐험'이라 께름직하긴 하지만, 하여튼 묵묵히 응원을 하련다.
아이가 넘어져 쓰러질 땐 빨리 달려가 일으켜 세워 주고 싶고, 어떨 땐 지름길을 가르쳐 주고 싶겠지만 꾹꾹 참으며 아이의 뒤에서 조용히 따라 가련다.
스스로 이곳저곳을 탐험하며 자기에게 가장 행복한 길을 찾아 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