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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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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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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한 여자의 비애


BY 蓮堂 2005-03-02

 

 
난 내가 영리하고 총명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그 이유는  일이 터지고 난뒤에 득달같이 달라붙는 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후회는 할수 없었다. 알고서 행한게 아니고 정말 숙맥같이 모르거나 깨우치지 못한 불찰을 후회의 대열에 끼워 넣을 만큼 뻔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런데도 날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가 둔하다는 쪽으로 몰고 가지 않았다. 실수라고 넉넉하게 봐 준다.아니면 그럴수도 있다는 쪽으로 후하게 대접할 때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그러나 다른 사람과 나의 눈높이의 턱이 엄청나게 벌어져 있다는것 정도는 꿰고 있는 대단함만은 갖고 있다.

 

얼마전 남편이 400g짜리 쌀을 한봉지 얻어왔다. 고속도로 IC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한 광고성 선물이었는데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다가 문득 이 한봉지 값이 얼마나 될까를 계산 하기에 이르렀다.
80kg 한 가마니에 16만원을 셈하면 400g의 값은 어렵잖게 산출해 낼수 있었는데 수십분이 지나도 난 이 계산으로 머리를 앓아야 했다..동그라미를 붙혔다 떼었다를 반복해도 찜찜하기는 마찬가지였다.지켜보던 남편이 어이없어 쳐다 보았지만 남편이 답을 알려주지 않아서 그대로 포기했다.안 그래도 머리 아픈 세상에 티끌같은 문제로 머리속 버글거리 게 하고 싶지 않았다.아직도 난 이 400g의 값을 모르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둔하면 둔한대로 사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앞세우고............

 

딸 아이의 살림 장만 한다고 대형 마트에 갔는데 프랑스 브랜드 '까르푸'가 번번히 '르까프'로 둔갑을 하는 통에 매번 딸에게 타박을 받아야 했다. 한참을 지난 뒤에 딸애가 또 물었다.
"엄마, 오늘 가셨던 마트 이름이 뭐예요?"
난 실수를 하지 않고 정답을 댈려고 딴에는 심사숙고 한 끝에 '르까프'라고 대답했다.
딸애가 동정어린 눈빛과 기막혀 하는 제스쳐를 쓰기에  또 실수했다는 걸 알았다.
둔한 엄마를 둔 딸애의 심정은 아마도 복잡할거다

 

예전에 꾸리던 가게를 넘겨 주면서 각종 세금 계산을 하는 도중이었다. 영악스러운 그 예편네는 백원 단위까지 다 계산 하였지만 난 천원 동가리도 다 떼어내고 계산을 해 주고 나니 슬며시 억울하고  내가 등신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야물딱지게 더 내 놓으라는 소리를 못했다.그러고 나서 나의 어리석고 둔한 계산을 후회 하기 보다는 백원단위까지 악착을 떨었던 그 예편네를 짓 씹기에 이르렀다..
'독일병정 같은 예편네 하곤...........'

 

우여곡절 끝에 사귄 친구가 있었는데 아무런 곡절도 없이 나를 멀리했다. 그 이유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했지만 그로 해서 불거질 파장 - 싫은 소리와 얼굴 붉히는 일 - 을 생각하니 귀찮고 번거로운 생각이 들어서 끓는 가슴 식히며 묻어 버렸다.다른 친구가 더 열을 냈다. 따져야 된다고.등신같이 입 다물고 있는다고 다 양반은 아니래나 머래나...
아직까지 영문도 모른채 외면 당하고 있지만 언제가는 내 맘을 알거라는 미련스러운 생각만큼은 버리지 않고 있다.이 부분도 내가 영악 스럽거나 똑똑치 않아서 뒤로 밀리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살면서 싫은소리 할 일이 가끔씩 있지만 정작 당사자 앞에서는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오금받을 소리를 분명히 해야 하지만 그 말을 할려고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입이 얼어 붙는 경직성 때문에 할말 10%도 못 쏟고 지나고 나면 꼭 후회를 한다.
'이구...이말을 꼭 했어야 했는데........'
미처 쏟아내지 못한 말을 가슴에 품고 있자니 속에선 불덩이가 끓는다.
둔하고 숙맥같은 속알머리가 언제쯤이면 속에 든 말 다 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였을 적에 친구들과 싸움질이 있을때면 지나고 나서 다시 도전 한 적이 있었다.
마음속에서 못다한 속 시원한 말 다시 정돈해서 퍼 부을 요랑으로 대 들었지만 친구는 한수 위로 반격을 했다.아마 그 친구도 나처럼 못다한 말 할려고 벼르고 있었던가 보다.
둔한 사람은 번번이 뒷북치게 마련인 모양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말도 잘할거라는 관념은 나로 인해서 여지없이 깨어져야 했다.
싫은소리 할려면 우선 감정이 앞서기 때문에 나 같은  경우는 속에 담아 둔 얘기 거의 못 한다.
결혼생활 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히는 사람은 아무래도 남편 이지만 남자라는 특성이 여자만큼 말이 재바르거나 아귀맞게 구사하진 못한다.
몇마디 덤벙 거리다가 아내의 공습에 밀리기 십상이지만 난 이 공습 조차도 제대로 써 먹어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남편이 불쌍하게 보인 측은지심의 발동이 나의 敗因이다.
그래서 한발 한발 양보 하다보니 지금은 백보 이상을 뒷거름질 쳐야 하는 , 앞으로 내닫기는 이미 늦어버린 인생 지각생(?)이 된 기분이다.이 부분에서도 과연 내가 영악을 떨며 둔한 티를 내지 말아야 하는가에 촛점을 마추어 보기도 했다.


어느날 만취한 남편이 나를 보고 힐난을 한 적이 있었다.
"무슨 여자가 바가지도 못 긁어?..자네,여자 아니 내 마누라 맞어?........"
칭찬인지 타박인지 몰라도 남편은 내가 영악스럽게 굴지 못한데서 오는 불만을 술힘을 빌려서 이렇게 주정 비슷하게 쏟아 놓은게 아닌가 하고 되짚어 본적이 있다.
취중진담이라고 했다.난 그이후에 그말을 곱씹어 보지만 그렇다고 안하던 짓을 하기엔 모든 여건들이 깡그리 소멸되었다.바가지를 긁기엔 우선 내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고, 습관이 될까 두려웠고 무엇보다도 남편의 반응이 용수철 처럼 튀어 오를 게 뻔했기에 아예 시도 않는게 편했다.막상 바가지 긁혀서 기분 좋을 남자는 없다는 거다.차라리 둔하고 숙맥으로 살지언정 이제와서 언성 높히며 서로에게 상채기 내고 싶지 않았다.

 

더듬이는 예민하게 움직이는 시늉을 하는데 감지후의 내 반응은 차라리 더듬이를 잘라내는게 훨신 나을거라는 생각이 들 도로 만사에 민감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수만볼트로 내 더듬이를 지져 대더라도 오그라들지 않는 둔한 감각 때문에 지금껏 차질없이 살아 왔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더 둔하게 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