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돈, 수고하지 않았는데 생기는 돈.
혼자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허락된 돈.
우리 주부들에게는 참말 기분 좋은 일이다.
아침에 남편이 봉투를 주고 출근을 하였다. 장미 한 송이 살 걸 깜빡 잊었다며
미안해하면서.
나는 한껏 애교를 섞어서
"고마워요. 여보, 잘 쓸게요~"
하였다. 평상시엔 쓰지 않던 여보소리까지 멋적어 하면서 해보았다.
공돈을 주기에 기쁜 마음에서였다.
두 달 전인가. 미리서 자전거를 선물로 받았으니 오늘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는데,
남편은 그래도 내가 서운해 할까봐 마음을 쓴다.
고맙다.
벌써 쉰 살이 되었네.
새삼 미역국은 생략하고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산을 올라가는데 골이 약간씩 파인 곳마다 어제 내렸던 빗물이
졸졸 흘러내려가고 있는 걸 아이처럼 쪼그려 앉아서 구경을 하였다.
빗물은 몇 살일까?
서로 만나고 모아서 하나 되어 어디로 가는 걸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산토끼 엉덩이인지 대형 들쥐 엉덩이인지 순식간에 풀숲으로 숨어들어 가는 걸
보았는데 뭐였는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내 인생도 그랬어. 나의 미래를 확실하게 정하여 두지 못해
꿈 따로 현실따로 하여 내 색깔을 남들은 알아내지 못했지.
내 의지대로 태어 날 수 있었다면 나는 남자로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 여자로 태어나 많은 걸 포기하고
양보하고 끝내 이루어 내지 못하며 살아왔는지.
흘러가는 빗물처럼 주어지는 삶에 맞추어 살아왔다.
부모님과 내 주위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고
그저 순명하며 순하게 살아왔다.
부모님이 순하게 살라고 지어주신 내 이름처럼......,
이제 내 할 일이 서서히 마무리 되어가는 듯싶다.
대 4학년 딸과 고 3 아들이 올해에 목표한 바를 이루면
비로소 내 꿈과 희망의 탑을 쌓으려 한다.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남은 내 인생을 값있게 보람 있게 세우려 한다.
그 의미를 살려서
초대 할 수 없는 나의 미래를 위하여 축배를 들어야겠다.
공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행복을
혼자 먹는 점심의 친구로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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