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최근까지 나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푹 빠져있었다.
아…한기주 사장 넘 멋지다…잘 생기고, 돈 많고, 게다가 매너까지 있으니…저런 멋진 남자랑 연애하는 태영은 얼마나 행복할까? 남편이 옆에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채 좋아라 입벌리고 있는 내게 남편이 쿡쿡 옆구리를 찌른다. 정신 좀 차리라고, 드라마일 뿐이라고, 현실엔 저런 남자 없다고…현실엔 없다고..그래서 내가 더 열광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득 돌아보니 내게도 그런 사랑이 익어가던 계절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살랑 살랑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그 해 7월은 참 어지간히도 무더웠다.
토요일 오후 3시쯤…직원들 모두 퇴근하고 난 텅빈 사무실에 나 혼자 앉아서 일을 하려니 도통 진척이 안되었다, 제자리만 뱅글뱅글. 쏟아지는 토요일 한낮의 햇살은 창문을 뚫고 내 등에 와서 내리꽂히고, 적막한 허공에는 서류 넘기는 소리만이 울렸다. 퇴근시간 지났다고 관리실에선 에어컨 마저 꺼버려서 뜨거운 햇살에 유니폼이 몸에 척척 휘감겼다.
“혼자 있어요?”
꾸벅 꾸벅 졸았던 것도 아닌데 미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나는 굵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경비 아저씨였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은 ‘이 좋은 토요일에 데이트도 없나’하고 나를 살폈다. 생수를 뜨자마자 계단으로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사무실 문을 잠그면 영영 갇혀버릴 것 같아 활짝 문을 열고 일하던 중이었다. 7월에는 부가세신고가 있어 골치아프다. 날짜도 지켜야하고, 금액도 잘 맞아야 과태료가 없다.
일주일 동해로 휴가 다녀왔을 때는 좋았는데, 이제 밀린 일을 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띠릭 띠릭 띠릭 띠릭’
전화벨이 길게 늘어진다.
‘이 시간에 누구람? 퇴근한걸 모르나’ 속으로 생각하며 세금 계산서 쓰고 있는데 전화벨은 그치지 않고 계속 울려댄다, 마치 사람이 있다는 걸 보기라도 한듯이…
수화기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OO회사입니다.”
“어? 미숙씨 아니네?”
수화기 건너편 남자는 대뜸 미숙씨 아니냐고 물었다, 물었다기보다 혼자말을 한다.
“네..미숙씨 퇴근했습니다. 월요일날 다시 전화하세요”
수화기를 놓으려는데 젊은 남자는 급하게 나를 부른다.
“저기요!!!! 아니, 다름이 아니구요, 경비 아저씨가 2층에 미숙씨가 혼자 남아서 일한다길래 전화해본거예요..아저씨가 이름을 잘 못 말했네요..저는 1층에 근무하는 문주임입니다. 그쪽도 세금 때문에 남았어요?”
“아..예…전 또 미숙씨를 찾는 손님인줄 알고요…네…일이 좀 밀려서요…”
얼굴만 몇번 본적이 있는 그 깔끔한 남자는 내게 언제 퇴근하느냐고 묻는다.
“일 끝나면 가야죠…”
“그럼, 퇴근할 떄 여기 들러요…아니..이상하게 생각하진 말구요…시원한 음료수라도 한잔 하고 가라구요..”
“네..수고하세요”
참, 별 싱거운 사람 다 봤네..사실 저녁 6시에 학원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영어회화반 친구들이랑 영화보고 저녁 먹기로 했었다. 그 약속시간이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인지 아무리 서둘러도 일은 빨라지지 않았다.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애인이라도 있어야 속도가 날텐데,그것도 아니면 다른 직원이라도 옆에 있어야 경쟁하듯 일도 잘 되는 법인데…해는 아직도 기울지 않았다, 시계는 저녁 6시를 향해가는데…
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간다. 잘못하다간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1층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앞문은 셔터가 내려져있고, 뒷문으로 나가 주차장을 통과해야 거리로 나설 수 있다. 뒷문으로 나간 그 순간, 왜 그랬을까?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1층의 열린 현관문으로 머리를 쑥 들이밀었다.
“ 시원한 음료수 주신다면서요?”
더위 탓에 와이셔츠를 벗고 런닝 바람으로 일하던 남자는 하마터면 내 목소리에 놀라 의자에서 떨어질 뻔 했다. 부랴부랴 담뱃불을 끄고는 런닝셔츠 바람의 상체를 들켜버린 것에 몹시 당황해하며 얼굴 붉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셔츠를 입지는 않았다.
“안 입어도 되죠?”
“네…남동생들이 워낙 많아서 괜찮습니다.”
그제서야 겨우 통성명을 정확히하고,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애인 있어요?”
