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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과 비판


BY 蓮堂 2006-01-22

 



작품을 심사 받았다. 이 작품 심사는 내가 몸담고 있는 문협(文協)의 통과 의례다. 그러기 때문에 합평회가 있다는 말과 작품 선정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그때부터 쫄아 든 가슴은 합평회가 끝날 때까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심사받을 작품을 몇 번이고 손을 보고 수정과 삭제를 거듭해도 만족스럽기는커녕 오히려 본래의 타이틀을 벗어 난 듯 하여 불안했다. 작년 이맘때 신입회원이 겪는 고초를 보았기에 미리부터 등에 땀이 났다. 결석을 하려는 비겁도 통하지 않았다. 매도 미리 맞으라고 했던가.

네 사람이 선정되었지만 수필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수필은 내용이 길어서 생략 할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차근차근하게 다 읽어란다. A4용지 두장반의 분량을 읽는데 발음도 헝클어지고 소리도 점점 기어들어가는 것 같아서 읽는 중간 중간에 서른 여 명의 좌중을 돌아보니 모두들 내 글에 코를 박고 열심히 듣고들 있었다. 침이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질 않았다.

평이 시작 되었다. 글 읽는 서두에 ‘비평’은 하시더라도 ‘비판’은 하지 말아 달라는, 초보로서는 겁 없는 주문을 애교를 섞어가며 애원하듯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99%가 기성작가들이다. 걔중에는 경력 30년이 넘는 원로작가부터 시작해서 나 같은 초보 작가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평을 하는 잣대는 뽀족하게 날이 서 있기 마련이다. 중앙문단(한국 문협)의 이사며 심사위원으로 있는 분이 마이크를 잡자 가슴이 철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남의 글 헤집고 비트는데 용서가 없는 분으로도 유명하다. 그러자니 칭찬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 분이다. 그분한테 칭찬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된통 걸렸다는 생각이 미치자 긴장으로 입술이 타는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음줄의 필요성과 쉼표의 역할부터 시작한 질문과 단어 하나하나를 물고 늘어지는데 울고 싶었다. 내 얕은 상식으로 설명 하자니 너무 어색하고 설명이 부족한 듯 했지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해명이나 설명은 있어야 했다. 칼날 같은 질문이 끝나고 다음 사람한테 바톤이 넘겨지자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다음 사람이라고 인정을 두진 않는다. 수필의 정의가 무엇이냐, 수필의 문체를 아느냐, 수필의 틀은 어느 정도 꿰고 있느냐, 왜 수필이란 장르를 택 했느냐.........

' 잘 알겠습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기계적인 인사는 필수다.

어물쩍 넘어갈 질문이 아니라서 무엇이라고 설명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평이 끝난 뒤에 들은 말은 ‘글이 참 좋다’라는 공통적인 호평을 받았다. 단순한 격려 차원의 칭찬을 할 만큼 원로들은 가슴이 넓지 않다고 한다. 흑백의 선을 너무 뚜렷하게 그으 놓는 그 사람들의 혹평을 생각하면 나에게 대한 호평은 참으로 파격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중앙문단의 그 까다로운 분이 내 어깰 두드리며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걸 보고 다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일이다. 수년전 맨 처음 합평을 받았던 사무국장은 그분의 혹평에 충격을 받아서 집에 가서 엉엉 울었다고 후일담을 털어 놓았다. 중앙문단에서도 인정을 받았던 사무국장인데도 용서가 안 된 모양이다. 왜 그렇게 혹평이 필요한가를 물었더니 느슨하게 봐주면 게을러지고 안일해 지는 자만의 무덤을 파는 게 초보들의 특징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채찍을 휘둘러야 다음번에 맞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이다. 작품하나 던져놓고 일년 내내 게으름 부리는 초보들의 버르장머리를 애초부터 잡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지만 발가벗은 몸으로 그들 앞에 선 사람의 입장도 좀 봐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사석으로 옮겨 앉은 뒤에 내가 터뜨린 불만이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물러졌다고 고개를 젓는 지부장도 깐깐 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던질 질문이 더 많았지만 내 표정을 보니 울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면서 사석에서 개인적인 평을 해 주던 인정 많은 사람도 있어서 다소 마음이 누그러졌다.

내 글에 대한 자신은 없다. 익기도 전에 군둥내 부터 풍길까봐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혹평을 하면 우선 자존심이 상하는 얕은 소갈머리는 어쩌지 못하겠다. 비평은 인정하고 수긍하고 넘어가는 자세로 임하지만 비판이나 비난이 실린 듯한 모양새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마음은 비단 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간간이 접하게 된다. 누군가가 단점을 지적하면 맘이 편칠 않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떤 마음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서 기분도 좌우된다. 상대는 충고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지만 한 가지 주의 할 점은 충고는 하되 비난이 실린 듯한 뉘앙스는 풍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자기 잣대만 움직이다 보면 상대방의 기분을 흐트려 놓을 소지가 있다는 것은 명심할 부분이다. 분명 비판과 비평, 충고와 비난은 그 차원부터가 다르다. 비평과 충고는 선의적이지만 비난과 비판은 악의적이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많은 부분을 잊고 산다. 아니 잊은 게 아니고 소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어가는데 덫이 놓여 있다는 걸 인식 못한다. ‘나’와‘ 상대방’은 분명 다른 개체다.

나와 상대를 같은 수평선상에 올려놓고 저울질 하는 경향이 있는데 문제는 나에게 더 점수를 주어서 기울기를 조작하는 태도다. 나만 옳고 나만 정의롭다는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인간관계에서도 아귀를 맞추어나가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옛날부터 입에 단 것은 병을 부르고 입에 쓴 것은 병을 나꾼다라는 말이 있지만 너무 써도 약이 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