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풀죽은 소리를 들은 게 한참이나 되었지만 이런저런 방법만 내걸었을 뿐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 해 주지 못했다.
사태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사태를 간단하게 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는 인생살이의 법칙을 무시한 조그마한 실수가 딸아이를 며칠동안 우울하게 만들었다.
서울 살이에 들어간 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 딸아이지만 아직은 닳거나 약아 빠지질 않아서 제 잇속 차리는 일에는 무르기만 하다.
20여 가구가 세 들어 사는 조그마한 빌라에서 갓 제대하고 복학한 동생과 자취를 하면서 살림이라고 시작하고 보니 필요하고 소용 되는 게 많았지만 극히 기본적인 것 빼 놓고 될 수 있으면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꾸려 나가려고 웬만한 것은 요구하지도 않았다.
알뜰한 딸아이는 어느 날 집 앞에 버려진 조그마한 2단짜리 서랍장을 주워 다 놓고 공짜로 살림 늘었다고 좋아 했지만 그 서랍장은 얼마 못가서 이내 부서지고 말았다.
버려질 때는 다 이유가 있었는데 딸아이는 사회경험이 부족했던 탓에 앞뒤 안 재고 안방 한쪽에 갖다놓고 좋아라 했던 것이다.
딸아이는 그 부서진 서랍장을 집 앞에 다시 내다 놓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수거 해 가질 않더라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그런 물건은 내 놓기가 바쁘게 수거 해 갔는데 며칠을 지켜봐도 그 자리에서 움쩍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딸아이는 그런 가구 종류는 스티커를 붙여서 내 놓아야 한다는 걸 사소한 일이생기고 나서야 알았다. 서랍장을 주워다 놓았을 때도 스티커는 붙어있지 않았고 대부분의 버려진 가구들도 스티커는 부착되지 않아서 그게 맞는 줄 알았단다.
서랍장을 내다 놓은 지 일주일이 된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는데 문제의 서랍장위에 네 귀퉁이에 노란 비닐 테이프를 붙이고 굵직한 검은 메직펜으로 ‘4천원에 양심을 버린 사람’을 찾는 메모지가 붙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마치 딸아이의 소행인 것을 아는 것처럼 빌라 입구에 보란 듯이 놓여 있었다고 했다. 그때서야 그런 물건은 버리는데 돈이 든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양심을 버린 사람으로 찍힌 이상 자수하고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에는 야무지고 딱 부러지는 성격이어서 옳지 않은 일에는 바른 소리 서슴지 않았지만 이번 실수에는 저으기 당황하는 눈치였다.
동사무소에서 발행하는 4천 원짜리 스티커에는 주소와 전화번호를 기입하게 되어 있어서 선뜻 붙일 수도 없고 그냥 있자니 양심을 속이는 것 같아서 딸아이의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 되었다. 날이 갈수록 가슴이 바작거리며 타 들어 가서 견디기 힘 든다고 했다.
모른 척 하기엔 마음여린 딸아이의 곧은 성격상 지나칠 수가 없었고 얼굴에 철판 깔고 남의 일인 양 넘겨 버리기엔 목에 가시가 박혀서 드나드는 발목을 잡아채는 것이었다. 혼자 고민하다가 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엄마, 선생 체면이 말이 아니네요. 이러고도 아이들 교육을 어찌 시키겠어요”
부모가 되어 가지고 죄를 짓고도 그냥 있으라고 하기엔 나 역시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한두 가구가 사는 것도 아니고 주변엔 일반 주택도 있어서 누가 범인인지 자수하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 갈수도 있지만 손톱만한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융통성 없는 내 아이들이 누군가가 다그치기라도 한다면 내 물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할 용기가 없음을 어미 인 내가 더 잘 알기에 거짓말 하라고 부추긴다는 건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남편에게 얘기도 못하고 모녀는 그러고도 며칠을 더 끙끙 앓았다. 망신은 잠시지만 해결하지 않는 이상 마음 앓이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지름길이 있지만 돌아서 갈 궁리만 하자니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이래서 법은 필요 한가 부다.
아이들이 객지에서 전전긍긍 하는 걸 생각하면 내 가슴은 벌레 끼인 이파리같이 오그라들어 맘이 편칠 않았다.
마음 여린 아이들이 별것 아닌 판자 서 너 쪽 가지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하는 생각에 빨리 해결해 주고 싶어서 맘이 급했다.
할 수 없이 남편에게 얘기를 했더니 한심한 듯이 혀를 찼다.
“모녀가 똑 같네.”
결론은 다시 집안으로 들여 놓는 것이었는데 두 아이가 또 난색을 표했다.
누구 눈에 뜨이기라도 한다면 그동안 얼굴에 철판 깐 게 드러나는데 그런 창피를 어떻게 감당 하냐고 징징 거렸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실실 나왔다. 어이구, 과연 큰일 할 녀석들이다.
그래서 남들 다 자는 새벽에 감쪽같이 일 치루라고 지시를 했더니 이 두 녀석은 몇 시가 적당할지를 두고 한참이나 실랑이를 하더니 새벽 한시에 거행(?)하기로 했단다.
아들 녀석은 새벽 한시에도 사람들이 다니니 새벽 네 시로 하자고 했지만 딸아이는 그때까지 잠 안 자고 기다릴 자신 없다고 한시를 고집했단다.
다음 날 전화를 했더니 무사히 일 잘 치루었다고 했다. 기분이 날아 갈 듯이 가볍다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 가 있었다. 이젠 두 발 뻗고 편하게 잘 수 있다고 했다.
목구멍에 걸린 가시 제거 했을 때의 그 기분은 가시가 목에 걸려 본 사람은 안다.
며칠 후에 병원 진료 차 가는 남편이 승용차 뒷 트렁크에 싣고 내려 올 작정이다. 이곳에서 스티커 붙이면 망신당할 일도 없이 간단하다.
헛웃음이 나온다. 생활 쓰레기로 인해서 전 국토가 몸살을 앓는 시점에서 바람직한 정책이지만 온 국민이 경악할 사건을 저지르고도 눈썹 하나 까딱 안하고 버텨 사는 강심장 가진 사람들이 즐비한 세상이다.
조그마한 쓰레기에 스티커 한 장 붙이지 못한 죄로 여러 날을 앓아야 했던 딸아이를 보니 생각할 게 더 많아 진 요즘 입맛이 떫고 쓰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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