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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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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을 수가!!!


BY 하나 2004-10-29

학부모님께 안내말씀 드립니다.

OO구 하수처리장 정화장치 확장 및 교체작업으로 인하여 10월 26일~10월 28일까지 전지역이 단수되어 부득이 학교 급식을 실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9일은 정상 급식을 실시하오니 이점 양해바랍니다..

 

이 동네에서만 6년째 살고 있지만, 3일내내 단수가 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몇 시간 혹은 하루정도 단수가 되었던 적은 있었지만...

물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쓰다가 이렇게 단수가 되면 비로소 물이 아쉽다.

아쉬운 마음에 미리부터 낡은 욕조를 닦고 큰 들통을 닦고 해서 물을 양껏 받아놓지만

하루동안 그 물을 다 쓸리 만무다. 매번 경험하면서도 단수가 된다고 하면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결국 받아놓은 물을 다 쓰지도 못하고 단수는 해제되고 만다.

그렇더라도 받아놓은 물 부터 써야하는데 세수할 때도 머리 감을 때도 샤워할 때도 새물을 펑펑 쓴다. 물이 콸콸 나오니 자연히 받아놓은 물도 펑펑 써버리고 찌끄러기 남게 되면 결국 욕조 마개를 열고 과감히 버려버리는 이런 낭비벽....

이번엔 3일동안 단수라고 하니 큰 그릇 작은 그릇, 욕조에까지 물을 가득 받아두었다.

하필 올가을 들어 제일 날씨가 춥다고 하는 날이 가운데 끼어있었는데, 단수가 되다보니 보일러도 돌아가질 않고...보일러랑 단수랑은 별개인줄 알았더니 물이 나와야 그 물이 흘러들어가고 호스에 고여있던 물이 밀려나오고 이렇게 순환이 되면서 보일러가 작동되는데, 단수가 되면 압력이 낮아져 물이 돌지를 못하기 때문에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는다고...

덕분에 차가운 방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깔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서야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부부만 있을 때는 단수가 되어도 견디기 수월했는데, 이제 어린 아이들 둘을 키우다보니 이것저것 밀리는 일이 많아졌다.

작은 녀석은 하루에도 옷 두세벌 버리는 건 예사고, 큰 녀석도 초등학생 1학년이지만

여전히 저녁에 벗어놓은 옷을 보면 무릎이며 엉덩이, 소매끝이 새까맣다.

온갖 빨래들이 쌓이고, 집안에 먼지가 쌓여도 맘껏 걸레를 빨 수조차 없고, 반찬도 손이 많이 가는 건 피해야하고, 녀석들을 씻길때도 평소에 쓰던 물의 반만 떠서 씻기고, 쌀 씻을 때도 아주 최소한의 물만 떠서 씻고, 쌀 씻은 물 버리지 않고 받아두었다가 1차 설거지하고, 설거지 한 물 버리지 않고, 화장실 변기통에 버리고...발 씻은 물 버리지 않고 걸레 빨 때 한번 더 쓰고...

단수기간이 길어지니깐 아쉽고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알뜰하게 물을 쓰는 방법도 몸소 실천해볼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시간이었다.

그리고 감사했던 건 불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단수가 되어 받아놓은 물은 차가운 날씨 덕에 그냥 사용하기가 사실 어려웠다.

불이 없었다면 별수없이 찬물에 세수하고 머리감고 발 씻고 해야했을텐데

불이 있어 찬물을 따스하게 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씻기려니 별 수 없었고, 어른인 나도 아침 일찍 혹은 밤 늦게 찬물에 세수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중 솥에 물을 반만 붓고 펄펄 끓인 후에 찬물과 중탕해서 미지근한 물에 세수하면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차가운 방바닥과 차가운 공기에 얼어붙었던 몸이 스르르 풀리면서 피로까지 풀리던 그 느낌...그렇게 따스한 물을 쓸 수 있어서 행복했고, 그렇게 따스하게 만들 수 있는 불이 있어서 행복했던 3일이었다.

불까지 끊겼다면 어땠을까?

"엄마, 이제 물 나와요...""

"그래...보일러 틀어줄께..."

"와, 너무 따뜻해요 엄마."

녀석들도 말은 못했지만 오싹 오싹 몸을 움츠리면서 잠을 잤었나보다.

내복보다 도톰한 이불보다 그래도 역시 아랫목 따스한게 제일이지...

 3일동안 밀린 빨래를 밤늦게 하면서 새삼 세탁기 안에서 빙빙 소용돌이 치는 물이 반가웠다.

맨발로 서 있어도 따스하게 바닥에서부터 전해지는 온기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오늘 아침 상하수도 요금을 내면서 간사한 다짐을 해본다.

이제부턴 물 아껴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