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를 붙잡고 늘어진 친구의 하소연이 길어질수록 내 혈압의 수위도 덩달아 위로 뻗혔다. " 글쎄, 말이나 되는 소리냐구...지는 맏이면서.....' 친구는 '맏이'라는 단어에 힘을 줘 가면서 둘째 며느리의 입지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숨을 죽여가며 가만히 듣고 있는 맘이 편치 않음은 나도 맏며느리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시어머니 상을 당한 친구는 형제간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는데 그 중심엔 혼자 남은 시아버지를 누가 모시느냐가 문제가 되었던것 같았다. 옛말에도 홀 시아버지 모시느니 벽을 기어 올라가는 게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혼자되신 바깥어른 모시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닌 건 상식적으로도 알만하다. 의복수발 끼니수발만이 바깥어른 모시는 일 전부가 아니기에 드러나지 않게 며느리가 정신적으로 겪는 스트레스는 외형적으로 표시가 안 난다. 안 어른과 달리 옷차림이나 행동거지 또는 토씨 하나에도 촉각을 세워야 하는 게 바깥어른 앞에서의 아랫사람이 취할 도리이다. 그렇다고 안 어른 앞에서의 행동을 풀어져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바깥어른은 왠지 더 불편하고 어려운 건 사실이다. 난 이미 두 어른을 다 여윈 상태이기 때문에 친구의 하소연을 그냥 들어주고 슬그머니 편 들어주는 일밖에는 할 수 없었지만 기본이 되어있는 친구이기에 대놓고 나무랄 수는 없었다.
맏동서가 제사와 어른 모시는걸 피하기 위해서 이민을 가려다가 실패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改宗'을 해서 지금은 모든 제사를 제례의식을 무시한 종교적인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고 한다. 대대로 뿌리깊은 유교사상을 가지고 있던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고 마누라 이기는 남편이 없는지라 父子는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들고 말았단다. 속이 상한 이 친구의 남편이 자기가 제사를 지내겠다고 했을 때 펄펄 뛰면서 이 친구가 뱉은 말이 ' 내가 맏이가?'라는 말이었다. 맏이가 유고 시에는 얼마든지 하겠지만, 맏이도 일부러 회피하는 제사를 왜 둘째가 모시느냐가 친구의 불만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혼자 남은 시아버지를 삼 형제가 돌아가면서 6개월씩 모시기로 했다고 했을 때도 이 친구는 강하게 반대를 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는 나도 뜻을 같이 했다. 제사와 부모 모시는 일은 '맏이'의 전용이고 의무이자 책임이고 도리라는 등식이 대대로 변하지 않고 이 시대까지 대물림하고 있는데 그 물줄기를 틀려고 했을 때 둘째 며느리가 입에 거품 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자기에게 지워진 짐이 있고 그 짐을 당연한 내 감당으로 받아들인다면 볼썽사나운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거부하고 부정하고 나서니까 문제가 발생 하는거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가 한마디 뱉았다. "부모가 탁구공이가? 왜 이집 저집 서로 떠넘기듯이 돌아가면서 모신다는 표현을 하냐구." 어느새 울분이 내 목 줄기를 넘나드는 건 아직도 생존해 계시는 부모님이 목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복 많은 우리 부모님은 아직까지 이런 소리 귓등으로도 안 듣고 사신 게 참으로 다행스럽다. " 난 말이야.. 잠시 와 계시는 건 얼마든지 모시지만 돌아가면서 모신다는 말에 화가 난 거야. 그렇게 되면 어른이 얼마나 천해지고 가엾으시냐고...." 친구의 말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뿌리를 박을 곳 없이 浮草처럼 떠돌아야 하고 밖으로 내 돌려야 하는 부모님의 그 아픈 심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렇게 돌아가면서 모신다는 벼락맞을 소리는 못 할 것이다. 한군데 뿌리는 두고 근력 있을 때 자식들 집에 두루두루 다니시는 건 얼마나 좋은가. 우리나이 아니 훨씬 더 이전의 나이 적에도 친구들과 가정사를 얘기했을 때 이런 얘기로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맏이는 맏이대로 둘째는 둘째(이하)대로 나름대로의 자기 앞에 드리워진 '짐'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둘째의 항변도 만만치 않았다. '죽어라고 일해도 칭찬은 맏이가 듣고.........물려받은 재산도 거의가 맏이 차지인데......' 그러니 그 물려받은 재산, 칭찬 받은 값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다. 맏이의 반박은 가히 변호사를 능가했다. ' 웃기지 마라, 먼저 태어난 죄 값이 얼마나 혹독한지 지차들이 알어? 지차들이 잘못 한 거 맏이가 몽땅 뒤집어 써야 하는 거.....맏이는 동생들한테 돈 빌리면 갚아줘야 마땅하고, 동생들이 빌리면 안 갚아도 암 소리 못하는 게 형의 입장이야. 또 있다.. 맏이는 큰일을 온통 다 들고 해도 표가 안 나지만 눈먼 동태 새끼 한 마리 사들고 와도 두고두고 생색나는 게 지차들의 생리라구. 그뿐인 줄 알어? 맏이는 잘못하면 '맏이노릇' 못한다고 따블로 욕먹지만 지차들 잘못하면 '아직 어려서 뭘 아냐?'로 덮어주는데........' 그러면서 끝으로 뱉은 말이 압권이었다. ' 차라리 안 받고 안해.. 재산 다 주고 받을사람 있으면 맏이자리 프리미엄 주고도 넘기겠다.' 끝없는 설전의 승패는 가려질 수가 없었지만 나름대로의 쌓인 불만은 산을 이루었다. 겉으로는 착한 며느리 대단한 형님, 다소곳한 아랫 동서들 같지만 막상 봇물처럼 불거져 나온 불평불만은 이 시대를 대변하는 우리 며느리들의 현주소였다.
부모가 온 효자노릇 해야 자식도 반 효자노릇 한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의 할 노릇이 우선이 되어서 정화를 시켜 아래로 내려보내야 그 자식도 맑은 물먹게 되어 있는 건 자연의 순리다. 불교의 경전에 이런 게 있다. '효도하는 어버이에게서는 간혹 불효하는 자식이 있을 수 있으나, 불효하는 어버이에게서는 효도하는 자식이 있을 수 없다' 즉, 아래로 흘려보내는 맑은 물이 중간에 간혹 불순물이 끼어 들 수는 있으나 애초에 흐려있는 물이 중간에 맑아질 수는 없다는 '孝' 편에 나오는 얘기다. 힘없고 나이든 부모가 왜 귀찮고 천해져야 될까. 수 년 전에 시어머님을 여의고 난 뒤에 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 있는 건 살아생전에 느끼지 못했던 어른에 대한 외로움이었다. 어버이날이나 제삿날이 오면 가슴은 항상 작은 파열음으로 떨려왔다. 혹독한 시집살이조차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순응심이 없었다면 그리워하는 맘 대신에 홀가분하고 벗어난 데 대한 다행스러움으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수도 있을 것이지만 왠지 자꾸만 맘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 건 나도 그리 좋은 며느리가 아니었을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후회스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안 계셔서 내 위로 몽땅 잘려나간 밋밋한 가족구성이 때로는 많이 허전했다. 수직이 아닌 수평선상의 가족 단위가 커 가는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가정교육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아이는 그래도 예전에도 그랬듯이 어른 슬하에서 반듯하게 키우고 싶은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