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자금(비: 資金)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기업의 공식적인 재무 감사에서도 드러나지 않고 세금 추적도 불가능하도록 특별 관리하는 부정한 자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흔히들 이 비자금을 '딴 주머니'라고도 한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사의 딴 주머니는 '비자금'이라고 명명 하지만, 나 같은 서민은 '꼬불쳐 둔 돈'이라고 부른다.
이 '비자금'은 은밀하고도 비밀스럽게 감추어 둔 돈 인만큼 액수나 출처 또는 용도도 불투명 할 뿐만 아니라 설사 발각이 된다고 해도 투명하게 벗겨지지 않는 음지의 돈이다.
그래서 항상 말썽이 끊길 날 없고 온 메스컴을 도배질 해도 기껏 드러나는 게 수박 겉 핥기식의 형식적인 모양새만 갖추기에 ' 비자금'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밝거나 유쾌하지는 않다. 정경유착의 고리가 질긴 이유가 이 '비자금'이 설탕시럽같이 달라붙어서 뗄래야 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악어와 악어새가 공생하는 이유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꼬불쳐 둔 돈'은 은밀하게 감추어 둔 돈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출처라든지 용도는 시간이 지나면 투명하게 벗겨질 수밖에 없는, '비자금'과는 비교 될 수가 없는 양지의 돈이다.
비자금의 출입구가 미로라고 한다면 우리 같은 주부들의 이 '꼬불쳐 둔 돈'의 출입구는 너무 얕고 빤해서 그 통로를 찾는데는 손바닥 뒤집기 보다 더 쉽다..
남편에게 받는 생활비를 일부 잘라서 적금 들고 이자 부풀려서 또 새끼치고, 기회가 닿아서 부업이라도 하게 되면 그대로 '딴 주머니'로 옮겨가면서 손때가 묻어 있지만, 여러 번 돈 세탁해도 부정(不正)에 절여진 땟 국물 지워지지 않는 '비자금'과는 달리 돈 세탁 할 필요 없는 깨끗한 돈이다.
내가 이 딴 주머니를 처음 접한 건 친정엄마로부터 간접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이다.
장사를 하시던 아버님은 수입과 지출이 아귀 맞게 들어맞지도 않았고 또 셈을 해 봐도 머리 속만 시끄러운걸 악용(?)한 친정 엄마의 고단위 수법은 기가 막혔다.
데리고 있던 일하는 아이가 수금해 오는 돈의 일부를 뚝 잘라서 치마를 젖히고 고쟁이에 집어넣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그 당시 엄마의 행동을 보니 아버지가 몹시 불쌍하게 보였으나 입에다가 가로로 손가락 세우고 입 단속시킨 엄마의 엄포에 그냥 나도 모르게 공범자가 되었으나 엄마는 입다문 댓가를 엄포로 대신 할 뿐 공범자의 대우는 눈꼽 만큼도 해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잘못을 저질러도 나에겐 더 너그러우셨고 다른 형제들보다는 돈 얻어 내는 게 더 쉬웠다.
맏딸인 나는 엄마에게 이용가치가 컸기에 상부상조했던 게 아닌가 싶다.
엄마는 그 돈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고액(0.03%)의 사채놀이를 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은행 문턱이 높아서 대출 받는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 보다 더 어려웠기에 아버님은 높은 이자임을 아시면서도 이 사채를 쓰셔야 했다.
이자가 높아서 단 시일 내에 갚긴 하셨어도 언제나 궁지에 몰려 계시는 게 어린 내 눈에도 쉽게 포착이 되었다.
엄마가 야금야금 빼내는 돈이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 구멍은 점점 더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자 아버님은 웬만한 일에는 돈을 더 아끼셨고, 우리에게 검소함의 필요성을 수시로 강조하신 덕에 우리는 주머니에 돈이 들어 있어도 한번쯤 주저한 뒤에 지출을 하는 센스도 배웠다.
들어가고 나가는 돈이 원활하게 돌지 않았을 때 아버님은 엄마를 채무자로 몰아 내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이웃집에서 빌렸다고 엄살을 떨면서 하루도 에누리 없이 아버지로부터 이자를 꼬박꼬박 챙겼다.
애꿎게도 어설프게 둘러댄 이웃 사람 - 엄마 친구 - 은 아버지로부터 지독한 사람으로 찍히게 되었다.
"친구라는 게 빨갱이보다 더 지독해...상종 못할 사람이야........."
엄마가 그 친구하고 어떻게 입을 맞추었는지 몰라도 그 사람과 아버지가 매일 마주쳐도 엄마의 비리는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걱정 한 건 엄마가 혹시라도 그 돈 가지고 도망 갈까봐 겁을 내고 있었다.
나의 약점을 꿰뚫은 엄마의 야비한(?) 협박에 난 입도 뻥긋 할 수가 없었다.
