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이상을 구부리고 앉아서 옥스퍼드지에 한 땀 한 땀 메꾸어 나가던 십자수 ‘달마도’를 마쳤다. 처음에 시작 할 때에는 보름이면 마칠 것 같이 가소로워 보였는데 생각보다는 장난이 아니었다. 이미 몇 개를 해 본 경험이 있기에 속도가 붙을 줄 알았다. 비슷비슷한 색깔의 실을 한 두 땀 마다 바꿔 주어야 했고 바늘 한번 잘못 꽂으면 그 여파가 엄청나기도 했다. 도미노 현상으로 몽땅 다 풀어내야 하는 기가 막힌 작업도 감수해야 했다. 늦은 시간까지 사팔뜨기로 눈에 초점 맞추고 목을 빼고 앉아서 구부러진 허리 두드리며 끙끙대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물었다.
“누구 줄 건가?”
이렇게 물은 건 ‘달마도’가 이미 3년 전부터 내 집 거실에 붙어 있어서 남을 줄 거라는 추측을 했기 때문이다.
냉큼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하얀 옥스퍼드지 반 이상을 메꾸어 나가도록 관심을 보이지 않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물은 건 나름대로 짚이는 게 있어서 인 것 같았다.
작년 이맘때 작은 시누이 결혼기념일 선물로 프루츠 세트(fruit set)와 작은 액자를 만들어 준적이 있기에 비슷한 성질의 선물쯤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 때도 아뭇소리 안하고 있었는데 말미에 새긴 이니셜을 보고 눈치를 채었다. 입이 찢어지도록 웃는다. 제 피붙이 선물이니 그리도 좋았겠지.
그래서 이번엔 시동생 거냐고 묻는 것이다. 가슴이 뜨끔했다. 대답대신 말없이 쳐다보았다. 잘못 짚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짐작이 안 간다는 제스쳐다.
“ 이번엔 아닌데..................요..........”
아니라고 하기에 미안해서 말끝을 흘렸다. 숨길만큼 비밀스러운 것도, 염치없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차마 친정 동생 거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오질 않았다.
“..... 너무 힘들어 하니까.......... 이거라도 혹여 힘이 될까 싶어서.....”
주어 서술어, 그리고 머리 꼬리 다 떼어내고 몸통만 띄엄띄엄 쏟아내었지만 남편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주억 거렸다.
그러나 언뜻 스치는 눈언저리의 서운함은 오히려 솔직함에 가깝다.
줄 대상을 알리지 않았을 때에는 밤늦은 시간까지 붙들고 앉아 있어도 미안하거나 눈치가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동생 줄 거라는 말을 한 뒤에는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빨리 자라는 소리도 고깝게 들렸고 대충 하라는 소리도 서운하게 들렸다.
표구를 해서 가져 올 때에도 그랬다. 시동생 거라면 표구비도 안 주고 퇴근길에 찾아오라고 톤 높여서 당당하게 부려먹을 텐데 그럴 형편이 못 됐다.
꼬불쳐 둔 돈으로 남편 퇴근하기 전에 찾아다가 될 수 있으면 남편의 시선이 안 미치는 곳에다가 감추듯이 가려 놓아야 했다.
그에 대해선 타박이나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남편에 대한 배려라고 하면 억지가 될 진 몰라도 자진해서 형틀 메고 싶진 않았다.
참 묘하다.
친정 일에는 괜히 주눅이 들고 기가 꺾이는 것 같다.
이 묘한 감정은 벌써 예전부터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동생하고 시동생은 한살 차이로 동생이 한살 많다. 그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졸업을 하고 잠시 백수로 있은 적이 있었다. 내 가슴은 새까맣게 탔다.
그럴 즈음에 이웃 친구하고 얘기 나눌 기회가 있어서 여담으로 두 동생 얘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한다는 얘기인 즉 선
“ 이봐. 좋은 취직자리가 있다면 친정 동생과 시동생 둘 중에 누구에게 줄 건데?”
순간 머릿속이 꼬이기 시작했다.
가슴 아프고 애처로운 것 봐서는 동생을 줘야 하지만 내 주머니 축이 나지 않으려면 시동생을 줘야 한다. 쉽게 말해서 동생은 오빠 몫이고 시동생은 내 몫이기 때문이다. 핏줄이냐 현실이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툭 뱉은 말은 궁색하고도 빈약한 딱 한마디였다.
“둘은 전공 분야가 틀려서 답이 안 나 오네.......”
동생은 인문계열이고 시동생은 자연 계열이었던 게 참으로 다행스러웠던 탈출구였다. 심적으로는 동생을 주고 싶다고 하겠지만 핏줄이 현실을 앞지르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동생 못지않게 시동생도 나에겐 눈물 질금거릴 만큼 소중한 고리기 때문이다.
핏줄.........
그렇다. 항상 내 가슴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상채기를 내는 게 핏줄이다.
그렇게 긁어낸 곳엔 아물지 않은 생살이 늘 가슴 한 복판에서 화석처럼 또아리를 틀고 앉았다. 핏물이 배어 나오고 허옇게 고름이 나와도 껴안고 다독거려 주어야 할 내 살과 뼈다. 더군다나 내리 사랑이라고 해서 더 마음이 짠하다.
순간순간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힘줄이 온몸을 죄어 놓아도 비명조차 속으로 삼켜야 할 고리였다.
보이지 않는 그 고리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친정붙이는 눈물이고 가슴앓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연.
남편이라는 매개체로 인해서 맺어진 고리다.
그러나 남편을 중심으로 부채 살 같이 펼쳐진 고리는 등 돌리고 자르는 순간부터 남이 될 뿐만 아니라 걸리는 것도 남아 있는 것도 없는 편안한 제로상태가 된다.
시집 붙이에 대한 의무와 도리와 법이 무장해제 된다고 해서 가슴이 무너지진 않지만 딱지가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삶의 흔적에 대한 댓가 같다.
친정의 끈은 동아줄보다도 더 굵고 질기지만 시집의 끈은 거미줄보다도 못하다.
친정과 시집 사이의 그 괴리는 수평화 될 수 없는 영원한 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