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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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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의 외출


BY 蓮堂 2005-03-30

 
모처럼의 나들이에 방심이 불러 온 결과는 기차표 좌석권이 없다는 거였다. 중앙 고속도로가 개통되어서 승객들이 고속버스로 발길을 돌린 탓에 운수업자들이 호황을 누리는 반면에 철도청은 적자에 허덕인다는 보도를 접한 게 어제오늘이 아니라서 마음놓고 기차 시간 임박해서 표를 구하려고 하니 입석뿐이라고 한다.
주말이고 또 기차에 익숙한 사람들로 인해서 좌석권은 이미 바닥이 났나보다. 대구까지 세시간 거리를 서서 간다는 건 차라리 걸어가라는 소리보다 더 혹독했다. 기차를 이용하는 중간에서 친구와의 만남을 약속하지 않았다면 버스로 가도 될 만큼 시간적인 여유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타 보는 기차 여행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입석표를 들고 기차에 오르니 빈자리가 수두룩했다.
아하, 출발지인 여기서는 빈차지만 갈수록 승객이 늘어난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렇다면 서서 갈 시간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미치자 뛸 듯이 반가웠다.
비교적 출입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내리기가 쉬울 것 같기도 했지만 주인이 오면 재빨리 자리 비워주고 다른 칸으로 사라지면 무안함도 덜 수 있어서 좋다. 좌석 주인에게 자리 내어주는 그 순간이 얼마나 무안하고 미안한지 여러 번 겪어서 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는 시대에 밀려서 - 자가용의 증가와 고속도로 개통 그리고 줄어든 시골 인구 - 승객들을 잃어버린 채 버려진 시골 역사(驛舍)가 한 눈에 들어왔고 썰렁한 마음 한구석엔 아려 오는 진한 아픔이 있었다.
굳게 닫혀진 개찰구엔 어설프게 날라 든 낙엽조각들로 한층 더 헛헛함을 드러냈다. 벌겋게 녹이 슨 철로(鐵路), 다가 올 다음 역을 안내하는 안내판은 글씨가 뭉개진 채 그 역할을 잃어 버렸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창틀, 깨어진 창문과 반쯤 헐어진 담벼락, 그리고 잡초 무성한 역사 주변은 발길이 끊겼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지나쳐 가는 철마의 거친 숨소리가 야속스럽기조차 했다. 잠시라도 쉬면서 숨이라도 돌려준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 난 흔적이나마 느낄 수 있을 텐데 무심히 지나쳐 달리는 레일은 메마른 가랑잎 소리를 냈다.

시골 역은 흔하지 않았던 대중교통의 유일한 출입구였다. 5일장이 서는 날은 역사가 미여터지도록 승객들로 들끓었고 기차 안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통로나 입구에서 서성이기 일쑤였다.
오고가는 대화의 투박함에서 인심이 묻어났고, 이고 진 무거운 짐조차도 당연한 삶의 수단으로 여길 만큼 순박하고 훈훈했었다.

몇 정거장을 지나도록 인적도 없었고 철마도 멈추지 않았다.