“있으면 제가 여지껏 혼자 남아서 일하겠어요?”
”아..그런가? ㅎㅎㅎㅎ”
”그럼 잘 됐네…제가 원래 집이 인천이거든요..내일 친구놈들이 여기 치악산에 온다고 소개팅 좀 주선하라는데…은미씨가 친구들이랑 같이 치악산 좀 가면 안될까요?”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처음 얘기를 나눈 남자에게 그것도 같이 등산하자는 말에 앞뒤잴 것 없이 오케이 해버렸으니…그 선한 눈빛에 무조건 이끌렸나보다, 스물넷의 나는…참 무책임도 하지…약속시간이 6시인것도 개념치 않고 이러고 앉았으니 원…
그는 내 전화번호를 물었다, 친구들이 몇 명 오는지 알아야 준비를 할 수 있고, 또 약속장소를 정해야한다면서.. 그땐 호출기도 없었고, 요즘처럼 흔한 핸드폰은 구경도 못했고, 그렇다고 집전화 번호를 가르쳐줄 수도 없어 머뭇거리자 그는 자기의 숙소 전화번호를 적어 내게 쪽지를 건네주었다. 늦게라도 괜찮으니깐 인원수가 정해지면 연락달라고, 자기가 차로 데리러 오겠다며…
내일의 약속에 대한 부담없이 학원 친구들을 만나 저녁 먹고 영화한편 보고 나니 벌써 밤 10시가 넘었다. 더운 여름밤은 아직도 대낮처럼 환하다. 버스를 타기는 싫고해서 슬슬 걷기 시작했다. 저만치 앞에 공중전화 부스가 보인다. 그제서야 초저녁의 약속이 기억나 쪽지를 꺼내들었다. 한밤중에 친구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휴가철인데다 늦은 시간이라 이미 내일은 다들 선약이 있단다.
할수 없지 뭐..
낯선 번호를 누르자 벨이 한번 울리기가 무섭게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은미씨?”
수화기를 바로 든걸 보니 내 전화를 꽤나 기다리고 있었는 모양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미안함이 고개를 들었다.
“네..전화가 늦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전 전화 안하시는줄 알고 친구들한테 원망 들었습니다. 어떻게… 가실거죠?”
일변 가고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또 미리 친구들에게 전화해보지 않았음을 숨긴채,
“어쩌죠? 친구들이 다 선약이 있다고 해서요..죄송해요.”
거절의 뜻을 전했다.
“그럼, 은미씨 혼자 가야지 뭐.”
그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혼자? 어떻게 혼자? 아니지..못갈 것도 없지 뭐…늘 가던 치악산인데…사람도 사귀고 좋지 뭐.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럼, 좋아요..대표로 저 혼자 가죠 뭐…그럼 어디서 만날까요?”
다음날…정말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남편은 차를 몰고 약속장소에 나왔다.
“어? 다른 친구분들은 어딨어요?”
“에? ㅎㅎ 이제부터 가서 준비해야합니다. 아직 다들 자고 있어요. 저만 먼저 은미씨 모시러 나온겁니다.”
졸지에 그의 합숙소로 가게되었다. 남자집에 가보긴 첨인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며 그는 내게 잠깐 기다리라고 양해를 구했다.
“야…빨리 일어나..은미씨 왔어 임마!!!!”
곧이어 후다닥 놀란 움직임의 소리들이 문 밖으로 넘어왔다. 웃음을 겨우 참으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왜 그리도 거리낌이 없었는지…비슷한 연배의 우리 넷은 금새 친해졌다.
오전 11시경부터 치악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명의 친구들은 제법 산을 잘 올랐다.
워낙 낯가림이 없었던 나는 혼자서 세명의 몫을 해냈다. 딱히 누구랄 것도없이 이런 저런 얘기들을 쉴새없이 해서 분위기를 돋구었고, 그 친구들은 연신 웃음을 멈추지 않았었다.
그는 내게 정근이란 친구와 소개팅을 주선했다. 후반부터는 둘이서만 먼저 앞으로 나서서 걷는 때가 많아졌다. 그 친구가 내게 질문을 많이 했으므로, 그리고 내 말에 가장 많이 호응을 보내왔으므로..
저만치 올라가다 뒤돌아보니 정작 주선자인 그는 힘에 겨워 담배를 피워물고는 바위에 걸터앉아 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담배 피우면 오르기 힘든 산인데…괜히 ‘악’자 들어가는 산이겠는가…저 앞에서 먼저 앞서가던 친구가 들고가던 도시락을 그에게 안겨버린다.
“이거 우리 먹을 도시락이니까,우리 양식이니깐 어떻게든 정상까지 와라. 안그럼 우리 다 굶는다.”
