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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의 단상


BY 蓮堂 2005-03-24

언젠가 본 역사 드라마가 생각났다. 시대적인 배경이 조선시대의 4월달 - 아마 임진왜란을 촬영한 것 같았다 - 인 것 같았는데 그 신(scene)을 촬영 하는날  애꿎게도 눈이 내렸나 보다.  야외촬영의 맹점은 하늘을 어길수 없는 섭리인데 이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보니 눈 내리는 걸 막지 못하고 그대로 방영이 되었었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 졌다. 봄날에 어떻게 눈발이 날릴 수 있냐고.......

방송사 측에선 당연히 사과에 들어갔다. 하늘의 뜻은 어찌할 없었지만 이해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데....그런데....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

우수 경칩 다 지나고 춘분이 비껴 간지가 한참이 되었는데 겨울동안 숨어 버렸던 눈이 미처 토해내지 못했던 겨울 뭉치를 허겁지겁 쏟아내고 있다.

그 드라마가 결코 엉터리가 아니었음을 늦었지만 이 기회에 주지 시켜주고 싶었다.

봄날에도 눈은 내린다고.........

겨우내 갈색 빛으로 숨 죽이며  입속에 가두어 두었던 뜨거운 입김 서서히 쏟아낼려고 웅크리고 있던 산이 주춤거렸다.

차거운 겨울 바람속에서도 용케도 견뎌낸 씨눈들이 실눈뜨고 내다 보다가 기겁을 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라 그렇게 다시 숨어 버릴까봐 걱정이 된다.

계절도 이젠 절기에 대한 감각을 잃어 버렸나 보다. 때가 어디쯤 와 있는지도 모르고 나설자리 안 나설자리 우왕좌왕 그렇게 방향 키를 잃어 버리고 헤맨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기에 자연을 따라서 덩달아서 가얏고 따라 춤추는 평양판수가 되어 있다.

잣대도 부러지고 선입견, 고정관념도 물건너 간지 오래다.

무엇이든 오래도록 머물면 병폐가 생기고 벌레가 우글 거리게 되는건  당연하다.

움직이고 뒤틀리고 뒤집어지는 순환작용을 해야만 썩지 않는다.

 

세탁해서 집어 넣은 겨울옷을 다시 끄집어 내면서 웃었다.

이옷을 다시 입을 때엔 아마 11월 중순경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누구와의 만남을 위해서 줄 세운 모직 바지위에 니트를 걸치고 그리고는 이옷을 덮어 입고는 고고히 음악이 흐르는 어느 찻집에 앉아서 닫혀진 문으로 시선을 던지겠지.

그리고 산뜻한 출입문을 밀고 들어서는 그를 향해서 난 활짝 웃으며 손을 높히 들리라

이옷은 벗어서 옆자리에 가지런히 개켜 두고 그를 내 앞에 앉혀 놓으리라.

그래서 뜨거운 홍차 홀짝이며 오늘같이 눈발 성성한 밖을 보고 있으리라.

담아둔 얘기 밀쳐둔 얘기 그리고 모아둔 얘기에 눈빛 마추며 못다한 얘기 도란 거리리라.

어스럼 저녁 빛깔이 소리없이 창밖에 와 서성일때 우리는 일어 서겠지.

개켜둔 이 옷을 걸쳐 입고 찻집을 나서면  그는 이렇게 얘기 하리라

' 예전의 그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으이...............'

그래....

내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이 색깔을 그는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으리라.

유난히도 단색 -  검정색, 회색, 흰색 - 을 선호하던 내 기호마저도 그는 낱낱이 기억하는 섬세함을 가졌으리라.

머리위를 덮고 있는 하얀눈을 털어주며 가지런한 치아 드러내며 또 웃으리라.

하얀 치아 드러내며 그는 잘 웃었던 것 같다. 이옷을 그때 입어야 하는데 앞당겨서 끄집어 내었다.

그는 이제 이 색깔의 옷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기억은 이 색깔에 대한 기억과 함께 그의 기억속에서 밀려난 지 이미 오래일 것이다.

혼자 써 본 드라마 각본에 만족하지 못하고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조금전보다도 더 부피가 늘어난 눈 때문에 아파트 현관 입구는 엉망이었다.

오래살다 보니 별 희안한 일도 다 보겠다며 눈을 쓸고있는 경비원 아저씨 머리위로 눈뭉치는 쉬지 않고 쏟아졌다.

야산으로 난 길위는 아무도 거쳐가지 않았는지 눈이 내리는 족족 그대로 쌓여서 밟기가 미안했다.

태고적 부터 나 있는 길을 개척자의 발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 딛는 심정으로  내 발자국을 찍어 나갔다.

이 발자국 따라서 누군가가 새길 만들지 말고 내 디딘 위를 밟고 그렇게 내뒤를 따라와 주었으면 하는 맘이 든다.

몸은 둘이되 발자국만은 하나이고 싶어지는 욕심에 헛 웃음이 새어 나온다.

겨우내 담아내지 못했던 설경을 담을려고 산을 찾았다.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는 산엔 하얗게 눈꽃을 피운 소나무와 잣나무가 눈의 무게에 눌려서 휘청 거렸다.

카메라 폰을 눌렀다. 선명하게 박히지는 않지만 제법 흉내를 낼수 있어서 좋다.

참 좋은 세상이다.

전화기를 가지고 사진을 찍다니.......

이 좋은 세상에서 이렇게 숨 쉴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는 나는 분명 운 좋은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