"니 아부지에게 이르면 난 니 동생들 데리고 도망 갈 거다 "
어린 마음에 엄마가 죽는다든지 도망가는 게 치명적이었는데 엄마는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내가 불고지죄를 범하게 만들었다.
난 엄마와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고 그리곤 그 일을 차츰 잊고 있었다.
우리가 성장해서 돈 들어갈 곳이 점점 늘어나자 아버지는 몹시 힘들어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지 번번이 뭉터기 돈을 내 놓으시는걸 보고 난 무릎을 쳤다.
아하..........
그래서 엄마가 그런 일을 저지르셨구나............
엄마는 그 돈 가지고 엄마를 위해서는 한푼도 쓰지 않고 우리가 손 내밀 때마다 쥐어 주시곤 했다.
아버지보다는 엄마로부터 돈 타내는 게 훨씬 부드럽고 쉬워서 툭하면 엄마를 졸랐던 기억이 났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남편에게 생활비를 탈 때마다 조금씩 챙겼지만 엄마처럼 사채놀이는 하지 못했다. - 남편이 은행에 있기 때문에 다른 집과는 달리 돈 관리를 남편이 했다.
불안한 이웃을 주느니 이자가 적더라도 은행이 미더웠지만, 남편이 금융기관에 있으니 혹시라도 발각이 될까봐 다른 은행을 이용하는 영악함도 보였다.
가계부를 쓸 때 매일 10%씩 지출을 불려서 기재를 해서 그 10%를 모았다가 적금을 넣기도 했고 남편 눈을 피해서 - 남편이 싫어했다 - 이웃들과 어울려서 수출품 뜨게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적금 탄 돈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장판 밑에 넣어두고 깜박 잊고 있었는데 장판을 새로 까는 도중에 발각이 되었지만 그때 내가 뭐라고 얼버무렸는지 몰라도 별 의심 없이 넘어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난 참으로 잔머리 굴리는 재주는 엄마를 닮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의 씀씀이가 생활비를 초과하자 남편의 버릇을 고치고자 이 '꼬불쳐 둔 돈'을 몽땅 내 놓으면서 그동안의 고초를 눈물 찍어내며 실토를 했을 때 남편의 충격은 굉장했었다.
그 이후로 남편의 씀씀이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보너스라고는 구경한번 시켜주지 않던 남편은 봉투 째 고스란히 내 손에 쥐어주는 대단함도 보여 주었다.
난 한꺼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재주 좋은 사냥꾼이었다.
그 뒤로도 난 약간의 딴 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지만 은근히 '꼬불쳐 둔 돈'에 대해서 환상이라도 가지게 될까봐 속주머니 뒤집어 보이면서 무일푼을 선언했다.
그동안에 두어 번 발각되었어도 '곗돈'이라고 둘러댔는데 속아 주는 건지 정말 속고 있는 건지 몰라도 더 이상 나에게 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결코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남편은 알고 있으려나.
정말 보잘것없이 적은 액수이지만 나름대로는 사연 많은 돈이었다.
남편은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술값, 담배값 그리고 가끔씩 친구들과 손장난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겁없이 쓰는걸 알기에 일찌감치 내 주머니로 옮겨 놓을려면 얕은 수작이라도 부려야 했다.
내 씀씀이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는 성격이 아닌 남편은 내가 돈 달라고 하면 두말없이 빼 주는가 하면 나에게 얼마가 건네 갔는지를 전혀 맘에 두지 않을 정도로 무심했다.
예전에는 생활비 타 낼려고 하면 괜히 미안해서 절반만 잘라서 타 낼 때가 많았는데 이게 두고두고 화근거리를 만들만큼 어리석었다는 걸 안 뒤로는 두 배의 생활비를 울궈 내었다.
남편의 주머니는 밑이 뚫려 있었지만 내 주머니는 이중으로 꿰매서 한푼도 새어 나가지 않았음을 너무 늦게 인식했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 가장 후회하는 과거사다.
그러기에 이 돈만큼은 정말 기억에 남는 지출을 하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 했다.
내 아이들이 더 크고 더 많은 지출이 늘어나면 나도 엄마처럼 도깨비 방망이 휘둘러야 될 것 같다.
여자들의 딴 주머니는 지출이 뻔하다.
살다보면 남편이 모르게 쓰일 곳은 생기게 마련이다.
첫손에 꼽는 건 친정 일이고 두 번째는 아이들에게 세 번째는 나에게 소용이 된다.
남편에게 미주알 고주알 알리지 못해서 속앓이 할 때를 대비해서 이 딴 주머니는 꼭 필요한 것 같다.
유명인사들의 '비자금'은 개같이 모아서 개같이 쓰지만 이 '꼬불쳐 둔 돈'은 정승같이 모아서 정승같이 쓰여진다
어느 싯점에 이르면 나도 엄마처럼 정승같이 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