그리고 나서 얼마를 올라갔을까? 갑자기 등뒤에서 뭔가가 떼굴떼굴 굴러가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야, 무슨 소리야?”
그는 이내 대답을 보내왔다.
“아무것도 아니야…도시락이 떨어져서그래.”
마지막 힘을 다해 정상에 올랐다.
여름 한가운데였지만, 정상에는 가을아침 같은 자욱한 안개가 한치앞도 볼 수 없게끔 장막을 치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건만 셋이서 사진을 찍었다. 배가 고파 이제나 저네나 도시락 운반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마의 땀이 다 식었을무렵 저쪽 안개낀 바위 틈으로 그의 빨간 조끼가 보였다.
그보다는 도시락이 더 반가왔다.
친구들의 타박에 그는 또 담배를 꺼내물고 있었다.
“어? 이게 뭐야? 너 도시락 다 엎었냐?”
” 밥 두 칸은 아예 엎어졌고, 그래도 두번째 칸에 있는건 먹을만한데?”
ㅠ.ㅠ 세사람의 장정과 나…네칸짜리 찬합을 하나씩 차지해도 모자랄판에 한칸만 멀쩡하다니..게다가 반찬은 다 엎어버리고…
결국 우리는 쫄쫄 굶고서 정상에 더 있지도 못하고 쫓기듯 하산을 했다.
배고픔에 어떻게 산을 내려왔는지도 모를만큼 어느새 우리는 산아래에 닿아있었다.
내려오는 내내 그는 친구들로부터 원망을 들어야했다.ㅋㅋ
입구에 여러가지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가게로 들어가 쇼핑(?)을 했다. 그동안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자주 왔던 산이므로 딱히 기념품이라고 살만한 게 없었으므로.
기차는 4시 10분발이다.4시까지는 원주역에 도착해야하는데, 너무 늦게 산에 오르기 시작한 탓에 과속이라도 해야할 판이었다.
“얌마..너때메 밥도 굶고 인천가게 생겼다…으이구, 웬수야!!!”
있는 힘껏 달려 원주역에 도착하니 오후 3시 45분…
서둘러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정근씨가
”여기까지 와서 밥도 못먹으면 말이 안되지..그냥 기차표 취소하고 저녁에 고속버스로 가지 뭐.철호 니가 밥사라.”
이런다.
우리는 여유있게 점심겸 저녁밥을 먹고 차도 마셨다.
고속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8시…
정근씨는 갑자기 내게 아까 산에서 샀다며 나무 목걸이를 건네준다.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야…언제 그런건 다 샀냐?”
”야…잘 지키고 있어 임마…오늘 도시락 엎은 벌이다”
그렇게 숨가쁜 만남의 하루가 저물어가고있었다.
버스 타는거 보고 간다는걸 그의 친구들은 한사코 거절해서 결국 나는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차에 둘이 남게 되었을 때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고마웠어요. 덕분에 내 친구들이 아주 재밌었다고 하네요. 고마워서 그러는데 커피 한잔 하고 들어갈래요?”
집 근처 까페에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나는 어색함도 모르고 또 그렇게 수다를 늘어놓았다. 그때 알았다, 그가 참 수줍게 웃는다는걸…
집이 어디냐고 집 앞까지 태워다 준단다.
하지만, 외간 남자에게 그것도 같은 건물에 근무하는 남자에게 우리집을 알려준다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안그래도 내일 출근해서는 시침 딱 떼기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나였기에..
우리집에서 한블록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즐거운 하루였는데 이 허전함은 무얼까?
다음날 아침 7시쯤 나는 집을 나섰다.
그날 따라 아빠가 회사까지 태워다준다고 하셨다. 늘 버스타고 다녔는데 말이다.
차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반대로 주차되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동네를 한바퀴 돌아서 큰 길로 나와야했다, 차를 돌리기엔 골목길이 너무 좁았으므로…
아빠 승합차를 타고 동네를 반쯤 돌았을 무렵, 갑자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누구냐?”
“에? 1층에 근무하는사람인데…왜 우리 동네에 있지?”
“누구 데리러 왔나보지 뭐.”
순간 그가 데리러 온 그 누군가는 바로 나라는 것을 육감으로 알았다. 왜냐면 그가 서 있는 자리는 바로 어제밤 늦게 내가 내린 바로 그 자리였으므로…
하지만, 나는 아빠의 차에서 내려 그의 차를 탈 확실한 아무런 근거를 찾지 못한채 그냥 회사로 향했다, 다만 심증만 있었을 뿐…
한참 바쁜 오전시간이 지나고나서 그는 내게 전화를 했다.
“왜 안내렸어요?”
”에? 내리다니요?”
