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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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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내사랑 토람이'를 보고


BY 김정인 2005-02-14

슬퍼도 눈물이 나고 분해도 눈물이 난다.

간혹, 웃겨도 나긴 하지만.

오늘 나는 너무 아름다워서 펑펑 울었다.

꽃도 풍경도 아닌, 한 안내견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고. 시각장애인인 주인을 끝까지 지켜주는 토람이의 모습은 사람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숭고한 것이었다.

사람이면 어땠을까?
소독약이 눈에 들어가 주인공은 소리질렀다.

옆에 있던 토람이가 어떻게 해 볼 사이도 없이 벌어진 일이다. 그 충격으로 토람이는 작은 실수에도 기가 죽는 마음의 병을 앓게 되었다. 주인이 앞을 못 보게 된 것이 자기의 잘못이라 탓하며.

주인공의 아들은 자기를 버리고 간 엄마를 원망하며 동네 아이를 두들겨 팼고, 남편은 두달이나 방에 쳐박혀 나오지 않는다고 다구쳤다.

모두 주인공때문에 힘든 자기자신을 연민하며 소리쳤고, 토람이만이 주인의 아픔을 아무 말없이 부등켜 안고 아파하고 있었다.

나를 잊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기 것인양 끌어 안는 것,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혼자 일어서기 위해 가족을 떠나 서울로 올라 온 주인공에게 토람이는 기꺼이 다가가 눈이 되어 주었다.

누가 부자라고 하면 무슨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봐 우르르 모여들고, 거지가 되었다고 하면 행여 나에게 손이라도 내밀까봐 꽁무니를 빼 버리는 인간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가장 처절할 때 지켜준다는 것,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주인공의 대사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토람아, 너는 내가 가장 힘들고 지쳤을 때 내 곁에 있어주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는구나. 미안하다." 암에 걸린 토람이를 훈련소에 보내며 하는 말이다.

죽어가면서도 앞 못 보는 주인걱정때문에 항상 일어나는 9시에 노심초사하는 토람이.

주인을 생각하는 한결같은 모습은 이런저런 핑계로 카멜레온처럼 처신하는 우리네 인간들보다 휠씬 훌륭하다.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말도, 그렇게 많은 생각도, 그렇게 많은 행동도 필요치 않다. 다만 그 사람을 지극히 위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한데, 왜 이렇게 잘 안 되는 걸까?
어릴 때는 본능적으로 내 것을 챙기기에 바빴다.

그리고 10대엔 내 것을 남과 나누며 사는 것이라고 교과서에서만 배웠다.

그리고 20대엔 내 것을 늘여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30대 초엔 내 것만 지키고 사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지금은 아주 가끔 양심이 내 것을 포기하라고 둥둥 두드릴 때 눈 딱 감고 모질게 마음먹는다.
동물들이야 훈련받은 대로 하면 그만이지만, 인간은 그렇치 않다.

한가지 행동을 하는 데도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그것도 자기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가하고. 또 그것을 남의 위하는 척 포장하기 위해 번지르한 말로 둘러대고.

훈련 받지도 않았는데도 자기만 위하는 일은 얼마나 잘하는지 감탄할 노릇이다.

'가나다라'나'1234'는 가르치는 곳이 있어도, 서로 사랑하고 아픔을 나누는 방법을 배울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용감하게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 놓는다.

 어디에선가 사람이 동물들보다 뛰어난 것은 '선택의 자유'라는 소리를 들었다.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긍지가 불끈 솟아올랐던 기억이 난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선과 악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인간 스스로 판단하도록 맡겨 버린 것이다. 그 이후 인간은 선과 악 사이에서 방황하며 머리는 선을 향하여 몸은 악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상한 괴물이 되어간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경고한 신의 명령을 어긴 인간에게 걸맞는 지독한 저주이다.
지하철 계단에 업어져 있는 걸인을 보면 마음가는 대로 동정을 꺼내어 주면 될 것을 '이 사람이 거둔 돈을 앵벌이 두목이 다 빼앗아 가면 그 나쁜 놈만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냐, 일부러 불쌍하는 척 하는 거 아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며 어느 새 지나쳐 버리고, 나중에는 '줄 걸'하며 후회한다.
우직하게 주인을 위해 산 토람이를 보며 아무런 마음의 갈등없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사랑하며 살 수 있는 날을 감히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