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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예 그키 모르노?


BY 蓮堂 2005-04-29

우예 그키 모르노?

얼핏 들으면 일본말로 착각할 만큼 투박스럽고 낯선 소리지만 내가 사는 경상도 사람이라면 대번에 알아들을 소리다.

'우예 그키 모르노? - '어쩌면 그렇게도 모르냐?' 라는 소리를 가장 뼈저리게 들은 건 결혼한 지 며칠만에 돌아온 시댁 제사에 탕국에 넣을 무를 자르는 나를 보고 나무라신 시어머님의 버젼이다.

 당시만 해도 서슬 시퍼른 시어른들 밑에서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은 듯이 몸 낮추며 어른들 눈치 살피며 전전긍긍 할 때니까 이 꾸지람은 천둥보다도 더 무섭고 아찔했다.

 시어머님의 '우예 그키 모르노?'라는 말속엔 여러 가지 뼈가 박혀 있었다.

 가정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냐?

 그 나이 되도록 뭘 배웠냐?

 어째 그리도 눈썰미가 없냐?

 맏며느리가 되어 가지고 자격이 그렇게 밖에 안되냐?..............등등

 

 옛 부터 가가예문 이라고 해서 집집마다 제를 지내는 풍습이 다 달랐기 때문에 아무리 친정에서 똑 부러지게 배워 가지고 시집을 와도 어긋나는 건 분명히 있기 마련인데 시어머님은 당신의 집 禮가 정답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무 사이즈 하나에도 눈총을 박았다.

 무를 썰라고 내 손에 칼을 쥐어 주실 때만 해도 난 테스트 당하고 있다는 생각 꿈에도 하지 않았건만 왼손잡이 내 솜씨도 맘에 안 들었지만 불끄고 써 내려간 한석봉의 필체만큼이나 엉망인 무의 크기를 보고 기가 막히신 모양이었다.

 '적당한 크기로 썰라'는 애매 모호한 사이즈 규정지어 놓고는 나보고 답을 맞히라는 거였다.

 그때 문득 소포클레스(Sophocles)의 '오이디푸스 왕(Oedipus Tyrannus)'이 생각났다.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내어서 풀지 못하는 사람을 살해했는데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자 스핑크스는 그대로 자살을 했는데 이 황망한 중에도 그 소설이 왜 생각이 났는지 모르지만 내가 시어머님이 내 주신 어려운 문제를 보란 듯이 풀어서  자살하는(?) 시어머님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불똥이 자칫 친정어머님께 튈지 모른다는 다급한 생각이 들자 시어머님이 본보기로 썰어놓은 무를 들고 방에 가서 가로 세로 높이의 크기를 재어 놓았다.

 그래야만 다음 제사에도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는 모범생의 눈물겨운 수업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제사에 결혼하지 않은 시누이들이 왔는데 은근히 시어머님에게 받은 핀잔이 생각나서 당신 딸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시험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시누이들에게 무를 썰어 보라고 칼을 쥐어 주었는데...........

 시누이들이 썰어 놓은 무는 내가 예전에 보여준 솜씨하고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시어머님께 합격점을 받고 보니 이래서 '팔이 안으로...........어쩌고 저쩌고' 가 생각났다.

 그때 들려주신 시어머님의 기가 막힌 해명이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모르면 시집가서 가면 배우게 된다.'

 나처럼 쥐어 박히는 꼴을 당신 딸이라고 겪지 말라는 법이 있냐고 묻고 싶었다.

 나나 시누이들이나 가방 들고 학교나 들락날락했지 제삿상에 올릴 무 사이즈를 가지고 교육받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시어머님은 당신 며느리는 똑 부러지게 교육받은 며느리를 원했지만 정작 당신 딸들에게는 '시집가서 배우라'는 이상한 논리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제사 준비하는 도중에 무를 쓸면서 케케묵은 옛날 생각이 났다.

 이제는 무 사이즈 가지고 왈가왈부할 시어머님도 안 계시고 못한다고 타박할 어른들도 안 계신다.

모든 건 내 상식과 내 의지대로 행해지고 있다보니 그래도 아랫사람으로 머물 때가 좋았다는 이중적인 간사함이 되 살아났다.

 연중 행사로 치루어 지고 있는 제사만 해도 네 분이고 명절을 합하면 여섯 번이나 되지만 번번이 실수를 해서 헤프닝을 벌릴 때가 많았다.

 근래에는 남편이 실수로 지방을 잘못 써서 작은 아버님께 꾸지람을 들었고 나는 편을 두 군데로 나누어 놓았다가 당숙모님께 지적을 받고 보니 왜 그런지 고깝지가 않고 고마웠다.

 아직도 나를 나무라고 가르쳐 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난 다행스러웠다.

 그 옛날엔 왜 그렇게 서운하고 눈물나는 일들이 많았는지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별게 아니었는데 넉넉지 못했던 소갈머리가 새삼 부끄러워지는 건 아마도 나이를 먹어 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제사란 참으로 번거롭고 귀찮은 행사다.

 뿌리깊은 유교의 잔해가 아직도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박혀있지만 거부의 소리 안 들려오는 게 이상하다.

 분명 겉치레 운운 할 수도 있고 필요 없는 행사라고 몰아 부칠 수 있는, 어찌 보면 禮라기 보다는 터부시하는 쪽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조상을 잘 섬겨야 복도 받고 하는 일이 잘된다.....라는 .

 뒤집어 생각하면 내가 잘 되고 복 받기 위해서 조상을 섬긴다는 논리로 맥이 통한다면 맞아죽을 소린가는 모르겠다.

 고인에 대한 자손들의 禮라고 생각하면 아름답고 보존해야 하지만 커 가는 요즘 아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 명분이 점점 약해져 가고 있다.

 죽은 사람이 뭘 아느냐......라고 한다면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

 조상에 대한 禮라고 설명했을 때  과연 납득하고 받아들일 자식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군대 있는 아들녀석에게 제사라고 알리라는 남편의 말에 시쿤둥 하게 대답했더니 군대 있어도 알건 알아야 된다는 남편의 논리에  적당한 반기들 구실이 생각 안 나서 곧바로 전화를 했다.

 '오늘이 증조부 제사다'라는 말에 아들녀석이 깜짝 놀라서 오히려 내가 더 놀랬다.

 '죄송해요..번번이 참예도 못하고......'

 무덤덤하게 대꾸할 줄 알았던 아들녀석의 의외의 반응에 콧등이 시려 올만큼 고맙고 기특했다.

 아들녀석에게 제사를 물려 줄 수 있을까 하는 평소의 우려가 기우임을 그 순간만큼은 감지를 했다.

 

 나 같은 며느리가 들어와서 탕국에 넣을 무의 사이즈를 가지고 언잖은 소리하지 않더라도,

 옆에서 지켜보며 배울려고 하는 자세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족할 것 같다.

 모른다고 타박만 할게 아니라 내 집 풍습, 내 집 문화에 대해서 문외한일수 밖에 없는 남의 집사람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한가지다.

'우예 그키 모르노?'라는 옛말에 든 가시를 쏙 빼버리고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속담이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우예 그키 배울려는 게 많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