나의 심증이 확실한 현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나를 데리러 아침일찍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를 발견하고는 내가 곧 내릴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지 않아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냥 출근했노라고..그는 지금 내게 수줍은 고백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남편과 사랑이란걸 시작했었다.
나보다 키도 작고 그래서 몸집도 더 작아보이는 그였지만, 그는 정말 마음이 너그럽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집에서 맏딸인 나는 동생들에겐 특히나 너그럽지 못했는데, 그는 내 동생들이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끝까지 그 부드러움을 잃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해주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침잠이 유난히 많은 우리 남편이 매일 아침 7시에 나를 데리러 집 앞으로 온건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남편은 자명종 소리에도 한번에 일어나지 못할만큼 지독한 늦잠꾸러기이므로, 그래서 지금도 나는 남편을 깨우느라고 한참을 씨름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때는 오로지 사랑하는 나를 볼 일념으로 졸음을 멀리 쫓아내고 새벽부터 바지런을 떨어야했을 것이므로 그렇게 내게 정성을 다했던 그가 한없이 좋아보였으므로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부드럽고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믿음과 사랑을 줄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는 그런 나의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매월 말일이면 아무리 바쁜 중에도 짬을 내어 나를 불러내곤했다.
집 앞에 나가면 그는 땀에 젖은 셔츠 바람으로 내게 다가와서는 손을 잡고 차를 향해 걸어간다. 트렁크를 열면 그 안에는 항상 꽃바구니까 놓여있었고, 그는 그것을 내게 건넴으로써 수줍어 차마 말로는 못하는 고백을 수도 없이 했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는 그를 나는 사랑하지않을 수 없었다.
인천으로 발령난 후에 그와 나는 행여 멀어진 거리만큼이나 마음이 멀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했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왜냐면 그와 나는 가까이 있었을 때보다 더 긴 통화를 했고, 거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자주 만났었다. 멀어진 거리만큼 오히려 더욱 애틋한 사랑이 뭉클뭉클 솟아났기 때문이다.
내가 인천으로 올라가면 그는 미안해 어쩔 줄 모르면서 버스 터미널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저녁에는 아무리 차가 막혀도 나를 꼭 대문앞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어느 화이트데이에 그는 내게 깜짝 선물을 하기도 했었다. 일이 끝난 저녁 8시쯤 인천을 출발한 그는 밤 10시 30분쯤 우리 집 앞에 도착을 했고, 그걸 까맣게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나는 “잠깐 나와볼래?”라는 그의 말을 첨엔 농으로 들었었다. 하지만, 곧 그의 진심을 눈치채고 내가 대문을 열고 나왔을 때!!!!
그는 커다란 사탕 바구니를 내게 건네며 그 뒤로 피로를 감추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런 정성에 누가 감복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그는 언제나 내게 정성을 다했다. 만남의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더욱 그런 모습들이 마음에서 우러난 것임을 느꼈을 때 사랑은 굳건해졌고, 그래서 우리는 결혼도 갈등하지 않고 자신있게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의 결혼식 사회를 반 억지로 맡았던 그의 친구, 치악산행에서 소개팅했던 그의 친구, 나를 마음에 들어해서 목걸이 까지 선물하며 잘 지키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했던 그의 친구는 이를 박박 갈았다.
"잘 지키고 있으랬더니 임마...니가 낚아채냐?"
ㅎㅎ 그 친구 지금 우리 남편과는 둘도없는 친구로 여전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요...ㅎㅎ
아마도 남편은 저의 유머러스한 모습에 산을 내려오는 동안 이미 마음을 정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남편은 내게 정성을 다한다, 마음을 다해서…가끔 두 아들놈과 씨름하느라 내가 소리를 지를 때가 있을지언정 남편은 늘 웃음으로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그 눈빛이 기억나 나는 이내 추억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나는 평생 이렇게 추억속에서 살 것 같다, 영원히 남편의 웃음과 미소에 중독된 채…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 남편, 극 중의 한기주보다 훨씬 더 멋진 남자였네요.
그리고, 우리도 멋진 연애를 했었네요. ㅎㅎ
오늘은 남편이 퇴근하면 한번 꼭 안아줄래요.
결혼이요? 사랑한다면 겁내지 마세요.
내게 마음을 다해 정성을 바치는 남자는 결코 내 믿음과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답니다.
그냥 잠깐동안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을 하는 그런 거짓행동과는 차원이 다르죠.
그건 그 사람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답니다. 그 사람이 내 앞에 설 때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답니다.
행복한 결혼을 꿈꾸고 있는 후배 여러분!!!
내게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는 남자가 곁에 있다면 다시한번 그를 눈여겨보세요.
당당한 고백을 못하더라도 그 수줍음 뒤에 견고하게 서 있는 사랑과 믿음을 꼭 발견하시길 바라면서 글을 맺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