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듣는 것 부르는 것 모두 다 내가 몰입 하는 유일한 취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릿속에 꽂히는 윙윙거리는 노래는 하루가 꼬박 저물어도 그냥 입속에 머물러 있다.
아침 7시경에 흥얼거리는 노래가 하루 중 제일 수명이 길다는 연구 결과에 깨끗이 승복 할 수밖에 없는 케이스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고장 난 레코드 판 같이 반복해서 돌아간다.
아무리 노래를 좋아해도 때론 짜증스럽게 달라붙어서 질리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고 또 다른 일로 인해서 은근슬쩍 비켜 갈수는 있다.
여고시절 즐겨 불렀던 'Johnny Horton'의 'All for the love of a girl'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 가요는 노래가 아닌 줄 알았었다.
팝이 전부인 줄 알았던 그런 시절도 있었고 가요는 시시해서 부르지도 않았던 오만을 부렸던 때도 있었다.
pop은 그래도 가요 보다는 격이 높은것 같으니까 나 자신의 품격도 상승할거라는 착각 때문에 우리 가요를 멀리 했던 건 절대 아니지만 오래도록 내 혼을 붙잡고 있는 건 아무리 반복해 들어도 질리지 않는 팝의 매력 때문에 더 좋아했을 뿐이다.
그 이후에 직장생활 그리고 결혼 후에도 가요는 별로 나에게 감동을 준적이 없었다.
어딜 가나 내 백 속에는 카세트와 이어폰 그리고 즐겨 듣는 Old Pop 테잎이 항상 들어 있었는데 한번은 카세트에 이어폰이 들어 있지 않아서 종착역에 다다를 때까지 내내 벌레 씹은 표정을 버릴 수 없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이변이 생긴 거였다.
얼마 전에 우연히 어느 대중 가수, 그렇다고 널리 알려져서 일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유명한 가수는 아닌 것 같은 - 어쩌면 나만 몰랐을 수도 있지만 - 장사익의 노래를 듣고는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우리 가요를 이렇게도 부를 수도 있구나.......
음악광인 친구에게 시디를 부탁했더니 득달같이 사가지고 왔다.
이 친구도 장사익이에게 매료 되었으니까 둘이는 착착 죽이 맞았다.
그 날 이후, 나는 또 다른 감동에 전율을 느껴야 했다.
끊어질듯 이어지고 또 끊어지고, 명주실같이 가느다란 음률이 청각을 곤두세우게 하는가 하면 천둥이 부르짖는 듯한 우렁찬 소리에 놀라서 볼륨을 죽이는 헤프닝까지 벌려야 했다.
그의 노래는 영혼을 움켜쥐고 뒤 흔드는 힘이 있었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수백볼트의 전기에 감전되는 듯한 짜릿함을 온몸에 퍼부어 떨게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삶의 시작을 알리는 듯함 강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가 하면 어느새 인간만사를 다 無와 空으로 덮어버리는 듯한 종교적인 색채를 띄우기도 했다.
상여소리를 -하늘가는 길- 낼 때는 난 기어이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한과 원을 씻어 내리는 씻김굿 같기도 하고 실핏줄 까지도 막혀 있을 듯한 답답함은 그가 토해내는 후렴소리에 증발되는 것 같았다.
만든 노래가 아니고 빚어낸 소리라는 절찬을 받고 있는 사람,
그래서 이 시대에 잃어버린 감성에 장작불 지피고 있는 사람,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이라고 불리워지는 사람,
그가 장사익이 아닐까...
타악기와 피아노 그리고 기타 반주 이 세 가지의 악기와 판소리를 연상케 하는 풍부한 음량과 쉰 듯한 음성이 어쩌면 이렇게 조화를 부릴 수 있는지 노래를 듣고 있는 내 가슴은 파들거리는 진동으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神의 경지였고, 혼을 부르는 천상의 목소리였다.
오장육부를 몽땅 쏟아내는 듯한 시원스러움, 그리고 설음과 한을 울컥울컥 토해내는 막힘없는 당당함에 난 거의 넋을 잃었다.
우리가요를 듣고 이렇게 까무라 칠 수도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만일 내가 사람에게 이렇게 빠져 있다면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미련을 떨었을 것이다
깊이를 잴 수 없는 바닥으로 허물 거리며 가라앉는 무력함이 온몸의 힘을 빼 버렸다.
오늘 같이 알 수없는 무게가 어깨를 찍어 누르는 날 이 사람의 노래가 없었다면 어떻게 견디었을까를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300여개의 테잎과 시디에 있는 수 백곡의 노래가 보턴 만 누르면 쏟아져 나오겠지만 내 맘속에 깊이 박힐 그리 노래는 많지 않다.
다 사랑하고 좋아해서 사 모은 것이지만 어느 것은 한 번 듣고 그대로 꽂혀 있는 게 많다.
내 생활에 음악이 없었다면 무미건조함으로 인한 삭막한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힘들고 어지러운 날이라도 음악을 생각하면 가벼운 흥분으로 이내 사그러 든다.
귀가 즐거우면 온 정신도 맑아지는 청량제를 난 입으로 마시는 게 아니고 귀로 마신다.
그래서 입으로 토해내고 또 두 귀로 마시고, 무겁고 어수선한 맘이 어느 정도 묽게 희석 되었을 무렵
난,
아직도 꿈꾸고 있는 듯한 착각에 휘청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