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이라는 뜻은 일정한 직업이나 노릇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혀 쓰는 접미사다. 사전적인 의미는 제법 그럴듯하고 양반스러운 듯 하나 결코 듣기 좋은 뜻으로는 쓰여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도둑질, 화냥질, 서방질, 망나니질.........등등 도리나 원칙에 어긋난 짓을 하는 사람에게는 응당 쓰여져야 하지만 얼토당토 안 하게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말이 있으니 바로 '선생질'이라는 말이다. 이 '선생질'이라는 말이 잘못 쓰여지고 있다는 건 고등학교 가서야 알았다. - 그 이전에는 오라버니가 교사로 있어도 이 말을 해롭게 듣지 않고 예사로 듣고 넘겼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납기 일을 넘기고도 공납금을 내지 못하는 친구를 담임선생님이 언제까지 낼거냐고 물었다. 그 친구의 말인즉 오빠가 월급을 타야 낼 수 있다고 대답했는데 오빠의 직업이 뭐냐고 선생님이 묻자 그 친구는 곧바로 대답한다는 말이 '선생질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노발대발 하셨다. "이 자슥이 선생을 앞에 세워놓고 선생질이라니?......." 물론 그 친구는 그 말이 잘못 되었다는 걸 모르고 사람들이 쉽게 떠벌리는 소리를 여과 없이 뱉아 낸 죄밖에 없었지만 그 날 공납금 못 낸 죄보다 더 무거운 죄를 범하고 말았다.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짊어진 사람을 비하시키고 폄하시킨 이 말이 아직도 정화되지 않고 쉽게 입에 담겨지고 아무렇지 않게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물론 나쁜 뜻으로 혹은 비하시킬 의도를 가지고 표현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듣는 입장으로서는 여간 거북하고 불쾌하지 않다. 이와 비슷하게 쓰여진 말이 있으니 바로 '접장 질'이라는 말이다. 이 접장(接長)이라는 말은 거접(居接)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에 글방 학생이나 과거에 응시하는 유생(儒生)들이 모여 이룬 동아리의 우두머리를 일컫는다.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교육자를 정상적인 궤도를 가지 않는 사람으로 전락시킨 것 같아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교권이 무너지고 스승의 그림자도 마구잡이로 밟히는 세상에 살다보니 이 '선생질'이라는 소리를 새삼스럽게 되뇌이게 된다. 교사의 인격이 침해당하는 현실과 맞물려서 신성한 직업에 '~~질'이라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붙어 다니는 것 같아서 입맛이 쓰다.
조선후기에 김삿갓이라고 알려진 방랑시인 김병연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폐족(廢族)에 대한 멸시를 견디다 못해서 집을 버리고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풍류를 즐기다가 여생을 마친 사람인데 그가 입으로 글로 지어낸 시는 모두가 유머와 해학 그리고 잘못된 시대상을 꼬집는 날카로운 비수 같은 섬뜩함을 풍기고 있었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서 어느 書堂을 찾아 들었는데 훈장이라는 사람이 무시하며 내다보지도 않고 십 여명도 채 안 되는 학동들을 데리고 수업을 가고 있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김삿갓이 지어낸 시를 보고 그 훈장이 혼비백산을 하였는데......
書堂乃早知 (서당내조지)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이요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이다.
즉, 서당안에는 십여명도 안되는 아이들을 가르친답시고 사람이 와도 아는체를 안 한다는 지극히 교훈적이 시지만 우리말로 발음을 해 보면 지독한 욕설이다. 이 시를 보면 그 훈장에게는 '선생질' 하고 있다는 표현을 해도 과히 지나칠 것 같지 않다.
친정 오라버니와 딸애가 교편을 잡고 있기에 내가 더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토씨 하나만 잘못 구사해도 그 뜻과 뉘앙스가 180도 틀려지는 우리말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아무리 쉽게 뱉을 수 있는 말이지만 한번쯤 생각한 뒤에 표현해 주었으면 하는 욕심을 내어 보았다. 어떤 이가 물어왔다. "딸래미는 졸업 했능교?" 그래서 졸업하고 지금 교편잡고 있다고 했더니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빼놓아도 될 한마디를 기어이 덧 붙였다. " 아........ 선생질하고 있구만?" 참으로 듣기 거북하고 곤혹스러운 말이어서 곧바로 바로 잡아 주었더니 '그 말이나 그 말이나'라는 말로 뭉개 버렸다. 귀를 씻고 싶을 만큼 귓속이 근질거리고 찝찝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이 쓰고 있는 말에 별 의미를 둘 필요가 없는 것들이 많다. 시시콜콜 짚고 넘어 갈려고 하면 세상이 너무 시끄러울 것 같기도 하지만 무시하고 넘기기엔 목에 걸린 가시같이 걸리적거리는 것도 수없이 많다. 어떻게 보면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세상을 둥글고 너그럽게 살아가는 방법일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신경 쓴다면 남이 듣기에 불쾌감을 드러낸다거나 거부반응을 일으킬 만한 소리는 안 할 수도 있는데 이건 모두 내 일이 아니라는 안일함이 때로는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 '선생질'이라는 소리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들 입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이리라. 좀 우스운 얘기지만 내 오라버니가 처음 교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우리 부모님 너무 기쁜 나머지 남들에게 우리아들이 선생질 한다고 하셨다. 물론 그 말이 잘못 되었거나 나쁜 뜻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으셨으니.......... 이제는 이 사회의 중추역활 하고 있는 세대와 그 아랫세대는 모두가 교육수준이 높고 정황판단 확실하게 하는 지성인들로 구성이 되어간다. 세대교체를 한 만큼 정화되고 책임감 있는 말로 둥글고 너그럽게 살아갔으면 싶은 맘이 든다.
요즘 아이들은 '선생질'이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우리세대 혹은 그 윗세대가 대물림해 준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정말 버려야 할 말이고 쓰여져서는 안될 소리다. 우리의 古語들은 다 아름답고 순수해서 다시 돌이켜 봐도 음미할수록 짜릿하고 색다른 감동을 주지만, 이렇게 통용되면 안될 불순한 언어가 거리낌없이 입으로 입으로 옮겨가는 이 시대의 卑語들이 하루빨리 잊혀질 고어로 남았으면 하는 맘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