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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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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지는 일상


BY 蓮堂 2005-04-16

 화분갈이 할려니까 흙이 부족했다.

 쌕을 메고 모종삽과 비닐 봉투를 챙겨서 아파트 뒤에 엎드려 있는 야산엘 올랐다.

 산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매일 오르내리면서 진달래의 개화 과정을 눈독들이며 보아 왔지만 막상 흐드러지게 뿌려져 있는 색의 향연엔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환희와 감격 그 자체에 몸이 떨려 왔다.

 자연이 이토록 한치의 어긋남 없이 우리 옆으로 돌아온 게 너무 고맙고 가슴이 벅찼다.

 길옆까지 가지를 뻗은 진달래의 꽃잎을 따서 입에 넣고 씹었다.

 씁쓰레한 혀의 감촉이 예전의 잊고 있던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냈다.

 60년대의 그 어려웠던 시대에 우리는 간식이라는 말 자체도 모르고 살았다.

 하루세끼 밥만 먹어도 배부르고 더 이상의 욕심도 낼 수 없을 만큼 먹거리는 귀했고 또 있다고 해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부모님의 주머니는 간식 챙길 여유도 없이  항상 비어 있었다.

 봄이 되면 아이들은 산으로 몰려갔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진달래의 꽃을 따먹기 위해서 혓바닥에 검은 색이 박힐 때까지 먹고 또 먹었다. 어찌 이 꽃으로 배를 채울 수가 있겠냐 만은 아이들은 그래도 배가 불렀나 보다.

 그때 떠돌았던 유언비어가 아이들을 늦은 시간까지 산에 머물지 못하게 했었다.

 '꽃문디가 아이들을 잡아가서 간을 빼먹고 병을 고친다'고 해서 아이들은 유난히도 꽃이 많은 곳으로는 가지 않았었고 해가 지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듯 산을 내려 왔다.

 꽃이 몰려 있는 곳에는 '꽃문디'가 숨어 있다고 믿었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갑자기 눈앞에서 흑백영상으로 천천히 풀려 나왔다.

 아직도 잎들이 제자리를 못 찾고 미처 올라오지 못한 삭막한 산 속에 이 붉은 진달래의 출현은 감동 그 자체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대자연의 섭리 앞에 우리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자연은 인간을 이길 수 있어도 인간은 자연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자연 앞에서 오만을 부리고 겸손할 줄 모른다.

 

 쌕을 내려놓고 낙엽 더미를 헤치니까 여러 해를 썩어온 부엽토가 시커멓게 엉겨붙어있다.

 예전에는 연료로 쓰여지기 위해서 갈비나 낙엽이 이렇게 지천으로 깔려 있을 수도 없지만 이젠 나무에서 떨어지는 족족 그대로 썩어서 훌륭한 퇴비의 역할을 했다.

 침엽수보다는 활엽수 밑에 가야 수입이 짭짤했다.

 쌕을 가득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이 산 속에서는 어울리지 않게 1t 화물차가 주차되어 있는 게 시선을 끌었다.

 이상하게 생각이 되어서 유심히 살펴보니까 집을 헐었을 때 나옴직한 폐기물 - 보일러 호스, 스치로폴, 플라스틱 종류 등등 - 을 으슥한 곳에다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냥 지나쳐 가기엔 뭔가 께름직해서 차번호를 머릿속에 넣어놓고 발길을 돌리려니까 차에서 부지런히 폐기물을 끌어내리던 남자가 나를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뭔가 찔리는 것이 있는지 끌어내리려던 폐기물을 다시 싣고 부랴부랴 그 자리를 벗어나는 걸 보니 그래도 한 가닥 양심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또 어딘가에 다가 틀림없이 쏟아놓을 그 폐기물이 이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했을  때 돌아올 재앙을 그들은 무시하고 있는 거다.

 자연을 즐기고 자연을 이용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예전 같으면 '아저씨, 여기서 뭐 하세요?' 하면서 불법폐기물의 무단 투척에 대해서 한마디쯤 던졌을 거지만 이젠 시비 거리 만들고 싶지 않은 비겁함 내지는 몸 사리기가 은연중에도 몸을 둥글게 말았다. 더우기 그 남자의 인상이 결코 부드럽거나 녹녹하게 보이지 않아서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자칫 禍라도 당한다면 ............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오지랖 넓은 본색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 남자가 미처 거둬가지 못했던 플라스틱 조각들을 손에 들고 산을 내려 왔다.

 

연산홍과 관음죽을 거꾸로 쏟고 보니 뿌리들이 서로 엉켜서 겨우 숨만 쉬고 있는 게 너무 안스럽고 미안했다.

사람을 진공 속에다가 가두어 둔 것 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죄책감도 들었다.

이 두 나무는 친구 집에 가서 갓 올라온 싹을 가져와서 지금까지 15년을  키워온 내 분신 같은 나무이다. 말하자면 핏덩이를 데려다가 애지중지 키워왔다.

마사토와 부엽토 그리고 일반 흙을 1:1:1의 비율로 섞어서 조금 더 큰 사기 분에다가 옮겨 주었다.

숨쉬기가 한결 편하고 넉넉한 공간에서 마음껏 뿌리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맘이 덩달아 홀가분했다.

알아듣는지 어쩌는지는 몰라도 미안하다는 소리 숱하게 했다.

대충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주변 도로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확성기 소리가 귀를 세우게 했다.

" 자~~자~~ 안동 간 고등어가 세손에 5천 원~~~못 사면 후회합니다 요~~"

 그 비싼 간 고등어가 세손에 5천 원이면 거의 공짜다.

 아무리 싸도 한 손에 거의 만원 가까이 하는데.....

 슬리퍼 끌고 가보니 이건 내가 생각했던 그 브랜드가 아니고 포장도 안 한 채 그냥 좌판에 늘여놓고 파는 일반 고등어하고 똑 같았다.

 "아저씨...이게 안동 간 고등어라는 증거가 어디 있어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못 믿으면 사지 마라고 배짱을 부린다.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사칭행위를 하면서도 하등의 양심의 가책이나 덜미 잡힐까봐  불안해하는 모양새는 엿보이지 않는다..

 길게 얘기 하다보면 이런 일 그냥 지나치지 않는 내 오지랖이 본색을 드러 낼까봐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그냥 왔다.

 어느 샌가 조금씩 물러지는 일상을 접하게 된다.

 각을 세워야 할 곳을 둥글게 마모 시켜 버리는 게 다반사였다.

 좋은 게 좋다는 건 어찌 보면 부드럽고 유연성을 드러낸 친화적인 몸짓이긴 하지만 만사가 다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도 될 만큼 우리사회가 正立이 되어 있지 않음도 인정해야 하는데 목청 높히고 따지고 싶지 않은 기피 현상에 물들어 가고 있다.

 나만은 적을 만들거나 고립되고 싶지 않은,  에고이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그 고등어 장수가 확성기를 거두어 갈 때까지 마음에 걸리었다.

 

' 그래....먹고 죽는 음식도 아닌 바에야.... 머.... 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