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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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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는 사람이 부럽다


BY 蓮堂 2006-06-22



많이 앎과 많이 모름에는 일정한 상한선과 하한선이 없다. 그러나 자괴감에 빠질 정도로 바닥이 드러나는 내 무지의 하한선은 늘 나를 초조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마늘 속껍질 같이 얇아 빠진 지식으로 글 쓴다고 깝죽거리는 게 영 못 마땅하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책 보따리 싸 짊어지고 지식을 얻으러 다닌다는 것도 힘에 겹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했지만 두드리는 것도 힘과 정열이 머리끝까지 뻗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내 경우에는.

많이 배운 사람보다도 많이 아는 사람이 부러운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박학다식한 사람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아래로 떨어진다. 한 없이 작아지는 내 몰골이 너무 초라하고 빈약해서 시선 둘 곳이 마땅치 않다.

긴 사람에 비해서 짧은 가방 끈을 탓하기에 앞서 나태하고 안일한 사고에 철퇴를 가하고 싶어진다.

많이 배워서 지식이 넘친다면 당연한 것이지만 못 배워서 몰상식한 것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 뭔가 꼬투리가 잡히는 일이다.

많이 배웠다고 많이 알지는 못한다. 뒤집어 말하면 적게 배웠다고 상식이 부족하진 않다.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서 지식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진다. 많이 배운 사람이 지식이 모자라는 건 게으름을 부린 탓이고 적게 배운 사람이 지식이 넘치는 건 부지런했다는 증거다. 내가 많이 알지 못함은 길지 않은 가방 끈 탓도 있지만 게으름이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얼핏 보기엔 꽤 바지런 해 보이지만 실상은 몸을 많이 아끼고 사리는 편이다. 내가 좋아 하는 일엔 코가 빠지지만 조금이라도 피하고 싶은 부분엔 인색할 정도로 거부한다. 지식을 쌓고 상식이 넘치면 글쓰기도 훨씬 편하고 쉬울 텐데 여기저기 뒤지고 들춰 보는 게 귀찮아서 수박 겉  핥아대는 시늉만 한 것 같아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맘이 편하질 못하다.

며칠 전에 한 거인(巨人)을 만났다.

올해 일흔 여섯의 노인은 연세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시골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전직 교사다. 정년퇴임 후에 여러 곳에 강의를 하다가 몇 년 전부터는 관광지 박물관에서 가훈 써 주는 일을 소일삼아 하신 분인데 저술한 책도 이루 말 할 수 없이 많다. 대통령 훈장과 도지사 표창까지 수상하신 분이지만 아직도 뭔가 움직이고 싶어서 하얀 모시 적삼을 입고 내 앞에 나타나서 도움을 청했다.

가훈을 쓰는 옆에서 저술한 책을 판매 하는데 포장만 해 달라고 했다. 수익금의 일부가 재직했던 학교의 불우한 학생들 점심 값으로 쾌척이 된다고 했다. 즐거운 맘으로 쾌히 승낙을 하고 이틀만 도와주었는데 적지 않은 수고비도 받았다.

일 하는 중간 중간에 틈이 생기면 여담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건성으로 들을 수 없이 나에겐 경이롭고 신기했다.

그분은 지식의 깊이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백발의 머릿속이 비좁아 보인다. 많은 지식을 내 머릿속으로 퍼 옮겨와도 빈 자리가 안 날 정도로 빼곡해서 덜어 낸 표가 안 날 것 같다.

물론 그 연세에 많이 배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지식이 넘친 게 아니었다. 평생을 부지런 했다. 서예경력이 60년이 넘었고 전공분야 아닌 것에 더 많은 지식이 들어 있었다. 그분이 저술 한 책은 전공 분야의 것은 두어 가지 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외도해서 얻어 낸 지식을 바탕으로 책을 저술 했다. 종교서적은 물론 중국사기나 사서삼경을 번역했고 영어 중국어 일어에 능통해서 다시 한번 더 나를 전율케 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를 보고 오히려 이상스럽게 묻는다.

“새댁,- 나를 딱히 부를 호칭이 생각이 안 났는지 ‘새댁’이라고 했다. - 이 늙은이가 주책 부리는 게 이상해요?”

이상한 게 아니고 요상 하다고 해야 했다.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물어서 대답 못한 분야가 하나도 없어서다. 오히려 질문자의 상식이 한계에 닿아서 묻고 싶어도 아는 게 없으니 물을 수가 없었다. 기껏 물어 봤댔자 얕아빠진 상식 드러내는데 일조 할 뿐이다. 질문의 본질을 비켜 갈 정도니............

게으름 부린 게 민망했고 그 분에 비해서 젊은 나이가 부끄러웠다.

나를 소개 해 준 친구가 나에 대해서 얘기를 한 것 같다. 글을 쓰자면 부지런 하라는 말과 겸손 하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강조 했다. 이미 알아서 꿰고 있는 일이지만 막상 훈계처럼 듣고 나니 마치 내 속을 뚫어보고 하는 소리 같아서 얼굴이 화끈 거렸다. 기어들어 가는 대답 말미엔 항상 ‘좋은 말씀 감사 드립니다’ 라고 했더니  예의가 발라서 맘에 든다는 칭찬을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가훈을 받아가는 사람에게 꼭 한마디 찔러주는 말은 ‘바르게 살되 부지런 하라’ 라는 말인데 나보고 하는 말 같아서 대답은 내가 했다.

평생을 좌우명처럼 가슴 한 복판에 그 말을 심지처럼 박고 사는 노인에게서는 아직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열정이 배어 나온다.

곁에서 더 많은 것을 덜어오고 싶었지만 그분과의 인연은 두 번의 만남으로 아쉽게 끝이 났다.

다음에 인연이 닿으면 조금이라도 덜 민망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은 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