아직 새순이 돋기엔 이른 탓인지 온 산이 온통 갈색이었다. 길게 드리운 산 그림자가 시커멓게 조그마한 마을을 덮었지만 산아래 웅크리고 있는 아담한 시골마을은 정겹기만 하다.
하얀 연기가 자그마한 굴뚝 사이로 비좁게 터져 올랐다. 아직 저녁 짓기는 이른 시간인데도 소여물을 끓이는 건지 난방을 위해서 장작이라도 지피는 건지 불현듯 코끝에 커피냄새가 스물 거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커피 생각이 났지만 이 차안에서 커피는 팔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동 매점이 기다려졌다.
간벌(間伐)을 해서 통째로 잘려 나간 나목(裸木)들이 산허리에 어지러이 뒹구는 모습도 버려진 역사의 모습을 보는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수령(樹齡) 수 십 년은 족히 될 것 같은 굵은 통나무가 맥없이 넘어져 있다. 필요에 의해서 잘리어 나가야 했지만, 예전 같으면 난방연료로 쓰기 위해서 남아나는 나무가 없을 정도로 귀했는데 저렇게 잘려진 나무는 아무런 소용도 없이 그냥 세월 흐르는 대로 썩어서 땅속으로 사라질 뿐이리라.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는 열악한 국가재정으로 인해서 아이들을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줄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겨울철이 되면 선생님은 삭풍이 날을 세운 산으로 어린 제자들을 올려 보내야 했다. 나무에 달린 솔방울은 한 겨울을 나기엔 더없이 좋은 난방용으로 쓰여졌다.
따뜻하게 겨울을 나기 위해서 아이들은 언 손 부벼 가며 고사리 손으로 솔방울을 따야 했다. 부실한 의복 사이로 칼끝 같은 바람이 스며들었지만 아이들은 추워도 춥다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춥다고 면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린 맘에도 알아 차렸으니까....
요즘 같았으면 학부형들이 벌떼같이 일어났을 것이다. 비교할 필요조차도 없는 시대의 아픔을 되새긴다는 것도 어불성설일수도 있겠지만 격세지감을 느꼈다.
또다시 가슴속 한 켠이 얼음물 들이킨 속 마냥 자꾸만 시려왔다.

제법 규모가 큰 정거장에서는 승객들이 꾸역꾸역 밀려 올라오니 앉은자리가 가시방석 같았다. 기다리던 친구가 어렵게 구한 듯한 좌석권 한 장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올라탔다. 친구는 좌석권을 들었지만 그 좌석엔 어떤 노인네가 이미 앉아 있어서 차마 자리 내 놓으라는 소리가 안 나오는 모양이다. 비어있는 내 옆 좌석이 남의 자리지만 차지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 그나마도 다행이었다. 그러나, 빈자리가 없더라도 한 살이라도 젊은 게 서서 가는 게 동방예의지국의 국민다운 모습이라는 거창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마주보며 웃었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주인이 오면 아주 미안한 표정만 지어주고 일어서면 임무는 끝난다고 생각한 우리는, 아직은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다음에 정차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수 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 한 토막.

서울 갈 일이 있어서 승차를 하고 보니 아이를 안은 젊은 여인네가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만 해도 고속도로가 뚫리지 않은 탓에 철도청은 호황을 누릴 만큼 승객이 많아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서서 가기 일쑤였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간신히 구입한 좌석권을 들고 내 좌석 옆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안은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모자가 잠든 모습을 보니 차마 깨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행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계속 자리를 내어 줄려니까 구두 신은 발이 불편할 건 뻔한데 판단이 안 섰다.
기차가 출발한 지 한시간이 지나도 여인네는 일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차츰 구두 신은 발이 아파 왔다. 걸을 때는 안 아파도 오랜 시간 제자리에 박고 서 있으면 아프게 되어 있는 게 내 구두의 맹점이었다.
그때 칭얼거리는 아이 소리에 눈을 뜬 여인에게 슬쩍 물었다
"저…, 어디까지 가세요?"
반 눈을 뜨고 힐끔 쳐다보며 '원주'라고 짧게 대꾸하는 여인네는 내 질문의 의도는 아랑 곳 하지 않고 아이에게 우윳병을 물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원주면 서울 절반이고 아직 한시간은 족히 가야 할 거리였다.
‘어쩐다?…….’
태평스럽게 자고 있는 여인네가 참으로 미련하고 눈치가 없는 것 같아서 은근히 부아가 났지만, 끝내 자리 얘기는 하지 못한 채 아픈 발 번갈아 주물러 가며 원주에 도착하기만 기다렸다. 남아있는 한 시간이 왜 그렇게 긴지 연신 시계를 봐도 촛침의 움직임은 느려 터지기만 했다.
원주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여인네는 주인이 올 것 같은 불안감 하나 안 가지고도 잘도 앉아 왔다. 뒤도 안 돌아보고 내린 여인네가 앉았던 자리에 엉덩이를 떨어뜨리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이렇게 좋고 편할 수가 없다.
승무원의 검표가 시작되고 아무 생각 없이 표를 체크하는 걸 옆 좌석의 중년남자가 본 모양이다.
"아니, 좌석권을 가지고 왜 서서 고생하셨습니까?"
난 그냥 웃었다.
‘나 하나 불편해서 두 사람이 편하면 남는 장사 아닙니까?’하는 소리는 속으로 삼켰다.

