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끝 간 데 없이 높고 투명 한 날 남편을 따라 나선 곳은 외로운 구름이 하늘로 오른다는 의성 등운산(騰雲山) 고운사(孤雲寺)였다. 신라 문무 왕 원년에 세워진 사찰로 처음 이름은 고운사(高雲寺)였으나 신라말기 불교와 유교, 도교에 통달했다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호를 따서 그 이름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유서 깊은 대 사찰인데도 불구하고 입장료를 받지 않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고속도로변에는 가을의 대명사 갈대가 그 큰 키를 주체 못해 간간이 부는 약한 바람에도 휘둘리고 있었다. 그래서 여린 여심(女心)에 비유한 걸까. 허리를 틀며 하늘거리는 가녀린 몸매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나이를 핑계 삼아 두툼해진 허리께로 눈이 갔다. 여름 내내 혈기를 뽐내던 잎 푸른 나무들이 이젠 돌아갈 차비를 서두르는지 누르스름하게 한 풀 꺾인 채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는 대자연의 섭리가 아리게 다가왔다.
절에서 약간 떨어진 입구에 수문장같이 버티고 선 도토리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싸 가지고 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떼웠다. 집을 나설 때부터 챙겨 온 CD 플레이어를 벤취 위에 얹어 놓았다. 감미롭고 색시한 저음의 가수 엘비스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는 가을만 되면 나에게 홍역을 옮겨다 놓는 노래다. 이 노래를 들으면 이상하게도 없던 가슴앓이가 생겨난다. 이유 없이 감성이나 염세주의자가 되어 훌쩍거린 적도 있었다. 치유가 아닌 발병의 원흉이다. 평소 같으면 모든 생각 다 접어두고 음미할 노래지만 가을 색 짙은 노래를 듣는 내 귀와는 달리 내 머릿속은 다른 궁리로 꽉 차 있었다. 도토리 나뭇잎이 떨어져 켜켜이 쌓인 사이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도토리가 돗자리를 펼 때부터 줄곧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빠르게 눈알을 굴려 어림을 해보니 품삯은 충분히 나올 것 같았다. 낙엽을 들추니 붉은 갈색의 도토리가 반들거리는 윤기를 띄고 숨어 있다가 화들짝 놀란다.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은 자르르 윤기가 흐르지만 시간이 좀 지난 것은 윤기 없이 허옇게 탈색이 되어 있다. 그러나 깨물어 보니 하얀 속살이 보여서 눈에 뜨이는 대로 주웠다. 혹시라도 뭇사람들의 눈에 거슬리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휴일인데도 관광객은 많지 않았고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30여 분 이상을 쪼그리고 앉아서 주은 도토리가 낱알이 크진 않지만 한 공기는 실히 넘어 보였다. 줍기 전에는 한 되박을 염두에 두었는데 욕심이 지나쳤나 보다. 그 동안에 몇몇 사람이 호기심으로 자꾸 들여다보고 묻는 게 민망하고 미안해서 미련은 남지만 손을 털고 일어섰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잠시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남편의 면전에서 흔들어 보였다. 마치 큰 수입이라도 잡은 듯이 의기양양하게 “오늘 기름값은 빠졌네.”라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어이없어 쳐다보던 남편이 버리라고 했다. 괜히 가져가서 썩혀 버리지 말고 다람쥐 양식으로 남겨 두라고 했지만 다른 산에 가서 몇 번 더 주우면 한번은 해 먹을 만 하다는 가당찮은 장담을 했다. 물론 자신 없는 실언인줄 알면서도 욕심을 접지 못하고 도토리를 가방 속에 넣어 왔는데 이것은 애물단지가 되어 주워 오는 날부터 고민거리였다. 적게는 한 되 박 만 되어도 도토리묵을 쑤어서 그야말로 오리지날 도토리묵을 맛 볼 수 있으련만 할 줄도 모르는 건 둘째치더라도 양이 너무 적어서 도저히 묵을 쑬 수가 없었다. 버리자니 애써 주워 온 게 아까웠고 두고 보자니 실속 없는 닭갈비 같아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계륵(鷄勒)이 따로 없다. 상온에서 보관하면 벌레가 생겨 못쓰게 된다는 이웃사람의 귀 뜸에 비좁은 냉동실에 넣고 보관했으나 번번이 냉동실 밖으로 쫓겨나야했다. 