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비는 참으로 덤덤하고 재밋수가 적은 그렇고 그런 남자였다. 희로애락을 겉으로 나타낼려면 기막힌 사건을 접해야 겨우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어쩌면 화석이나 석고상에 미미한 생명의 불씨가 꺼질듯 말듯 끼얹어진 그런 아비였다.
엎어지게 좋은일이 생기면 그 아비의 입은 가로로 조금 밀려났고, 나쁜일이 생겼을땐 평소의 일자입이 안으로 더 말려 들어가는 그런 아비였다.
결혼초부터 그가 아비라는 자리에 이미 매력을 잃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슬 퍼른 층층 어른들 밑에서 내 아이라고 살뜰하게 안아주고 얼굴 부빈다는건 그의 일이 아니었다. 어느 버르장머리 없고 배워먹지 못한 호로자식이나 해야 하는 그런 상넘의 짓이라고 여겼었다,
언젠가 퇴근해 들어온 그 아비의 앞에 세살박이 어린딸이 쪼르르 매달리며 '아빠'라고 부르며 반기었는데 이 아비라는 작자는 '저리 가'라는 외침과 동시에 딸아이를 밀쳐 내었다. 아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죽어라고 운다.....기분 나빴을거다. 주변에 어른들이 계셨기에 민망해서 그러했겠지만 그 아비에겐 자식이 별로 가슴에 와 닿는 존재가 아니었나보다.
아이들이 커면서 아비는 아이가 몇학년인지 몇살인지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에 전혀 맘두지 않았다. 물론 어미가 아비몫까지 차질없이 아이들 챙기고 살림 실피고 있었으니 아비는 그냥 방관자나 하숙생 노릇만 규칙적으로 했을뿐........ 가족 구성원으로서는 뭔가가 겉도는듯 한 그런 이방인에 불과 했다
아이가 아프면 '약 사맥여..........' 아이가 같이 놀아달라고 하면 '니 혼자 놀아라.......' 아이가 과자 사달라고 하면 턱으로 어미를 행해서 눈짓을 했다. 도무지 이 아이들 하고 아비하고의 끈은 과연 연결이 되어 있는가 의심 스러웠다.
세월이 겅충겅충 넓이 뛰기를 하기 시작하자 이 아비가 어느날 부터 인가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부쩍 아이들 일에 미주알 고무알 끼어들고 간섭하기에 이르렀다. '父情' 또는 '사랑'이라는 걸직한 슬로건 높이 내걸고 가족안으로 슬며시 끼어 들었다.
퇴근하는 그의 손에는 항상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주로 아이들이 반기는 과자나 과일 또는 마누라 입 찢어지게 좋아하는 주방용품. 받아서 좋아라고 날뛰는 아이들을 보면서 굳어있던 그의 입자위는 서서히 풀어지고 있었다. 썰렁하게 비어 있던 그의 가슴속엔 따뜻한 가족애가 굼실굼실 움직이고 있었다
아비는 아이들 때문에 굵은 눈물도 쏟을줄 알았고 아이들을 위해서 한밤중에 일어나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보초도 서 봤다.
아이들이 전전 긍긍할때 아비로서 길 안내자로 앞길을 틔워 주었다 아이들이 멀리서 연락이 없을때는 안절부절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아이들이 배 곯을새라 넉넉한 생활비를 어미 몰래 덤으로 보내 주기도 했다.
객지 생활하는 딸아이에게 하루한번씩 연락을 해야 맘이 놓였고 군대간 아들녀석 제대날짜 꼽을려고 달력에 체크하는 섬세함도 보였다. 그리고 되돌아온 아들녀석 사복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 펑펑 쏟은 아비였다.
이젠 어미가 방관자가 되었다. 그저 가끔씩 전화나 주고 받으며 남이라도 할수 있는 그런 일밖에는 해 줄게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아비 몫으로 떨어졌다.
어쩌다 집에 오는 아이들 앞세우고 관광지로 외식하는 곳으로 백화점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마구마구 카드 긁어 대었다. 그게 아비로서 해야하는 일이고 또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여겼다.
아비는 호로자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비는 배워먹지 못한 상넘으로 전락하고 있었지만 즐거웠다. 맘이 뿌듯했다.
이젠 아비로서 그의 자리는 굳어졌다. 아비의 가슴은 한없이 넓고 따뜻해야 한다는거 가로늦게 철들면서 터득한 교훈이었다. |