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발령이 난 딸 아이의 짐을 챙겼다. 자취짐이 매듭도 풀지 않은채 한쪽 구석에서 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가 이젠 제자리로 가기 위해서 다시 내 손끝으로 풀려 나왔다. 이젠 사회인으로서 챙겨가야 할 품목들이 더 추가 되었기도 하지만 아이의 체취가 담긴 소지품들을 다시 한번 더 만져 보고 싶어서였다. 대학 4년(5년)동안 딸아이가 지니고 있었던 물건이 많지 않음에 다시 놀랬다. 한창 물기 오른 나이에 지닐법한 사치품이나 화려한 물건은 눈씻고 봐도 없었다. 그 흔한 악세사리나 화장품은 물론이고 스타킹 하나도 변변한게 없어서 가슴이 아려왔다. 매달 보내주는 돈도 적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지닌 물건은 초라하고 조잡스럽기만 했다.아이는 스타킹 하나 사 신는 것 조차도 인색을 떨었지만 남에게 들어가는 돈에 대해서는 백지수표를 끊었다. 그 결과가 풀어놓은 살림살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쓸만한 게 별로 없었다. 처음 살림 차려 주었을때의 그 물건 외에는 불어난것도 없고 새로이 장만한 게 없다. 있다면 책 몇권이 고작이었으니......
그러나 더 놀라운 건 내가 새로 장만해 준 주방 기구가 눈에 뜨이지 않고 낯선 헌 냄비 하나만 꼭지가 떨어진 채로 박스에 담겨 있는가 하면 커피잔도 보이지 않고 타올도 온통 낡은것만 눈에 띄었다. 없는 친구들 다 주었단다. 밑반찬도 택배로 보내 주는날 반 이상이 친구집으로 옮겨 간단다. 새것을 가지면 맘이 불편하고 친구들에게 없는 걸 가지고 있으면 미안하단다. 그렇게 퍼 돌려도 아직 남아 있는게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아까워도 한마디 타박도 못하고 웃어 넘기는 착한 에미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다. 그래야 아이도 맘이 편할것 같았다.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야학의 학생들과 야유회때 찍은 사진인데 아이는 제법 교사 다운 티를 내고 있었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 웃음속에 아이가 담고 있었던 꿈은 어떤것이었을까. 발버둥치며 한사코 거부했던 교사직을 앞으로도 차질없이 천직이라고 받아들일수 있을지 때로는 저으기 걱정스럽기도 했다 부모의 판단이 옳았다는 한마디를 끝내 하지 않고 우리도 들을려고 하지 않았지만 묵시적인 인정에 우리는 만족 해야 하는 가족이었다. 어쩌면 부모자식간이지만 그건 아킬레스건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우린 입다물고 은근슬쩍 아프고 민망했던 지난 얘기를 피해가는 현명함을 보여주어야 했다.
夜學의 연세드신 제자들이 보내준 편지가 눈물겹다. 손녀뻘이 되는 아이에게 깎듯이 '선생님' 운운하며 비뚤비뚤 써 내려간 편지들이 한 상자 빼곡히 들어있는걸 아이는 신주 모시듯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고,교생 실습 나갔을때의 임시 제자들의 애정어린 편지 묶음이 한 다발이나 되었다. 아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게 무언지 짐 정리 하면서 확인을 할수 있었다. 아이는 내것에 대한 애정이나 집착이 없다보니 아끼거나 소중하게 여기는 게 별로 없는것 같다. 그러나 남에게 선물 받거나 건네 받은것에 대해서는 유별스럽게 다루는 버릇이 있다. 혹시라도 이상한 편지나 선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짐을 다 뒤져 봐도 뒤져 본 내손이 부끄러운 정도로 눈길 잡아끄는 것은 없었다. 스물다섯의 나이면 남자친구도 있을거고 비밀스러운 something도 있으련만 ............ 남편의 입을 빌리면 '에미 에비가 그 방면엔 도통 맥이라서.......' 맥??...난 속으로 웃었다. 당신은 맥일지 몰라도 난 아니구먼유... 이래뵈도 가슴 한켠에 묻어둔 펴 보이지 못할 나만의 비밀이 있다우.....
아이의 짐을 챙기는 손끝이 자꾸만 떨려와서 몇번이고 헛손질 하는 통에 남편에게 핀잔을 받았다. 만만치 않은 사회생활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수렁속으로 아이가 한발한발 다가서는 느낌을 떨쳐 버릴수가 없음은 나이든 에미의 노파심의 발로일까. 好事多魔란 말이 생소하지 않음은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경계심이라고 해두자. 좋은일에 초치는 모양새를 그리고 있는것 같아서 움찔거리는 속내가 비워지지 않는다.
이 아이의 짐이 이제 다시 내게로 돌아 올 일은 없다. 다시 돌아오는 날이 내곁에서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날일게다. 아이 혼수품 챙겨 줄때의 맘은 지금과 비교도 안되겠지만 왠지 자꾸만 억울한 생각이 든다. 아이를 놓아 주어야 하는 운명적인 아픔이 스무해 넘게 품안에 끼고 돌았던 세월의 두께 만큼이나 상채기를 내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려왔다. 아이가 대학 입학했을때 난 한가닥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에미의 자리였다. 나 혼자 못 산다고, 엄마가 같이 있어 줘야 한다고 맘에도 없는 생떼라도 부려 주길 바랬다. 그러면 아이를 다둑거리며 용기를 주고 에미의 입지를 확인코저 했는데, 아이는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않고 씩씩하고 용감하게 혼자서도 잘 살았다. 대견하고 기특한 녀석에게서 형체없는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제 갈길 가는 녀석에게 에미로서 가지는 심뽀가 참으로 고약하지 않은가.
그 옛날 내가 결혼할려고 했을때 나의 혼수품을 분홍식 포장지로 일일이 싸 주셨던 아버님이 생각났다. 겉에는 혹시라도 햇갈릴까봐 물목을 일일이 적어서 조금이라도 나의 불편함을 덜어주시고자 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내 소지품을 손끝에서 놓고 싶지 않으셨던 애틋한 아버님의 맘이었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아버님의 눈물을 헤아릴만큼 난 크지도 않았고 깊은 속내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 철부지에 불과한게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 오른다. 스물다섯해만에 난 아버님이 흘렸던 그 눈물의 의미를 조금씩 조금씩 읽어나가는것 같다.
아이를 학교 보낼때는 그래도 '다음' 이라는 미래의 틀을 마련 해 놓았지만 이젠 그 '다음'이라는게 분리되는 아픔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했다. 마르지 않는 눈물샘이 묽은 액체를 토해냈다. 콧물인양 훌쩍거리고 나니 딸애가 쳐다본다. "감기기가 있나보다 자꾸 콧물이 나네......" 꾸어다 놓은 변명치고는 유치했지만 멀건 눈물 보이는게 생뚱맞아 보이기도 했다. "에구, 울 엄마 딸 보내실려다가 몸살 나겠어요...좀 쉬세요...." 그래, 몸살이라도 해서 내안에 든 불덩어리 마구마구 쏟아내고 싶어진다. 땀구멍 비틀어서 온몸의 물기란 물기 다 짜내어 버석거리는 몸이었으면 했다. 이성과 감성의 더듬이 모두 마비 된채로 널 보내고 싶다. 이제는 내 품에 돌아와 옹알이 하고 재롱 부릴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턱없는 기대를 하고 있는 어리석은 나의 눈물이 언제쯤이면 마를지..........
콧노래 부르며 짐 챙기는 남편이 의붓에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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