며칠을 고민 아닌 고민으로 냉동실을 들락거린 끝에 내린 결론은 오랜 시간 한 점 옹이가 되어 있는 조그마한 사건을 뽑아버리고자 되돌려 주자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수년 전 시댁엔 큰 호두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여기에서 수확된 호도는 일년 제사와 명절을 지내고도 친척집에 돌릴 만큼 양이 많았는데 어느 해부터 인가 수확이 부쩍 줄었다. 해충 약을 뿌리고 거름도 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소출이 적어서 우리 집 제사밖엔 지낼 수 없게 되었다. 나중에 그 원인을 알고 보니 청솔모의 짓이었다. 생기긴 다람쥐 같이 생겼는데 다람쥐보다 더 새까맣고 귀엽게 생기지도 않았다. 청솔모가 떼 지어 한번 훑고 가면 호두나무는 헐렁하게 비어 은근히 속이 상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날쌘 도둑놈을 잡아서 단죄하기는 불가능 했다. 도둑질 해 가는 게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아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어느 날 날쌔게 호도를 훔쳐가던 청솔모가 내 눈에 ‘딱 걸렸다.’ 급한 김에 내 가까이 있던 돌맹이를 나무 위로 집어 던졌는데 이 돌맹이에 청솔모가 정통으로 맞은 것이었다. 난 단순히 호도만 빼앗고 쫓아 버리려고 했는데 억세게 운 나쁜 이 청솔모가 명중률 제로인 나에게 한 치도 안 비켜가고 맞아 버린 것이다. 소 뒷걸음으로 쥐 잡는 것보다도 더 뛰어난 재주였다. 완전 범죄가 덫에 걸렸다. 훔쳐가던 호도는 땅에 떨어지고 큰 부상 - 비명을 질러댔다. -을 입은 것 같은 청솔모는 절룩거리며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굉장한 명사수라도 만난 줄 알고 혼비백산 했을 것이다. 내 재주에 내가 더 놀란 사건으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라도 죽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죄책감에 그날부터 난 몸에 붕대라도 칭칭 감고 있을 것 같은 청솔모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또 훔치러 온다면 모른 척 눈감아 주고 미안 하다는 소리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지만 그날 이후로 청솔모는 한 마리도 오지 않았다. 한두 마리가 드나든 게 아니건만 단체로 발길을 끊어 버렸다. 인심 흉악한 집이니 근처엔 얼씬도 말라는 우두머리의 접근 금지령이라도 떨어진 모양이다. 청솔모가 집단으로 발길을 멀리한 뒤에는 손가락 굵기 만한 호도벌레가 기승을 부려서 결국엔 약 치는데 힘이 부치신 시어머님은 호도 농사를 포기 하시고 시장에서 사다가 쓰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자연히 청솔모가 발걸음 할 일도 없어졌고 내가 청솔모에게 사과의 말 할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내가 말 못하는 짐승에게 몹쓸 짓을 해서 그런가 싶기도 해서 맘이 편치 않았다. 도둑질 한 죄보다도 돌맹이 던진 죄가 더 무거웠나 보다. 이젠 남이 그 집에 들어가서 살지만 호두나무는 이름만 유지할 뿐 웬 일인지 단 한 개의 호도도 달리지 않는다고 살고 있는 사람이 애석해 하기도 했다.
도토리 봉지를 들고 평소 다니던 산으로 올라갔다. 야트막한 야산이지만 만만하게 찾아와서 편안하게 쉬고 갈 수 있는 휴식처이기도 했다. 규모가 그리 큰 산이 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소나무에 비해서 도토리나무가 많이 눈에 띄지 않아 다람쥐나 청솔모가 혹시라도 이곳을 몰라 찾아오지 못해 그냥 썩혀 버리지나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해 보기도 했다. 도토리나무가 두어 그루 들어 선 곳을 찾아서 들고 간 도토리를 이리저리 흩어 놓았다. 주울 때는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나 흩뿌리는 데는 10초도 채 안 걸렸다. 여기저기 흩어진 도토리는 떨어진 도토리나무 잎과 구색이 맞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바위에 걸터앉아 나에게 돌맹이 맞고 도망 친 청솔모의 넋 대신 다람쥐라도 찾아와 주길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손님은 오지 않았다. 사람이 버티고 앉아 있는데 아무리 간 큰 다람쥐나 청솔모라도 발걸음 하진 못 할 거라는 것 알지만 난 기다려야 했다. 그 땐 정말 미안했다는 말 전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니까.
손님을 기다리는 내 어깨위로 하얀 가을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