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만큼 미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민족도 드문 것 같다.
'~~이 안 좋다' 하면 죽기 살기로 거부하거나 멀리하고
'~~이 좋다'하면 한 가랑이에 두 다리 걸치고 달려드는 민족이 우리 단군의 자손들이다.
어쩌면 단군신화 자체부터 허구성을 띄워서 그러한지는 몰라도 과학적인 근거 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즉 구전(口傳)에 더 충실 하다보니까 한낱 전설이나 속설에 불과한 것에도 목숨 거는 일이 생겨 더러더러 사실화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도 터부시하는 경향이 짙어지면 그 쪽으로 쏠리게 되어 있는 얇은 귀를 나무라기보다는 과학적이고도 투명한 근거에 더 귀를 열어두는 지혜로움을 익혀 나가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지름길 같다.
그러나 과학으로 풀 수 없는 과제들을 과학 제로의 미신으로 풀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지름길에 더 눈과 귀를 모으게 되어 있는 게 두터운 귀를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이기도 하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예전에는 입시시험을 치루는 수험생들에게 엿이나 찹쌀떡 또는 찰밥을 먹여서 '찰싹' 붙으라고 기원을 했는데 요즘은 번쩍이는 두뇌를 가진 젊은 세대들답게 포크나 거울 휴지 등을 선물한다.
이것은 과학적이지도 않고 미신이나 속설도 아닌 이름 그대로 잘 찍고 잘 풀고 잘 보라는 뜻이 담긴, 참으로 애교스럽고 기상천외 한 발상들이다.
예전의 그 끈적이는 토종보다는 아무래도 산뜻하고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게 더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난 내 아이들 둘이 큰 시험 치룰 때마다 안 빠지고 먹이는 게 있었다 .
'미역국'
세상에, 무슨 엄마가 아이들이 시험 치루는 날 백일치성을 드려도 모자랄 판에 쉬쉬거리며 금기시 되어있는 미역국을 먹이다니 아무래도 온전한 정신은 아닐거라고 한번쯤 고개 틀고 의심할 법도 하지만 난 그것을 결사적으로 먹였고 아이들은 미역국 한 그릇 다 비우고 가서 시험을 치루었다.
고교입시..대학 수능...토익시험...면접...등등
제일 처음 먹였을 때는 딸애가 고교입시를 치루던 날이었다.
식탁에 차려진 미역국을 보던 딸애의 두 눈이 사발만 해 졌음은 물론이고 안 먹으려고 완강하게 거부했다.
남편은 나의 엽기적인 메뉴에 어이없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지 나하고 미역국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엄마....우리엄마 맞아요??"
거의 울상을 짓던 딸아이는 출생마저 의심하려 들었다.
"아냐.....난 계모다..그러니 배 안 곯고 시험 잘 치루려거든 다 먹고 가라..."
평소에도 미역국을 즐겨 먹던 딸애의 식성을 알기에 고기도 넣지 않고 담백하게 끓여 주었지만 아무리 철이 덜 든 딸애라도 미역국 먹으면 시험에 미끄러진다는 속설 정도는 꿰고 있었다.
미역에는 '알긴산'이라는 끈끈한 성분이 들어 있어서 장의 점막을 자극해 소화운동을 도와주기 때문에 속도 편하고 머리도 맑아진다는, 제법 과학적인 근거를 들이대며 기를 쓰고 먹여 보냈다.
딸아이는 그동안 공부해 놓은 게 미역국 한 그릇으로 인해서 망쳐질까 불안해서 입을 틀어막고 아예 먹을 생각을 안 하더니 나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서 마지못해 한 그릇을 억지로 비우고 갔다.
밥을 다 먹고 일어선 딸아이의 미심쩍어 하던 눈빛이 그날 하루 내내 잊혀지지 않았었다.
만일에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죄는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아 있는 위험 부담도 감수해야 할 만큼 불안하고 한구석 은근히 후회도 되었지만 속설보다도 과학적인 근거에 더 귀를 열어둔 나를 믿고 싶었다.
내가 세운 고집으로 인해서 혹시라도 속설에 대한 선입견으로 상처 입을까봐 조바심을 냈는데 며칠 뒤에 나온 시험 결과는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았다.
딸아이는 이제 미역국에 얽힌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다음은 아들 녀석의 고교시험이었는데 누나의 전력을 보더니 미리부터 자진해서 미역국 끓여 달라는 주문을 했다.
딸아이 때의 경험 덕분에 나는 물론이고 아들 녀석도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조바심도 내지 않았다.
잘 될거라는 나름대로의 믿음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기대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 아들 녀석을 끌어안고 ‘너 미역국 먹은 덕분에 미역국 안 먹은 줄 알아라’는 묘한 말로 생색을 내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수능 시험 날 역시 미역국을 먹고 간 두 아이는 큰 실수 없이 노력 한 만큼의 좋은 결과를 얻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 점심도 보온 도시락에 미역국을 넣어 보냈는데 혹시라도 옆자리의 친구들이 보았다면 어떤 말로 엽기 엄마를 두둔 했을지 궁금했다.
토익시험도 높은 점수를 받아서 '카튜사'지원 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앞으로 취업 시험을 치루더라도 가능하면 내 손으로 미역국 끓여 먹이고 싶다.
수능 전날 친구에게 전화해서 수능 치루는 애들에게 미역국 끓여 주라고 내 딴에는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종용했더니 완전히 '머리 돈 친구'로 내 몰렸다.
"이기..돌았나??......누구 죽 쑤라고.."
잘 치루라고 격려의 말은 못 해 줄망정 미역국 끓여 주라는 엽기적인 내 말에 기가 막힌 모양이다.
내 애들이 죽 쑤었다면 니 애들 죽쑤라고 그러겠냐고 하면서 쥐어박았다.
그날 미역국을 먹였는지 안 먹였는지는 몰라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두고두고 안타까워하는 모정을 보았다.
뭘 먹여 보냈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올라 왔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흔히들 시험에 떨어지면 ‘미끄러졌다’고 표현을 한다.
그래서 미끈거리는 성분이 있는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질까봐 금기 식품으로 분류 된 것 같다.
과학적인 근거보다는 속설에 더 무게를 둔 게 아닐까 ..
미신을 무조건 불신 하는 건 아니지만 맹종 또한 바람직한 것은 아닐 성 싶다.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무당집 기웃거린 적도 없고 그 흔한 토정비결 보려고 철학관 드나 든 적도 없었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속담이 내가 믿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하긴,
그날 미역국 안 먹였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을런지는 몰라도
뭐든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한 탓에 그리된 게 아니고,
~~한 덕에 그 나마도 된 게 아닐까....하는 긍정적이고도 겸허한 생각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은 나이가 들수록 더 절실하게 생활 속으로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