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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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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화 신은지도 모르고


BY 자화상 2007-03-20

 

"자네 그 굽 높은 신발이 편한가?"

"응? 응!"

"일부러 그걸 신었어?"

"엉? 응!"

"불편할 것 같은데 왜? 바꿔 신고 왔을까 하고 물어봤어."

"뭘?"

"운동화 말이여"

"무슨 운동화?"

"자네 지금 신고 있는 것 일부러 신고 왔는가? "

"무슨말이여? "

아, 맨날 산에 올 때 신은 등산화 신고 있는데

뭘 바꿔신고 왔다고 하는거야 하는 마음으로 

신고 있는 내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난 깜짝 놀랐다.

"엄마야. 이게 뭐야? 왜? 내가 단화를 신고 있지?"

"그래서 내가 물었잖아. 그 신발이 등산화보다 편한지."

"세상에. 이게뭐야? 내 정신좀봐라. 단화신고 산에를 왔네."

그 때야 내가  신발을 잘 못 신고 산에 올라 왔다는 걸 알았다.

분명히 우리 집 현관에 등산화를 내 놓아 바로 신고 올 수 있게 되었었는데,

왜? 그 옆에 놓여있는 단화를 신고 집을 나섰을까?

나도 알 수 없는 내 건망증에 헛 웃음만 나왔다.

 

내 건망증이 이젠 무르익었나보다. 

가까운 내 사무실 출퇴근용으로 발이 편한 단화를 신고 다녔는데,

오늘 생각없이 출근하는 마음으로 그 단화에 발을 집어 넣었는 것 같았다. 

등산 모자에

등산복에

해가리개 마스크에

흰장갑을 끼고

등산화가 아닌 단화를 신고

열심히 산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남편이 앞서 집을 나서고 앞서 산을 올라 가다가

나를 기다려 옆에 오더니

신발이 바뀌었다고 알려 줄 때까지

나는 까맣게 모르고 열심히 걷고 있었던 것이다.

 

단화를 신었다는 걸 몰랐을 때는

발 바닥이 신발 안에서 미끄럽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알고나니 단화 속에서 내 발이 요리 조리 쏠리고

불편해 걷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돌부리에 단화가 찍혀 흠집이 마구 생겨서 

조심하며 걸었더니 드디어 발목이 시끈거리기 시작하였다.

산의 절반도 못 올라 갔는데,

남편이 불편한 내 심기를 알아채고

그만 되었으니 먼저 내려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자존심으로 끝까지 갔다가는

다리가 아파 고생할 것 같아 알았다며

먼저 내려왔다. 

 

돌 뿌리들을 피해 편편한 곳만 딛느라

신경쓰고 걸었더니 집에 오니까

발목과 무릎까지 시끈거리고 발가락들이 아파왔다. 

 

평상시 습관이 정말 무섭다는 걸 느꼈다.

산에 가려면서 무심코 신어버린 단화처럼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혹시 잘 알고 친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여 

내가 모르는 마음의 상처를 담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이 밤에 잠시 되돌아 살피고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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