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을 길게 옆으로 뻗고 시선을 발밑에다가 꽂으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야에 펼쳐진 외나무다리의 길이는 한눈에 봐도 족히 100미터는 넘어 보였다.
외나무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바닥이 보일 만큼 맑고 얕았지만 건들거리는 몸 추스리느라 여념이 없는 내 눈엔 온 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만큼이나 무섭고 아찔했다.
다리에서 떨어져봐야 발만 적실뿐인데도 불구하고 목숨이 달린 것처럼 온 신경을 곧추 세우고 발밑만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강바닥이 훤히 보이도록 얕아 보이던 물이 갑자기 위로 솟구치면서 외나무다리 위를 넘실거렸다.
물살이 발목을 휘어잡는가 싶더니 정갱이를 타고 오르던 물줄기가 가슴팍을 적시고 드디어 목을 쥐고 흔들었다.
뿐만 아니라 눈앞에 보이던 울창한 산도 외나무다리도 갑자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단지 졸린 목 줄기만 끊어질듯이 아파 왔을 뿐 짚혀 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버둥거리다가 이대로 그냥 여기서 죽으려나 보다.
무섭고 두려운 생각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감은 눈을 다시 떠 보았더니 사라졌던 산도 다리도 그대로였고 목까지 튀어 올랐던 물도 아무렇지도 않게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물은 나를 공격하지도 휘어잡지도 않았지만 왠지 그들이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신이 물먹은 솜뭉치 마냥 묵직하고 축축해 지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내 어릴 적 곡예 하듯 건넜던 철교가 생각났다.
내가 자란 곳은 철로를 가까이 하고 있는 광산촌이었다.
석탄을 실어 나르는 기차가 일정한 시간도 없이 수시로 드나들었기 때문에 항상 철로 주변엔 얼씬도 하지 말라는 부모님 당부 외에도 대문짝만한 붉은 글씨로 '위험'이라는 경고판이 사람과 기차가 부딪혀서 피가 튀는 살벌한 그림과 함께 철로 곳곳에 붙어 있었지만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그 문구와 경고판을 눈여겨보고 조심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마치 전신주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불조심'을 보듯 조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엔 경고판이 너무 흔해서 조회시간이면 으레히 늘어놓던 교장선생님의 근엄한 잔소리 마냥 눈에도 귀에도 옳게 걸리지 않았다.
기차 정거장을 벗어나서 조금 더 가다보면 어린 우리 눈에는 엄청 길어 보이는 철교가 하나 있었는데 물 건너편에 있는 동네를 이어주는 지름길이다보니 눈치 빠른 사람들은 기차가 금방 지나가고 나면 연거푸 오지 않을 거라는 나름대로의 경험으로 인해서 용감하게도 곧잘 그 철교를 걸어 다녔다,
'철교횡단 금지'라는 팻말은 누군가에 의해서'금지'라는 문구위에 '됨'이라는 글자를 덧칠 해 '철교횡단 됨' 이라는 장난스러운 문구로 바꾸어 놓은걸 보고 킬킬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요즘 같으면 민원(民願)내지는 민원(民怨)이 되고도 남을 위험천만한 장난사건이었다.
만일을 대비해서 철교 중간에 대피소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 대피소라는 게 철교난간에 엉성하게 붙어 있어서 어린 우리 눈에는 더 위험하고 무서워 보이기도 해서 아이들은 절대로 그곳에서 몸을 피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휩쓸려서 호기심으로 딱 한번 건너 가 보았는데 레일이 아닌 침목을 디디고 엉거주춤 걸어 가다가 나도 모르게 아래를 내려다 보게 되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촘촘이 놓여있는 침목사이로 눈에 들어온 철교아래의 검은 물 - 광산 폐수로 물이 항상 검었다 - 을 보는 순간 너무 무섭고 어지러워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옴싹달싹을 못했다.
만화 속에 나오는 천길만길 낭떠러지 지옥이 연상 되었고 시커먼 폐수가 부글부글 김을 뿜고 있는 듯한 착각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서 더 이상 발이 앞으로 대 닫질 못했다.
철교를 건너기 전에 경험 많은 친구들이 절대로 아래를 내려다보지 말라든 당부를 무시하고 초보자의 호기심이 빚어낸 헤프닝은 친구들의 조롱을 사기에 충분했다.
결국엔 용감한 친구들이 양쪽에서 부축(?)을 해서 간신히 땅을 밟고 보니 지옥을 빠져 나온 듯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던 기억은 두고두고 챙피하기도 하고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던 광산촌의 유년 시절의 기억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두 다리에 힘을 뺐다.
그때의 그 시커멓게 콸콸 거렸던 광산 폐수에 대한 두려움은 강바닥을 알몸으로 드러낸 맑은 물소리에도 사지가 부들거리고 심장 뛰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올 정도로 무서웠다.
외나무 다리위에서 휘청거리며 외줄타는 나를 보고 동행했던 초향 언니가 멀리서 목젖이 보이도록 웃었다.
"연당도 보기 보단 다르네..."
보기엔 야무지고 겁도 없이 대담스러워서 폴짝폴짝 뛰어서 건널 줄 알았나 보다.
이 외나무다리는 전통마을로 지정된 일명 무섬(물섬) - 물 가운데 동네가 들어 있었다는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 이라는 동네 앞에 있는 강폭 150미터를 가로 질러 놓여 있는데 얼마 전에 정부 보조금으로 전통마을 되살리자는 차원에서 관광객 유치도 할 겸 벌인 사업 중 하나다.
직경15~25센티 길이 2.5~3미터의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서 촘촘하게 이어 놓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누구라도 건널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난 나이 값도 못한 채 추태를 부리고 말았다.
마주 오는 사람을 중간에 만나더라도 옆에다가 띠엄띠엄 보조 다리를 만들어 놓아서 되돌아갈 염려는 없다.
마치 외길에서 차량이 만나더라도 비켜 갈 갓길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배려를 해 놓았다.
마주오던 초등학생 아이가 나 때문에 건너오지도 못하고 멀찍이 서서 일렁거리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 게 못내 챙피했다.
그 옛날 철교위에 주저앉아 새파랗게 질린 내 모습을 보고 웃어재끼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지금 저 아이가 나를 보고 그렇게 웃고 있지나 않을지 고개가 자꾸만 아래로 꺾여졌다.
간신히 아이하고 마주서서 멋적게 물었다.
"안 무섭니?"
"아~~아뇨.....디기 재미 있어요"
아이는 묻는 내가 도리어 이상한 듯 빤히 쳐다보다가 날아 갈듯이 겅충겅충 뛰어갔다.
겅충거리는 아이의 뒷모습 위에 그 옛날 철교중간에서 옴싹달싹 못하던 내 모습이 희미하게 오브랩 되어왔다.
수 십 년 동안 요동친 세월의 물살은 여전히 나를 외나무 다리 아래로 밀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