자리에 얽힌 일화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주로 서울 나들이를 했던 지난 날, 좌석권을 가지고 처음부터 앉아 간 적이 별로 없었다. 한 번은 칠순의 할머니가 입석권을 가지고 내 좌석 옆에 붙어 서서 앓는 소리를 했다. 자리 내어 달라는 무언의 암시로 들려서 아무리 좌석권을 가졌다지만 그대로 외면할 만큼 양심이 바닥을 보이지 않았기에 내 엉덩이는 불에 데인 듯 튕겨 일어서야만 맘이 편했었다.
입석권을 쥐어 준 아랫대(代)에다가 속으로 원망을 퍼부을 수밖엔…….

중고등학교 6년을 기차 통학하면서 몸에 배인 습관은 자리양보였다. 그러기에 이 나이가 되도록 자리에 앉아서 선 사람을 쳐다보려면 괜히 미안하고 맘이 불편했다. 어떨 땐 자리양보하고 보면 나랑 비슷하거나 나보나 더 젊은 사람일 때가 있었다. 한 마디로 내 나이를 의식 못하고 무조건 적인 자리 양보가 낳은 부작용이었다. 양보 받은 사람이 불쾌할 수도 있는데…….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가슴은 오그라들었고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외면을 했다. 다행이 내 옆을 그냥 지나치면 가슴을 쓸어 내리고는 속으로 쿡쿡 웃었다.

도착시간 40여분을 남겨놓고 구미역에 도착하니 인산인해였다.
'에구, 버스로 가든지 아니면 자가용으로 좀 다닐 것이지…. 원'
애꿎게도 보태준 것 없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줄지어 늘어선 승객들을 타박했다. 이젠 확률적으로 봐도 피할 수 없이 자리를 내어 줘야 하는데 그래도 무슨 미련으로 버티고 있는지 내 눈은 다가오는 사람들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 차례 승객들이 내 옆을 지나칠 때까지도 주인은 오지 않았다.
분명 차를 놓쳤거나 표를 반납할 수도 있을 거고 아니면 새파란 젊은 사람이 나이 든 나를 보고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모른 척 버려 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봤다.
그러나, 들썩이던 엉덩이의 무게가 아래로 쏠림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소리가 있었다.
"여기다!! 자기야~~~"
마치 심마니가 '심봤다'는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이 탄성을 지르는 여자 목소리에 가슴이 덜컥거렸다. 키가 늘씬한 젊은 커플이 자리 달라는 몸짓으로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내 자리로 쳐 박듯이 짐을 내려놓는다.
주인이 달라는 데야…….
무안쩍고 미안한 맘으로 일어서면서도 맘은 편치 않았다.
‘아무리 지 자리지만 언성 좀 낮추고 달라면 어디가 덧 나냐?…’
염치 좋게 남의 자리 차고앉아서 제자린 양, 주인 행세한 게 들통나서 창피했다. 나 때문에 좌석권을 가지고도 의리상 서서 가야 하는 친구에게 엄청 미안했다. 친구를 향해 멋쩍은 웃음을 흘려보냈다. 오랜만에 타 보는 기차 여행이었지만, 아릿한 추억 한 뭉터기를 가슴에 품고 내려야 했다. 이래서 기차여행의 묘미가 있나보다.

기차는 마구 덜컹거리며 대구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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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데 부담을 드려서 죄송합니다...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